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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파이 Jan 08. 2024

부적절한 발언은 토론을 위축시키는가?

양지원 김서형

 최근 20기(2023년 기준 2학년) 사이에서 2학년 학년학생회 카피바라에서 진행한 ‘석크라테스와 수라톤의 비정상회담’(이하 ‘석수담’) 백지가 화두에 올랐다. 2학년 1학기, 학년학생회 카피바라는 20기에게서 의견이 다른 사람과는 소통조차 시도하지 않는다는 문제를 발견했다. 그들은 2학기 학년시간에 진행한 발화의 장 ‘주먹이 운다’를 이어 지속적으로 발화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석수담은 백지에 나누고 싶은 이야기 주제를 쓰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그에 대해 원하는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3층 2학년 층에 붙은 석수담 백지 @양지원

 백지에 제시된 주제는 다양하다. 한동안 뜨거운 감자였던 한국사 재시험에 대한 의견을 묻는 발언이나 학교에 대한 문제의식 혹은 현재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등의 내용이 적혔다. 특히  ‘한국사 재시험?’이란 문구 아래에 달린 ‘말도 안 되는 소리임. 그냥 하남, 여자’, ‘그럼 기말/수능도’ 그리고 ‘솔직히 싸운 중3? 내년에 고1~’ 아래 ‘역겹네ㅋㅋ 자퇴ㄱㄱ’와 같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발언은 다시 20기의 주목을 받았다. 

3층 2학년 층에 붙은 2학년 교사회 대자보 @김서형

 12월 셋째 주, 이와 관련해 기존 백지가 있었던 자리에 2학년 교사회가 작성한 대자보가 붙었다. 대자보에서는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타인을 비난하는 태도,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 모두가 보는 공간에서 자기감정을 가감 없이 분출하는 태도. 이러한 태도는 ‘자유’의 영역이 아니다’라고 설명하며 백지에 쓰인 타인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발언을 지적한다. 대자보 작성에 참여하신 한 선생님께서는 이 대자보의 목적을 ‘누군가는 해야 했던 일’이라고 설명하며 ‘백지에 불편함을 느꼈을 친구들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대자보를 작성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우리는 이번 백지를 통해서 두 가지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이 내용의 진전을 가져왔다는 측면과 오히려 이것이 토론의 장을 위축한다는 측면이다. 내용의 진전이라고 보는 측면은 누군가 의견을 냈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석수담의 목적은 성취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오히려 토론의 장을 위축한다는 측면은 본질적으로 내용의 진전을 가져왔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내용의 진전을 가져왔다고 하더라도 인신공격은 그것과 별개로 도덕적으로 나쁜 것이고, 그것이 또 다른 토론자를 실질적으로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쪽을 지지하느냐와 별개로 건강한 토론의 장을 만들어 좋은 공동체가 되는 것이 공동의 목표이다. 이러한 표현 방식이 필수적이었다고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부적절한 표현 방식은 충분히 비판받아야 한다. 다만 우리에게 건강한 토론장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서로의 논점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이다. 현재의 비판은 이해보다는 부정의 의미만을 담고 있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눌 때 비판을 수용하는 태도를 갖추어야 하지만, 그 이전에 상대의 말을 부정하기만 한다면 적대적인 반응이 나올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학생회가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 소통을 시도조차 안 하는 문제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좋은 토론, 좋은 소통은 상대의 논점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된다. 건강한 토론으로 만드는 좋은 공동체의 시작도 거기일 것이다.  지금 20기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태도에 대한 비판에 앞선 ‘왜 그런 태도를 갖게 된 것일까’라는 궁금증 아닐까?


<교사회 대자보 중 ‘백지에 쓰인 말’ > 
 안녕하세요. 20기 교사 안정민, 이석화, 염윤선, 이우정, 장보원입니다. 교사회에서는 우리 안의 분위기, 상대를 비난하는 언행, 흩어지는 생각들에 무게감을 느껴 대자보를 쓰게 되었습니다. 
 지금 3층 복도에는 석수담이 이야기 주제를 위한 백지가 붙어있습니다. 여러분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 논의하고 싶은 주제들이 다양하게 적혀있는데요, 그런데 유독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언어'들이 있습니다. 하남자, 하여자, 역겹다… 그 외에도 서로를 공격하는 글까지요 백지의 원래 목적과는 다르게 비난조의 말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심지어 ‘오고 가는 말들이 불편하다'는 발언 아래 또다시 ‘하남자' ‘하여자'라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습니다. 적합한 논의와 비판이 오가는 대화가 아닌 다른 생각을 지닌 타인에 대한 비난과 혐오로 얼룩진 우리의 민낯입니다. 
 욕설, 남을 비하하는 언어는 그 자체로도 문제이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발화자의 태도입니다.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타인을 비난하는 태도,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 모두가 보는 공간에서 자기감정을 가감 없이 분출하는 태도. 이런 태도는 ‘자유'의 영역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제지 없이 내 마음대로 하는 것만이 자유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나의 언행이 가져올 결과까지 책임지는 태도가 진정한 자유의 영역입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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