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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inko Oct 14. 2021

손흥민의 골에는 자아가 있다

 2022년에 있을 카타르 월드컵을 위한 예선 때문에 축구광이 두 명이나 있는 우리 집안이 한동안 들썩였다. 저녁 황금시간대에 하는 경기 시간도 어찌나 완벽한지 아빠는 축구 경기 날만 되면 낮부터 들떠서 맛있는 음식을 사들고 와 경기를 시청했다. 카카오톡 가족 단체방은 분노와 환희로 뒤범벅된 열띤 해설로 쉴 틈 없이 울렸다. 

그저께 이란과의 월드컵 예선이 끝나고 축구라면 새벽 다섯 시에도 알람을 맞춰놓고 일어나서 관람하는 축구 광, 특히 손흥민의 둘도 없는 팬인 오빠가 다음 날 가족 단체방에 유튜브 영상을 보냈다. 전 날 경기에서 손흥민이 선보인 선제골 때문에 매우 들떠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내 눈엔 선제골이고 뭐고 이상한 제목밖에 보이지 않았다. 영상 썸네일에는 '손흥민의 선제골이 브라질 호나우두가 생각났던 이유'이라는 제목이 박혀 있었다. 

나는 즉시 '손흥민의 선제골이 브라질 호나우두가 생각났던 이유'가 무슨 말이지? 라는 답을 보냈다. 예전 같았으면 오빠가 그만 좀 하라고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답했을 텐데 이번엔 가족 중 아무도 나의 지적질에 답을 하지 않았다. 나의 끝없는 맞춤법 지적에 다들 질린 거다. 오타나 맞춤법을 지적하는 사람들은 성격이 고약하다는 흥미로운 기사가 있었다. 변명의 여지없이 인정하는 부분이다.

나는 혼자 문장을 만들어 봤다.


손흥민의 선제골을 보고 브라질 호나우두가 생각났던 이유
 손흥민의 선제골이 브라질 호나우두를 생각나게 한 이유
 손흥민의 선제골에서 브라질 호나우두가 보인 이유


쓸 수 있는 옵션은 많았다. 나는 손흥민의 골로 한껏 달궈진 열기에 물을 끼얹었다. 이 영상을 올린 이도 너무 기쁜 나머지 흥분된 상태에서 빠르게 영상을 업로드 하느라 이런 실수를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영상을 올린 사람, 보는 사람, 전달한 사람들의 타오르는 불꽃을 꺼뜨렸다. 그래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손흥민의 골이 너무 훌륭해 자아가 있는 걸로. 골이 손흥민의 발을 거쳐 들어가는 순간 어메이징한 골이 스스로 호나우두의 골을 생각한 것으로. 시선을 바꾸니 말이 되어 보이기도 한다. 마치 얼마 전에 받았던 택배가 자아가 있어 문 앞으로 배달을 직접 완료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님께서 보내신 택배가 오늘 문 앞으로 배달완료 하였습니다.’

이렇게 보고 나니 내가 정말 문제다. 고약하다. 난 이 습관을 평생 고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나같은 사람도 있어야 세상이 좀 더 재미있어지는 것 아닌가? 모두가 괜찮다고만, 상관없다고만 하면 재미있던 것도 재미없어진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역으로 시선을 바꿔보면 재미있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나의 고약한 지적질로 손흥민의 골과 택배에 자아가 생긴 것처럼. 


모든 글자와 언어에는 각자의 사유事由가 있다. 나도 글자에 집착하는 나만의 사유思惟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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