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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클맘 May 28. 2021

햇볕 가득한 그 집 앞, 다시 가보고 싶어요

"저기가 예전에 우리가 살던 곳이야."

"저도 저기에 산 적 있어요?"

"아니, 너 태어나기 전에 살던 곳이라 그때는 네가 없었지."


둘째 아이와 차를 타고 지나오다 예전에 살던 아파트 부근을 지나오게 되었다.

재개발을 될 거라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오랜만에 와보니 우리 아파트는 없어지고 그 자리에 고층의 깔끔한 아파트가 들어서있었다.


"저기 살 때 참 재미있었는데."

"어땠는데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자리를 바라보고 있자니 20년도 넘은 옛날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곳은 우리 가족의 첫 집이었다.

아주 작은 임대 아파트였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이라 계단을 많이 오르내렸던 기억이 있다.


작은 평수의 오래된 아파트였지만 거실 가득 볕이 잘 드는 집이었다.

당시는 주말 부부인 데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라 주중에는 큰 아이와 나 둘이 전부였다.


퇴근 후 친정에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가는 길 동네 마트에 들러 장을 봤다.

아이가 어리니 대단한 것을 먹는 것도 아니고 나 역시 많이 먹는 편이 아니었음에도 마트에 가서 저녁거리를 한가득 사서 아이와 집으로 가는 길은 기분이 참 좋았다.


아마 '첫 집'이 주는 설렘이었던 것 같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아이의 손을 잡고 4층 계단을 오르다 보면 아이는 다리가 아프다고 안아달라고 하기 일쑤였다.


한 손에는 장바구니를 들고 다른 한 손은 아이의 손을 잡고 계단을 오르며 다리가 아프다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소리 내어 계단을 세곤 했다.

"하나, 둘, 셋... 어디까지 셌지? 엄마가 잊어버렸네!"

"하나, 두울, 세엣..."

아이도 나를 따라 계단을 세며 오르다 보면 어느덧 4층 우리 집에 다다른다.


요즘처럼 자동문이 아니니 열쇠를 꺼내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면 작은 집이 주는 따뜻함이 참 좋았다.

집에 들어가 아이와 보내는 저녁 시간 작은 집에서 느껴지는 오붓함이 있었다.





그곳은 나와 아이의 엄마표 영어를 시작한 곳이기도 했다.

저녁을 먹고 아이를 재우기 전  시작한 5분의 영어동화책 읽어주기가 19년의 엄마표 영어를 만들어낸 시작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집은 옛날 집이었지만 창이 참 넓었다.

이전 세입자가 집주인의 허락을 받아 수리했다는 거실 창은 아침에 일어나면 거실 가득 햇살이 들어왔는데, 그 햇살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지금도 우리의 '첫 집'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하다.


그곳에 오래 살지는 않았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서 친정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며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처음'이라는 느낌 때문이었는지 실제 그 집이 주는 '공간의 따뜻함' 때문이었는지 이사 후에도 그 집 앞을 지날 때면 참 기분이 좋았다.


얼마 전까지도 그 아파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고 그 앞을 지날 때면 항상 '첫 집'이라는 기분 좋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곳도 세월의 무상함을 비켜가지는 못했다.

언제부턴가 그곳이 재개발된다는 소식이 들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가 철거되고 어느새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버렸다.


지금은 새 아파트가 들어서서 예전 아파트와 그 일대의 느낌은 찾아볼 수 없지만 내 기억 속 그곳은 여전히 햇볕이 잘 들고 창이 넓은 '첫 집'의 기억과 느낌 그대로다.


둘째 아이는 그 집에서의 기억이 없으니 그냥 지나쳐왔지만, 조만간 큰 아이와 그곳을 다시 한번 다녀와 보려 한다. 큰 아이도 너무 어렸을 적이라 기억은 못하겠지만, 그곳의 따뜻함을 자신도 모르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공간이 주는 특별한 느낌, 첫 집이라는 이름의 기억으로  아이와 손잡고 걷다 보면 그때의 따뜻한 설렘을 다시 느껴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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