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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나비 Oct 08. 2021

오디오북을 발견했다

윌라 오디오 북 한 달 이용 후기

윌라 오디오북의 공격적인 마케팅에 대한 화답으로 휴대폰에 앱을 깔고 책들을 다운로드했다. 아침저녁으로 틈 날 때마다, 가령 운동할 때, 청소할 때, 설거지할 때, 그림 그릴 때 내내 책을 들었다. 주말에는 거의 하루 종일 들었다. 지난 9월 한 달 동안 들은 권수를 헤아려 보니 8권이다. 그중에는 상하로 나뉜 '위대한 유산'도 있었다.  8권이라고? 그렇게나 많이 들었어? 한 주에 두 권씩 끝낸 셈이다. 물론 갇혀 지낸 탓에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출근을 하는 10월에는 듣는 양이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오디오북에 대한 나의 후기를 단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유레카!'이다. 혹시나 해서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썼나 구글에서 후기를 확인해봤다. 대체로 부정적이라는 것을 알고 조금 놀랐다. 물론 나도 초기에는 종이책에 대한 배신이 아닌가 싶어 조금 께름칙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죄책감은 오디오북이 주는 즐거움에 밀려 금세 사라졌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 효율성에 매료되었다. 종이책이나 전자책을 들고 앉아 읽는 동안 당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냥 거기 앉아 있어야 한다. 물론 독서 그 자체를 숭앙하는 사람이라면 경건한 마음으로 양손을 모으고 몇 시간이고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겠다. 교회에서 기도를 하듯 말이다. 하지만 나는 즐거움을 위해 책 읽기를 한다. 그렇게 까지 경건할 필요가 없다. 잡스런 일들을 처리하면서 책을 동시에 읽을 수 있다면 더없이 효율적일 것이다. 집안일할 때 딱이다. 귀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고 청소기를 돌리고 있으면 청소의 시간조차도 즐거워진다. 설거지도 가뿐하게 할 수 있다. 운동할 때도 마찬가지다. 한 시간씩 달리거나 걷거나 할 때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어쩌다 한 권을 다 듣고 나면 어, 벌써 한 권이 다 끝났네! 라며 뿌듯하기도 하다.(우리는 책을 많이 읽어야 마음이 뿌듯해지는 나라에서 교육을 받았다.) 책 읽기를 하면서 다른 일까지 처리 해 낼 수 있다니 일거양득이다. 


다음으로는 노안 얘기를 해야겠다. 내가 종이책을 쌓아두고도 흔쾌히 집어 들지 않게 된 데는 노안이 큰 몫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심한 근시여서 안경을 쓰고 생활하는데 책을 읽으려면 안경을 독서용으로 바꿔 써야 하고 그 상태에서도 정말 작은 글자들은 어른어른 보인다. 게다가 돋보기를 쓰고 책을 읽는 행위는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킨다. 썩 즐겁지는 않다. 다행히 아직 청각에는 아무 이상신호가 없어서 오디오북을 듣는 일은 수월하게 해 낼 수 있다. 그걸 듣는 동안은 나의 노안이나 늙음이나 우울한 내일 따위는 잊고 온전히 빠져든다. 


오디오북의 또 다른 장점은 성우들이 책을 읽어준다는 점에 있다. 그들은 전문가이다. 어찌나 발음과 억양이 명확한지 한 문장도 놓쳐지지가 않고 귀에 쏙쏙 들어와 박힌다. 성우들도 책의 인물들을 해석하기 위해 연구하고 연습할 테지. 인물들의 개성을 정확히 파악해서 읽어주는 성우를 만나면 감사하기까지 하다. 간혹 동의할 수 없는 해석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중간에 듣기를 포기할 정도는 아니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라는 책은 사실 성우들이 하도 재밌게 읽어줘서 마칠 수 있었다. 종이책이었다면 읽지 않았을 내용이었다. 파랑새는 저기 멀리에 있지 않고 지금 너와 함께 있다, 라는 판에 박힌 내용을 무엇하러 시간까지 내어 읽는단 말인가. 그런데 성우들의 목소리에 끌려 한 권을 마치고 나니, 새삼 내가 연을 끊어버린 사람들이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책에 그런 얘기가 나온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내가 읽으려고 벼르고 있던 책들은 윌라 오디오북 리스트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 덕에 일도 관심 없었던 책들을 접하기도 했으니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고전이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다행히 '위대한 유산'이 리스트에 있었다. 오래전에 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착각이었나. 처음 읽는 것처럼 재미있고 신선했다. 또 하나 굳이 언급하자면, 당신이 굉장한 허영심의 소유자라서 책을 읽을 때 반드시 사람들이 봐주었으면 한다면 오디오북은 추천하지 않는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 건지 책을 듣는 건지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책을 듣는 것은 책을 읽는 것과 같은 행위인가. 그건 나는 모르겠다. 같아도 달라도 나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내게 중요한 것은 그 한 권의 책을 통해 즐거움을 얻었는가이다. 나도 종이책에 대한 집착 때문에 책을 들고 싸고 지고 이사를 다니곤 했는데 그건 그냥 책을 신성시하는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디오북 시장은 더욱 성장할 것이다. 이미 성장했으니 나마저도 이용하고 있겠지만 그 경계가 훨씬 넓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 같은 사람이 나 하나뿐은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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