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폴린 Dec 08. 2021

헤어져야할까?

스물여덟 첫 연애, 첫 고비

너와 사귄지 141일째.


 헤어짐을 고민한다는 것은 아직 너를 좋아하고 있다는 뜻이다. 좋아하지 않는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안녕, 만나서 즐거웠어, 잘가, 하고 쉽게 보낼수가 없기 때문이다.


 좋아하는데, 좋아하지만, 네가 보내는 메세지를 볼 때, 이번 주말에 만나자는 이야기를 할 때 나는 어디론가 멀리 도망치고싶다. 숨이 막힌다. 쉽게 답장하지 못하고 가만히 작은 화면을 바라보다가 아무렇지 않은 듯 썼다가 지웠다가 고민 끝에 다시 짧은 답을 써서 보낸다. 


 사람이 각자 가진 가치관이 10개쯤 된다고 할 때, 너와 나는 그 중 8개 정도가 정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사귀기로 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부터 서로의 가치관이 많이 다르다는걸 알았다. 그래도 어떻게 어떻게 싸우는 일 없이 크게 언성높이는 일 없이 100일을 넘겼다. 아슬아슬한 줄타기와도 같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말하지 않고 넘어간 부분이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나는 너의 아주 조그마한 말투에, 행동에 조용히 너와 결혼하는것은 힘들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떤것은 이야기하기에 너무 사소해보이기도 했고, 어떤것은 너의 너무 많은 부분이 관련되어 있어서 이야기해도 바꾸기 어려울것만 같았다. 


 그래도 이야기해야만 했다. 지금이라도 이야기해야만한다. 하지만 너는 너무 바쁘고, 멀리 있다. 

 이런 저런 생각이 튀어오른다. 네가 있는 곳으로 가서 당장이라도 이야기 할까. 주말까지 기다렸다가 이야기할까. 저녁에 전화를 하면서 이야기할까. 


 연애다운 연애가 처음이라, 이런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성격 차이, 가치관 차이로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헤어지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한 사람이 이 때까지 살아오면서 쌓아올린 가치관을 바꾸는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다. 서로의 의견을 존중해야한다는데, 말처럼 쉽지 않다.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존중하겠는가. 이해하지 못해도 존중한다고 말하는 사람의 80퍼센트 이상은 존중이라기보다 일시적인 눈감음-무시 상태가 아닐까. 보이지 않게 잘 덮어두고 보이지 않으니 괜찮다며 웃어도 불온의 냄새는 숨길 수 없다. 정신을 차리면 그동안 눌러왔던것들이 흘러넘치고 있다. 지난 일이 자꾸 생각난다. 


 도망치는것은 편하다. 이야기하는건 너무 많은 기력을 소모하는 일이고, 지치고, 힘들고, 불안하며, 괴롭다. 하지만 도망치면 단숨에 모든 부정적인 감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회피는 왜 이리 매력적인 대처 방안일까. 나는 여태껏 계속 도망쳐왔다. 쉽게 질리고 쉽게 버렸다. 그런데 처음으로 쉽게 버린다는 선택지를 고르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다. 이런 나는 낯설다. 내가 정말 너를 좋아하긴 하는구나 실감한다. 


 수시로 눈물이 툭, 툭 떨어진다. 고작 하루만에 이렇게 감정이 뒤죽박죽이다.

 계속 만나는게 맞는걸까? 일찍 헤어지는게 나을까? 그런데 같이 맞춘 반지를 보면 흔들린다. 아직 얼마 되지 않았는데…하고 나는 망설인다. 

작가의 이전글 페미니스트 여성으로서 남성과 연애하는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