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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린 Dec 30. 2021

연말과 인사이동

어쩔 수 없는 공직 사회의 문화

연말이다. 새해다. 인사이동 시기가 다가왔다. 


대부분의 공무원이 그렇겠지만(아닌 곳도 있겠지만) 우리 지역에서는 매 년 1월 1일자로 대거 인사이동이 발생한다. 한 자리에서 보통 1년~3년정도 일하고 나면 다른 부서로 보내지는게 일반적이다. 


나는 올해로 만 4년을 조금 넘긴, 2022년을 맞이해 6년차가 되는 초보 공무원이다. 나는 여전히 잘 모르는 일 투성이인데 어느덧 내 뒤로 들어온 후배들의 숫자가 서른명을 넘어간다. 코로나 때문에 9급 8급 직원을 급하게 늘린 탓도 있지만, 어느덧 이제는 신규 행세를 할 수 없게 되었다는것을 점차 느낀다. 


그동안 나는 보건소의 예방의약파트에서 방역 및 소독 업무를 짧게 맡았다가 곧장 예방접종업무 담당자가 되어 3년간 예방접종실에서 근무했다. 그리고 딱 2년전 지금 읍에서 40분정도 거리의 보건지소에 발령을 받아 2년간 보건지소에서 접수, 진료, 약 제조, 치매검사, 금연사업, 고혈압당뇨 사업, 예방접종 사업등을 진행했고 이제는 조금 더 먼, 편도 1시간 20분정도 거리의 다른 보건지소로 새로 발령받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기초자치단체인 탓에 동쪽 끝 보건지소에서 서쪽 끝 보건지소까지 이동하는데만 두시간이 걸린다. 두시간이면 서울까지 왕복하고도 남는 시간인데. 




보건지소로 첫 발령을 받고 송별회를 하던 날. 각자 돌아가며 소감 한마디씩 하는 자리에서 나는 불쑥 눈물이 치밀어올랐다. 이상했다. 나는 고향으로 내려오면서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은 철저하게 분리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어느새 나는 내 자리에 정을 주고 있었나보다. 


보건소에서 내가 유일하게 존경하던 우리 계장님, 차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 나를 하나하나 친절하게 가르쳐주시고 챙겨주셨던 우리 차석 주무관님, 무기계약직으로 예방접종 업무만 10년차에 접어들어 누구보다 베테랑인 우리 선생님, 그 밖의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익숙해져있었고 정이 들어있었나보다. 나는 회식자리에서 훌쩍훌쩍 울다가 집에 들어와서는 또 와앙 울어버렸다. 




고향에 돌아와서 는 건 눈물뿐인가보다. 오늘 새로운 근무지 발령 문서를 보고 나는 또다시 섭섭해졌다. 그동안 신세를 진 지역주민분들께 카톡으로나마 인사를 드리고, 새로운 근무자를 잘 부탁드린다 말씀드렸다. 그러자 그분들은 정들었는데 섭섭하다 아쉽다 말씀하시는데 왜 그 말씀에 또 불쑥 마음이 심란해지는지. 내심 멀리 발령날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는데, 알고 있던 사실이었는데 혹시라도 일 년 더 여기에서 근무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탓인지. 


출퇴근 시간이 자연히 길어지면서 다니던 체육관에도 당분간 나오지 못할것같다 말했다. 마침 오늘로 피티 10회가 다 끝나는 날이라 날이 딱 맞았다. 평소에는 하도 얄밉게 깐족거리고 무신경한 말을 해대서 툭하면 이번달까지만 하고 그만둘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먼 곳으로 발령이 나서 한동안 운동을 못하게되었다 말하니 강사는 갑작스레 친절해졌다. 그동안 칭찬을 많이 해주지 못해서 미안했고, 그래도 내 운동 능력이 많이 늘었고, 혼자서라도 밥 꾸준히 잘 챙겨먹고 운동하라며 한동안 답지않게 다정한 말투로 인사했다. 나는 해가 길어지면, 운전이 더 익숙해지면 다시 올거라고 아무렇지 않은 듯 대꾸했지만 마음이 요동쳤다. 


왜 헤어질 때 다정하게 구는걸까? 나는 또 눈물이 난다. 이쯤되면 눈물 자판기나 다름없다. 전 남자친구와의 이별도, 새로운 발령지로 떠나면서 보내는 지역주민과의 인사도, 체육관 강사의 사소한 격려에도 내 마음은 크게 울렁거린다. 다정하게 헤어지면 나는 더욱 슬퍼진다. 다정도 병이라더니. 훌쩍훌쩍 울면서 타자를 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일반적으로 공무원은 한 업무를 길게 맡지 않는다. 스페셜리스트보다는 제네럴리스트가 필요한 탓일지도 모르고, 정경유착이나 부패 비리를 예방하기위해서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렇다보니 일에 익숙해질쯤이면, 자리에 익숙해질쯤이면, 운전길이 익숙해질쯤이면 우리는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심지어 공무원의 인사이동은 한 날 한 시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제대로 된 인수인계란게 존재하지 않는다. 처음 그 사실에 놀랐던 나는(병원에서는 신규가 들어오면 최소 3개월은 교육을 하니까)많이 버벅거리고, 답답해했고 결국엔 내 나름대로 보건소와 보건지소의 업무 메뉴얼을 만들었다. 그런데 법률도 행정도 금방금방 바뀌어버리다보니 어느새 4년이 지난 메뉴얼의 절반은 폐기해야할 처지가 되었다. 그래도 연차가 쌓이면서 일이 익숙해진탓에 나는, 우리는 어떻게든 또 일을 배우고 해내간다. 그게 공무원이니까. 


생전 처음 보는 업무라도 시키면 일단 해내야하고, 주말이라도 부르면 나와야하고, 하루아침에 근무지의 면 단위가 바뀌더라도 가라면 가야한다. 그렇다보니 사실 우리도 우리 업무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한다. 간신히 수박 겉핥기로 전임자의 행적을 뒤져보며 무슨 업무를 해야할지 유추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서 어떻게든 하루하루를 채워서 간신히 한 사람 몫을 하고 이제 좀 여유가 생긴다 싶으면 또 다른 자리로 보내지니까. 




앞으로도 내가 공무원으로 있는 이상 연말마다 인사이동으로 초조해하고 심란해지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일터다. 지구가 거꾸로 뒤집어지지 않는 이상 우리는 매 년마다 새로운 자리로 이동하고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될 테니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섭섭할 것 같다. 지금 지소에 근무하는 인원이 나 혼자뿐이라 송별회를 하지 않는게 유일한 다행이다. 울지 않아도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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