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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in Jun 07. 2020

From_ Sophie

in Wellington




 가끔 엄마를 상기하는 꿈을 꾼다. 시간은 게으른 법이 없어 벌써 집을 떠나온지 10개월 째를  지나고있다. 단 한번도 연락을 한 적이 없으므로 엄마가 나를 잃어버린지도 10개월이 흘렀을 것이다. 온기를 잃어가는 가을의 뉴질랜드 덕에 무덥고 숨쉬기가 힘들다는 서울의 계절을 가늠할 수 없 듯이 나는 그곳에서 떨어져 홀로 존재하고 있다. 특히 한국어로 글을 쓰거나 읽을 때면 유독 나만 동떨어진 세계에 사는 사람같다. 의도적으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지 않는 이상 하루에 한마디의 한국어도 하지 않는 날이 많다. 내가 사용하는 모국어라곤 고작해야 DAN에게 '고마워' 혹은 DAVE에게 '행복해' 따위의 간단한 인사를 건내는 것이 전부다. 더군다나 사용할 수 있는 영어 단어의 수도 한정적이라 길게 말을 잇는 것 보다 가만히 앉아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더 길다. 단조로운 시간 속에서 이야기거리를 끄집어 내보아야 만들어낼 말이 많지 않는, 권태롭고도 평화로운 날들이다. 지금 나의 사고 체계는 영어로 진행되고 있는지 모국어로 진행되고 있을지 한 번을 자각한 적이 없다. 지금은 문장을 만들지 않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요즘 나의 의식은 주어/동사/목적어의 형태를 하고 있을 것도 같다.

 내가 남기고 온 것들에 대해 간혹 떠오르는 궁금함도 꼬리를 잇지 못하고 그저 떠올랐다 사라지고 만다. 시간이라는 것은 정말 공간과 다름이 아닌걸까. 훨씬 많은 것을 남겨두고 홀로 이 곳에 존재하는 것은 나이니 상실감이 더 클 텐데 한달에 한 두번 슬픈 꿈을 꾸는 것이 전부인 것을 보면 한국의 내 빈자리도 그리 크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외면해 버린 것들에 대한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 


 나는 유독 어릴적 부터 꿈과 현실이 닿아있는 경우가 많았다. 변화에 예민한 성격 덕분에 무의식속에 품고 있던 의문들이 꿈으로 떠오르는 것이라고 하기엔, 꿈을 산 사람이 공돈이 생긴다던가 (엄마는 돈이 급하실 때면, 소희야 꿈 좀 꿔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 어느 순간에 기시감이 들어 생각을 따라 가보면 몇 해전에 꿈 속에서 보았던 풍경이 그대로인 경우도 잦았다. 재작년에는 가족들끼리의 행복한 저녁 식사를 한 뒤, 새해 첫 날 부터 눈이 퉁퉁 붓도록 울면서 꿈에서 깨어났다. 꿈을 꾸는 경우가 드문데도 기억에 남는 꿈들은 현실에서 동떨어진 경우가 많지 않았다. 잠을 자도 쉬지 못하고 어딘가에서 활동을 계속 이어나간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나는 내 꿈이 암시하는 바를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 어제 꿈 속에 엄마가 아팠다. 두 달 전 꿈에는 원종이가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쳤고, 얼마 전에는 언니가 꿈에 나와 엄마가 아프다고 말했다. 그 생각이 그리고 불안이 불현 듯 떠오를 때면 파사삭 소리를 내며 부서지는 느낌이 들 곤 한다. 


 지금 내가 지나고 있는 이 곳에서의 1년은 무엇을 남기게 될까. 현실감 없는 풍경을 지척에 두고 살면서 모국어와 순서가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살지만 나는 찰나의 꿈 때문에 한없이 과거로 끌려 갔다가 다시 빠져나오기 위해 기신기신 몸을 이끌어야 한다. 이럴때 생각해보면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 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 같다. 나의 공간속에 퍼져 있다가 한순간에 점으로 모이고 다시 흩어지고를 반복하는걸 보면.

 재작년에 누리던 동굴의 시간속에서 타인들의 글을 밥 먹듯이 읽어 내려갔던 그 순간의 나도 어딘가에 남아 쓰고싶은 욕구에 부채질을 하고, 또 좋은 문장을 만들어 내게하고 어떤 결과물을 남기게 부추김을 하였으면. 8개월이 지나는 시간동안 여전히 어둡고 여전히 조금은 우울한 상태로 존재하고 있는 나를 마주할 때면 한권의 책으로 남기는 것 이외에는 이 1년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게된다. 나는 밝지 않으므로 밝은 글을 쓸 수 없다. 나는 자상하지 않으므로 자상한 글을 쓸 수 없다. 





From_ Sohpie

0607.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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