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Seoul
2018년의 서울은 날씨마저 완벽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가능한 한 최악의 여름을 달라고 했더라도 그렇게 끔찍한 여름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집 밖으로 나오는 순간 안경에 김이 서리고 금방 얼굴에 펴 바른 파운데이션이 뽀얀 육수라도 된 양 목 아래로 흘러 내렸다. ‘숨 좀 쉬고 살자.’는 말을 길 한가운데서 한다고 해도 다들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만큼 완벽하게 끔찍한 계절이었다.
그때 나는 내부에서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나는 부정적인 생각에 잠식 되고 있었다. 나의 가정은 엄마의 유방암 선고와 함께 무너지고 있었다. 두해 전 여름 막내아들의 군 입대를 앞두고 나의 어머니는 왼쪽 가슴에 잡히는 멍울을 발견했다. 팔은 감전이 된 양 저리고 몸 안 어딘가의 회로가 고장 난 기분이라고도 했다. 그녀는 그 사실을 아들에게는 비밀로 부쳤다. 몇 달 뒤면 품을 떠나 고생할 막둥이의 마음을 염두 해 둔 결심이었다.
이미 본인의 가정을 이루고 있는 첫째 딸과 국방의 의무를 하고 있는 아들이 곁에 없더라도 나의 어머니에게는 딸린 입이 셋이었다. 졸업을 반년 앞둔 학교를 휴학하고 마지막 인터뷰만을 앞두었던 대학원 입학을 미루는 것에는 큰 결심이 필요하지 않았다. 내 앞에는 암을 선고받은 엄마가 있었고, 그녀의 곁에는 둘째인 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당연하게 내 몫이 된 엄마의 투병생활을 함께하는 일은 한해가 지나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작은 몸으로 자식 셋을 길러낸 어머니의 몸에서 암덩이를 떼어내고, 또 어딘가에 숨어 있을 지도 모르는 작은 세포들을 제거하기 위해 그녀의 몸으로 의약품들이 쏟아져 들어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그동안 어머니는 무거운 짐을 드는 것도, 작은 상처가 나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나의 생활은 ‘all stop’이었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뒤로 밀려나고 있는 미래를 외면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소희야, 방사선 검사라는 거 현이에게 안 좋은 것 아니지?”
언니가 말했다. 현이는 그녀의 4살 난 딸의 이름 이었다. 그때 나는 20대의 일부를 떼어내어 엄마를 위해 쓰고 있는 중이었다. 방사선이 어머니의 왼쪽 가슴을 까맣게 태우며 혹시 모를 세포들을 제거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나의 언니는 자신의 딸을 먼저 걱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나의 마음에 ‘왜 나만?’이라는 의문의 싹을 틔웠다. 그리고 그렇게 싹이 난 못된 마음은 무서울 정도로 불어나 간신히 지탱하고 있던 나의 마음을 좀먹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리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한들 ‘주사실’에서 엄마의 곁을 지키고 있는 것은 사회에서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슬프지만 아프게도 내 인생을 걱정하는 이는 나뿐이었다. 엄마는 아팠고, 아빠는 바빴고, 언니보다 나는 젊고도 창창해보였다. 그리고 남동생은 저 멀리 순천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 하는 중이었다.
나는 왜 하필 그 일이 그 시기에 일어났을까 생각하곤 한다. 넘쳐나는 무기력을 감당해내기엔 내가 그리고 있던 미래는 너무 구체적이고도 아름다웠다. 아침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오후에는 지하철로 30분 거리에 있는 타 학교 대학원의 랩실 생활을 이어갔다. 5-6시간 잠을 자며 꽉 채워진 스케쥴을 수행했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의 미래가 달려 있었기에 즐거웠고 행복했다. 하지만 26살의 나에게 딱 맞게 설정 되었던 다음 목적지는 28살이 되어 학교로 돌아온 나에게는 더 이상 반짝이지 않았다. 아직도 졸업시험에서 받아든 성적표가 기억난다. B. ‘졸업은 해도 좋지만 화학을 전공한 누구라면 너 정도의 지식은 갖고 있다.’는 뜻이었다. 물을 주지 않은 열망과 의지는 열매를 맺기 직전에 모두 시들어 버린 상태였다.
엄마는 마음 놓아도 될 만큼 충분히 건강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니 몇 해 전 엄마의 뇌에 꽈리를 제거할 때도, 파킨슨병을 앓고 있던 엄마의 손을 잡고 정기적으로 병원에 간 사람도, 투병 생활을 할 때 병원에서 몇날 며칠을 생활한 것도 다른 이가 아닌 나였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가족을 위해 인생을 할애하는 것은 엄마가 나를 낳았다는 사실 만큼 당연한 것이었지만 그것이 나에게만 주어진 의무는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억울하다고 아우성하는 깊은 곳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도망치자.’
From_ Sohpie
0607.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