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책을 구매하게 된 가장 시초를 문득 생각해 봤다.
생각한 김에 글로 남기면 좋겠다 싶어서 브런치의 첫 글을 열어본다.
아주 어릴 적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쯤, 나이는 아마도 예닐곱 살이지 않을까.
우리 집은 영등포에서 구멍가게를 하고 있었다. 구멍가게라고 하면 작은 슈퍼라고 생각하면 된다.
엄마는 거금을 주고 신세계백화점에 가서 '계몽사 디즈니 명작동화 30권'과 '세계명작동화 15권'을 구매했다.
사달라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어느 날 우리 집에 들어온 책들.
(계몽사 디즈니 명작동화가 60권짜리란 것은 아주 나중에 동생 친구집에 꽂혀있는 것을 보고 알게 됐다.)
엄마는 가게 옆 문간방에서 가게를 보면서 나와 동생을 옆에 앉혀놓고 책을 읽어주셨다.
책을 혼자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는 그 책들을 반복해서 읽었다.
그러다 엄마는 동네 아주머니와 함께 웅진 책방판사원을 하셨다.
가끔 샘플로 나온 책을 한두 권 가져다주시기도 했고, '한국전래동화', '한국, 세계 위인전', '세계전래동화' 전집 세트를 들여주셨다. 전집이다 보니 읽을 책들도 갑자기 늘어서 어린 마음에 너무 신났다.
읽을 책이 생기니 하루종일 앉아서 책을 읽었고 어느새 그 많은 책들을 모두 읽어버렸다.
현재의 나라면 한번 읽고 말았겠지만 어린 시절 놀이도 즐길 거리도 많지 않았기에 책은 나에게 소중한 보물이었다. 반복하며 읽으면서도 얼마나 재미있던지 나가서 노는 것보다 집에서 책 읽는 게 더 좋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기억이 정확하다면 학교 가는 길에 교육청이 있었다.
그 안에 도서관을 처음 들어가 봤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집보다 더 많은 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저 감동이고 신났다.
엄마는 교육청 안 판매점에서 아카시아꿀을 사러 가고 난 도서관에 가고.
기억을 더듬다 보니 그런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 공부를 시키기 위한 엄마의 극약처방,
"시험에서 백점 맞으면 책 1권 사줄게!"
책 사준다는 말에 백점 시험지 들고 가서 책값을 받아갈 때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영등포 시장 안에 서점보다는 도매상이지 않았을까 싶은 곳에 책을 한 권 들고 나와 집에 오면 뿌듯했다.
출판사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지경사였나 '만화로 읽는 한국사' 5권짜리를 1권씩 사서 모았다.
얼마나 재미있던지 내가 역사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된 책이었다.
책을 지금껏 좋아하게 된 것에는 엄마가 옆에서 책을 읽어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내 기억에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고 그때 책을 읽어주시지 않았다면, 과연 현재의 책을 좋아하고 읽는 나는 없을지도 모른다.
현재는 읽는 책 보다 사다가 꽂고 쌓아놓는 책이 많다.
"책 꽂을 데도 없는데 그만 좀 사라!"
엄마는 그만 사라고 얘기하지만 좋아하게 만든 엄마의 책임도 조금은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책을 사는 사람은 나지만 양심에 찔리니 엄마에게 조금 미루고 싶은 마음에 책임을 전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