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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린 Jun 24. 2020

나의 에이스,
양현종의 부진이 길어진다.

가린의 야구, 첫 번째.


양현종은 슬로우스타터다. 


본격적인 에이스로 자리매김한 2015 시즌부터 4월을 무난히 넘긴 적 없었다. 4월을 (그나마) 무사히 넘겼던 '16, '17 시즌에는 5월에 대량 실점을 하며 무너진 경우가 잦았다. 순탄치 않은 양현종의 봄은 지난해, '19 시즌 4월에 정점을 찍었다. 3월 23일 개막전에서 6이닝 1실점으로 패전을 먹더니 내리 5연패를 기록했다. 그 중 5 실점(5 자책) 경기만 절반인 세 경기, 퀄리티 스타트를 하고도 패전투수가 된 경기는 고작 두 경기에 불과하다. 그뿐인가. 5 이닝 이상 소화하지 못한 경기도 세 경기나 됐으니, 온갖 매체에서 양현종의 부진을 두고 떠드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팬들의 우려, 연달아 쏟아지는 추측성 기사들 속에서도 양현종은 일어났다. 5월부터 시즌이 끝난 9월까지 16승을 챙겼다. 그 기간 동안 선발로 등판해 패전을 기록한 건 단 두 경기에 불과했다. 끝을 모르고 치솟았던 평균자책점은 제자리를 찾았고, 결국 극적인 역전승으로 '19 시즌 평균자책점 1위를 달성했다. 이제는 언론들이 입을 모아 '양현종 걱정은 쓸데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유독 쉽지 않은 봄을 보낸 양현종을 걱정하던 팬들도 그제야 안심했다. 우리가 아는 양현종이 돌아왔으니까.


그렇기에 '20 시즌의 부진도 한순간이라 여겼다. 범 세계적 재난 사태로 차일피일 미뤄지던 개막일은 5월이 돼서야 확정됐고, 리그 전체적으로 타자보다 투수들이 많이 헤매는 모습을 보였기에. 어차피 양현종은 슬로우스타터니, 5월 한 달을 보내면 6월 즈음 우리가 아는 모습을 보여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6월이 끝나가고 7월을 앞둔 지금, 양현종은 '5 선발'로도 케어하기 어려운 기록으로 팬들의 시름을 깊어지게 하고 있다.




6월 22일 기준, 양현종의 성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9 경기 선발 등판, 48.0이닝 5승 3패 평균자책점 4.88. WHIP 1.27. 기록으로만 봤을 때는 심각성이 와닿지 않을 수 있다. 평균자책점이 높다는 거? '19 시즌 3-4월의 평균자책점은 9.81이었다. 단 1승도 챙기지 못하고 대량 실점을 했던 걸 생각하면, 5승이나 챙기고 4점 후반대의 평균자책점만 봤을 때, 그간 양현종의 봄에 비하면 아주 양반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고작 한 달 정도에 불과했던 예열 기간이 올해는 두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고, 심지어 나아지는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계속 신경을 쓰이게 한다.


양현종의 주무기는 평균 구속 143.9km/h(2020년 기준)의 힘 있는 직구와 삼진을 잡는 결정구로 활용하는 체인지업이다. 여기에 슬라이더를 함께 활용해 알면서도 타자의 배트를 끌어내는 삼진 유도로 효율적인 투구수 관리를 했다. 


그러나 올해는 그 체인지업이, 그 슬라이더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지난 21일 김재현 SPOTV 해설위원은 "투 스트라이크 이후 결정구로 활용하는 체인지업이 먹히지 않아 타자들이 계속해서 커트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실제로 '20 시즌 양현종의 체인지업 구종 가치는 -6.2로 양현종이 던지는 공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체인지업 구종 가치가 11.6으로 리그 5위였던 것을 생각하면 한없이 낮다 못해 심각한 기록이다. 또한 슬라이더 구종 가치는 10.3에서 2.1로, 직구 구종 가치 역시 22.8에서 2.6으로 수직 낙하한 상태다. 

이처럼 변화구가 완벽하지 않다는 기록이 있는데, 양현종이 등판할 때마다 포수들은 투 스트라이크 이후 무조건 바깥쪽으로 미트를 뺀다. 타자들은 계속해서 커트를 하고, 양현종의 투구수는 늘어난다. 결국 이닝을 끝내기 위해 직구를 던지면 이를 노린 타자들이 받아쳐 장타를 만든다. 덕분에 '19 시즌 단 6개에 불과했던 피홈런 기록을 '20 시즌에는 두 달 만에 완성했다. 아직 시즌은 넉 달 가까이 더 남았는데.


길어지는 부진의 이유는 무엇일까. 나를 포함한 팬들이 가장 답답한 건 그 이유를 알지 못해서다. 매년 봄이 부진했으나 이 정도로 길었던 적은 없다. 기록상 최악의 부진이었던 '19 시즌은 가족사로 제대로 캠프에서 몸을 만들지 못했다는 이유가 있었고, 그 이후 우리가 아는 양현종으로 돌아오며 걱정을 불식시켰다. 이번 시즌은 기약 없는 개막 연기로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그렇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고 내려와, 승수를 챙기고 인터뷰를 할 때마다 양현종은 말했다. 몸이 아프거나 컨디션이 나쁜 건 아니라고.


그렇다면 혹자의 말대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커브를 다듬다가 다른 변화구까지 같이 흔들리게 됐다'는 말을 믿어야 할까. 1년 사이에 양현종이 구사하는 공 중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바로 커브다.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위주로 활용하던 양현종이 비시즌 내내 커브를 연마했다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고, 연습경기부터 커브 활용도를 높이고 있었다. '19 시즌 1.8%에 불과했던 커브 구사 비율이 '20 시즌에는 3.3%로 뛰었고, 커브 평균 구속도 117.2km/h에서 120.7km/h로 올라갔다. 공을 들인 만큼 2S 이후 결정구로 커브를 활용하는 비율 역시 1.0%에서 이번 시즌 3.2%로 소폭 상승했다.


양현종이 원래 커브를 안 던지던 투수는 아니다. '잘' 안 던졌을 뿐이다. '14 시즌 김정수 투수코치가 있던 시절 좌타자 상대를 위해 커브를 배웠고, 이후 드물게 던졌으나 워낙 체인지업이라는 좋은 결정구가 있었기에 활용할 일이 적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양현종의 커브 구종 가치는 '17 시즌 1.2가 최고 수치였으니 그리 쏠쏠하게 역할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커브 때문에 기존의 변화구까지 약해졌다면 커브를 포기하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물론 커브를 연마하느라 타 변화구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도 추측에 불과하다. 그저 이번 시즌을 앞두고 커브가 자주 언급됐고, 기록상으로도 커브가 자주 보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가정을 할 뿐이지, 팬들은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다. 이렇게라도 추측을 해야 답답한 마음이 달래지기 때문에, 뭐라도 하는 것뿐이다.




양현종은 나에게 자부심이고 자랑이다. 경기를 편하게 보게 해주는 선발 투수 이상의 의미를 지닌 선수라는 뜻이다. '09 시즌 우승 당시 눈물 찔끔 흘리던 막내딸이 양꾸역을 지나 에이스로 불리고, '17 시즌 한국시리즈 5차전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으며 11번째 우승을 안겨주며 대투수가 된 순간까지 지켜봤기에 더더욱 그렇다. 21세기 타이거즈 야구를 보는 사람들에게 양현종은 그런 존재일 것이다. 우리 팀에 양현종 있다. 그 한 문장으로 모든 감정을 설명할 수 있는 선수.


그렇기에 나는 양현종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는 게 힘들다. 다른 투수들의 일시적인, 혹은 장기적인 부진을 보며 기대와 실망을 동시에 하는 것과는 별개의 감정이다. 양현종은 절대 무너져서는 안 되는 투수라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결국 이 부진도 딛고 일어날 선수임을 알지만, 길어지는 부진 속 양현종이 마운드에서 애쓰는 모습을 보는 건 그만한 타격이 돌아온다는 말이다. 


'양현종 답지 않은' 기록과, 기록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은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는 것 같다. 일개 팬인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주장이라는 완장과 에이스라는 부담을 잠시 내려두고 스스로를 살핀 후 마운드에 오르기를 바란다. 단순히 한 선수의 부진으로 넘기기에는 양현종이라는 선수의 존재감이 팬들에게 너무나도 크다. 물론 이런 글을 썼다는 것도 웃어 넘길 수 있게, 조만간 우리가 아는 그 양현종으로 돌아올 것을 믿는다. 그 순간을 위해 잠시 숨고르기를 하는 건 어떨까. 양현종과 타이거즈 팬들 모두를 위해서.




(사진 출처: KIA 타이거즈 공식 홈페이지, 기록 출처: STAT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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