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현
운동선수들은 오랜 시간 준비한 끝에 자신을 증명하고 보여주기 위해 경기장에 선다. 그들은 주어진 시간 동안 모든 열정을 쏟아붓는다. 성과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기량을 온전히 발휘하려면 경기장의 환경, 즉 주어진 조건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K리그 선수들이 이러한 ‘환경’을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최고의 축구인프라를 자랑하는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10년 넘게 활약하고 현재는 FC서울 소속인 린가드는 지난달 29일 수원 FC와의 경기 후, 기자들에게 잔디 상태에 대해 불만을 표출했다. “개인적으로는 좀 심각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실 훈련장 상태도 굉장히 안 좋고 경기장 상태도 굉장히 좋지 않다”며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내가 볼을 잘 잡아야 된다라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지만 여기서는 다음 플레이를 생각하기 전에 ‘볼부터 잡아야 된다’는 생각부터 할 수밖에 없는 컨디션이어서 좋은 퀄리티가 나올 수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K리그의 인기가 치솟고 있는 지금, 선수들이 많은 관중 앞에서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최상의 상태여야 할 경기장 잔디는 왜 계속해서 비판받고 있는 걸까?
K리그 경기장의 잔디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문제는 K리그가 처음 경기장을 지을 때부터, 기후 차이에 따른 고질적인 문제로 존재해 왔다. 현재 K리그 구단들이 사용하는 잔디는 한국형이 아닌 서양에서 도입된 한지형 잔디, '켄터키 블루그라스'다.
한지형 잔디는 연중 온화한 기후와 안정적인 강수량이 유지될 때 잘 자란다. 유럽은 해양성 기후 덕분에 연중 기온차가 크지 않고, 강우량도 일정해 잔디 관리가 비교적 수월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대륙성 기후로, 여름에는 폭염, 겨울에는 혹한이 이어지며, 봄과 가을에도 기온이 불안정하다. 또한 강수량 역시 고르지 않고, 여름철에만 집중적으로 폭우가 내리는 등 잔디가 자라기에 매우 어려운 환경이다. 이러한 이유로 K리그 경기장의 잔디 관리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또한, 축구 경기 외의 다른 용도로 경기장이 과도하게 사용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경기를 치른 후 잔디가 회복할 시간을 주어야 하지만, 경기장에서 훈련과 경기를 함께 진행하는 K리그 구단들의 상황이나, 경기장이 빌려져 콘서트 등의 행사가 열리는 것이 잔디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FC서울의 홈구장인 서울월드컵경기장이 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잔디는 원래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서울시설공단은 2019년부터 꾸준히 잔디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2021년에는 10억 원을 들여 하이브리드 잔디로 교체하기도 했다. 하이브리드잔디는 천연잔디와 인조잔디가 95:5의 비율로 혼합돼 인조잔디의 파일이 천연잔디의 뿌리와 엮여 결속력을 높이고 외부 충격으로 인한 잔디 파임 현상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이런 효과는 선수 부상 예방과 경기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지난해 잼버리 콘서트 이후 대규모 콘서트와 같은 이벤트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잇따라 열렸고, 그 결과 잔디가 회복할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다. 이는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잔디가 예전의 좋은 상태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서울월드컵경기장과 같은 이유에서는 아니지만 울산 HD의 홈구장, 울산문수경기장도 여름철 무더위와 장맛비로 인해 잔디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9월 18일 일본의 축구클럽인 ‘가와사키 프론탈레’가 울산문수경기장에서 울산 HD와 경기를 치른 후, 경기장에 대해 일본 매체 '닛칸 스포츠'는 울산문수월드컵경기장에 대해 "원정 구장은 중계 화면에서도 잔디가 비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나빴다"라고 꼬집었다. 그리고 AFC(아시아프로축구연맹)는 이메일을 통해 울산 구단 및 울산시설공단 등에 문수축구경기장의 잔디 상태와 관련된 우려가 담긴 경고문을 발송했을 정도로 그라운드 컨디션은 좋지 못했다.
이처럼 K리그의 여러 경기장이 잔디 상태로 인해 비판을 받고 있는 와중, 정반대로 잔디 상태가 훌륭하다고 칭찬이 자자한 곳이 있다. 강원 FC 홈구장인 강릉종합운동장이 대표적이다. 강릉종합운동장은 최근 2년 연속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선정하는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최상의 경기력을 선보일 수 있도록 하는 경기장이라는 의미의 상인 ‘그린 스타디움상’을 수상했다. 선수들 또한 "실크처럼 부드럽다"라고 평가할 정도로 관리가 잘 되고 있다.
이런 훌륭한 잔디 관리의 중심에는 강릉시 문화체육시설사업소에서 잔디 관리를 담당하는 최국헌 주무관이 있다.
최국헌 주무관은 관리의 일관된 루틴이 있느냐는 질문에 “매일 구장에 가서 눈으로 먼저 체크하고, 기기로 점검한다. 토양의 수분 상태를 점검하고 이상이 발견되면 즉시 조치를 취한다”라고 답했다. 또한, 온도에 따라 잔디가 자라는 속도가 달라지므로 계절에 맞게 이틀에 한 번씩 깎아주는 등 세심한 관리가 이루어진다고 설명했다. 얼마나 그라운드 잔디를 세심히 관리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강원 FC 김태주 단장은 경기장 관리에 대해 "관심의 차이"라고 언급했다. 잔디의 종류나 품질보다는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세심하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그라운드 상태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의 의견을 뒷받침하듯 같은 대륙성 기후에 있는 일본의 J리그의 몇몇 구단들은 개폐식 지붕을 활용해 날씨가 좋을 때는 지붕을 열어 잔디가 충분히 햇빛을 받을 수 있게 하고, 비가 오거나 흐린 날에는 지붕을 닫아 잔디를 보호한다. 혹은 자동 관개 시스템을 사용해 잔디 수분을 정밀하게 조절하며 통풍 장비를 이용해 잔디 뿌리 주변 공기 순환을 원활하게 유지하게 하며 잔디가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에 높은 관심과 그에 따른 투자로 잔디 컨디션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에 반해 서울월드컵경기장을 관리하는 서울시설공단이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 잔디 관리에 사용된 비용은 약 2억 5천만 원 수준이었다. 반면, 같은 기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A매치와 FC서울의 경기, 콘서트 등 문화 행사로 벌어들인 수입은 82억 원에 달했다. 물론 잔디를 관리하는 사람들의 인건비 등이 '잔디 관리 지출액'에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수입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잔디 관리의 책임은 지자체 시설공단에 있지만, 축구계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선수들이 가장 자주 이용하는 공간인 만큼, 팬들에게 좋은 경기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 또한 요구된다. 유럽식 잔디와 행사 같은 장애물들도 많기에, 관계자들은 그라운드 잔디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해결책이 필요할 때다.
[출처]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4/10/08/MQWORRPNFZA35MHZH4VIAO2RCQ/ (조선일보/이혜진 기자/2024.10.08)
https://www.chosun.com/sports/football/2024/04/20/HJTIOAKWUFB7DH346WXJM5IZDI/(조선일보/뉴시스/2024.4.20)
https://dic.kumsung.co.kr/web/smart/detail.do?headwordId=11389&findCategory=B002002&findBookId=63 https://dic.kumsung.co.kr/web/smart/detail.do?headwordId=9956&findBookId=60
(금성출판사/티칭백과)
https://www.golfjournal.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70(골프저널/김상현 기자/2023.4.26)
http://www.gunnet.kr/group-x/ax-grass.htm(건넷)
https://sports.news.nate.com/view/20240907n01181(데일리안/허찬영 기자/2024.09.07)
http://www.ulsan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85798(울산일보/박재권 기자/2024.9.23)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74116(KBS뉴스/박주미 기자/2024.10.4)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67088(KBS뉴스/김화영 기자/2024.9.25)
https://sports.khan.co.kr/article/202410011232003(스포츠경향/김세훈기자/2024.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