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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파이 Dec 30. 2023

여행금지국가 이야기 EP4 - 리비아(LIBYA)

김가빈


 여러분은 혹시 다른 나라로 여행 가는 것을 좋아하는가? 해외여행이 보편화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목적을 가지고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나고는 한다. 그러나, 전 세계에

있는 수많은 나라들이 모두 여행의 목적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전 지역이 여행금지로 지정된 나라는 이라크,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예멘, 시리아,

리비아, 우크라이나, 수단으로 총 8개국이다. 이 나라들이 여행금지국가로 지정되었다는 말인즉슨, 2023년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들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나라들은 왜, 어떻게 지금과 같은 여행금지국가 이르게 됐을까?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리비아(LIBYA) 

 아라비아반도에서 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여러분은 리비아라는 나라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지중해의 남단, 아프리카의 북쪽에 위치한 리비아는 지난 12년간 시리아와 비슷한 길을 걸었다. 그런데 사실 리비아는 원래 아프리카 내에서 치안과 경제가 좋은 편에 속했고, 오랜 역사와 다채로운 문화를 간직해 관광지로서도 꽤 유명한 곳이었다. 이랬던 리비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 같은 여행금지국가로 전락해 버렸을까? 지금부터 알아보겠다.

지중해와 어우러진 리비아의 대표 유적, 렙티스 마그나(Leptis Magna)


 리비아의 본격적인 현대사는 1969년 무아마르 카다피(Muammar Gaddafi) 대위가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으며 시작된다. 원래 존재했던 왕정을 무너뜨리고 사회주의 공화국을 세운 카다피는 이후 독재를 통해 정권을 유지했다. 그런데 그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의 여느 독재자들과는 조금 달랐다. 리비아의 풍부한 원유로 얻은 수익을 국민들에게 배분하여 빈부격차를 줄이고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정책을 통해 이슬람 국가인 리비아를 세속화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카다피 정권은 과도한 반미정책을 펼치다가 미국에 얻어맞는 등 불안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969년부터 약 40년간 독재 정치를 펼친 무아마르 카다피


 이후 미국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럭저럭 정권을 잘 유지하던 카다피였지만, 독재정치를 무려 40년 넘게 이어 오자 국민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불만의 기폭제가 된 사건이 바로 아랍의 봄이다. 전 편에서 다룬 시리아 내전의 원인이기도 한 아랍의 봄은 2010년부터 아랍 전역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을 말한다. 이 아랍의 봄에 리비아도 영향을 받아서, 2011년 초부터 리비아 전역에서 카다피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그리고 시리아에서 바샤르 알아사드가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카다피는 시위를 강경하게 진압했다. 그러자 분노한 시민들은 군대를 조직해 카다피에 맞서기 시작했다. 제1차 리비아 내전(First Libyan Civil War)이 발발한 것이었다.


 곧 내전으로 리비아는 불바다가 됐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나토(북대서양 조약기구, NATO)가

리비아의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반카다피 군에 가세했다. 그리고 전쟁은 발발 8개월 후인 2011년 10월 23일, 카다피가 분노한 민중의 손에 잔혹하게 살해당하며 반카다피 군의 승리로 끝이 났다.


 독재 정권이 끝장났으니, 이제는 리비아에 진정한 평화와 안정이 찾아왔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상은 반대였다. 제1차 리비아 내전 이후 수립된 민주 정부가 분열된 것이 그 원인이었다. 그리고 이 분열은 이라크, 시리아와 마찬가지로 ‘종교’ 때문이었다. 세속적이던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후 이슬람 세력이 2014년에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는데, 여기에 반대하던 세속주의자 칼리파 하프타르(Khalifa Haftar) 장군이 수도인 트리폴리(Tripoli)의 서쪽에 위치한 토브룩(Tobruk) 또 다른 정부를 세운 것이다.(리비아의 분열의 주된 원인은 종교이지만, 원래부터 존재하던 리비아의 지역감정도 여기에 한몫했다) 그리고 그해 5월 16일 두 정부 사이에서 제2차 리비아 내전(Second Libyan Civil War)이 발발하고야 만다. 그리고 이 전쟁에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악명을 떨쳤던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 ISIL까지 참전하면서 리비아는 말 그대로 지옥이 되었다.


 이후 ISIL은 리비아에서 대규모 공세를 펼쳐 제2의 도시인 벵가지(Benghazi)의 일부를 점령하는 등 리비아를 위험 속에 빠뜨렸지만 정부군의 반격으로 2017년 토벌된다. ISIL을 쫓아낸 이후, 트리폴리 정부와 토브룩 정부 사이에서 평화를 위한 협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20년 10월 23일 두 정부가 종전 협약에 서명하며 6년에 걸친 길고 길었던 내전은 끝이 났다. 

벵가지에서 ISIL과 교전을 벌이는 리비아 정부군의 모습


 피비린내 나는 전쟁은 끝났지만, 여전히 리비아에는 해결돼야 할 문제가 많이 남아있다. 가장 먼저 리비아에 필요한 것은 트리폴리 정부와 토브룩 정부의 진정한 통합이다. 종전 이후 통합정부를 구성하기로 약속한 두 정부였지만, 대립은 계속됐고 이 때문에 2021년에 예정되었던 총선이 연기되기까지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리비아는 사실상의 분열 상태에 놓여있다.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연기된 총선이 바로 올해 치러질 예정이라는 것이다. 


 이 외에도 리비아를 괴롭히는 문제는 치안과 경제이다. 지금도 리비아에서는 이따금씩 극단주의 세력에 의한 테러가 발생하기도 하는 등 치안이 좋지 않으며, 경제는 카다피 정권 때와 비교했을 때 상상 이상으로 추락한 상태이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올해 9월 리비아 동북부에서 대규모 홍수가 발생하며 많은 사상자와 이재민을 낳았고, 경제적인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기도 했다. 리비아가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고 다시 아름다운 모습을 찾길 바라며 이야기를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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