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ie Aug 11. 2022

상처 난 얼굴로 대흥사에 숨어들다

 - 무위사에서 구례까지, 2017 겨울


  아침에 아저씨들은 일찍 일하러 나가고 아주머니와 나는 아침을 함께 먹었다. 아침을 먹으면서 아주머니의 길고 기구한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섬마을에서 태어나 서울 가서 공장 생활하다 아저씨 만나 자식들 놓고 살면서 고생한 이야기, 다시 섬에 돌아와 전복 양식장과 가게를 하며, 블루베리 농장까지 일구면서 자식들 가르치고 결혼시킨 이야기들.


  나와 나이는 십 년 정도 차이 날 것 같은데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참 윗 세대 이야기 같다. 얼굴에 난 상처때문에 여행을 중단하고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 했을 때, ‘뭐 남들이 보면 부부 싸움하고 나왔능갑다 하겄지.’ 하는 아주머니의 말에 또 힘을 얻었다.


  아주머니는 내가 부탁한 구례 언니에게 보낼 전복과 자기 친척에게 보낼 전복을 포장해서, 가는 길에 우체국에 들러 택배로 부쳐달라고 했다. 나는 아주머니와의 좋았던 만남을 뒤로하고 보길도를 떠났다. 완도행 배는 땅끝에서 탄 배보다는 만족도가 떨어졌다.


  주유소를 찾아가던 길에 운 좋게 병원을 만나 간단한 치료도 하고 약도 샀다. 의사도 여행에는 문제가 없다고 강한 햇빛만 좀 조심하라고 했다. 눈금이 세 칸 남았는데 다행히 주유소를 찾아서 가득 채우고 나니 드디어 마음이 느긋해진다.


  이제 갈 곳은 정해졌다. 대흥사 템플 스테이를 하러 가는 거다. 훌훌 자유로이 다니는 것이 좋아 그냥 패스하려 했던 일정이었는데, 부처님이 어찌 알고 나를 넘어뜨려 불러들이는 모양이다.

  

  대흥사로 들어오는 입구는 다른 산사들만큼의 정취는 없었다. 그러나 들어와서 막상 한 바퀴 돌며 안내를 받다 보니 오! 참 좋다. 경관도 생각했던 것보다 좋고 머무는 방도 깨끗한 데다 무지 따뜻하다. 밤에 컴컴한 길을 걸어 해우소까지 가야 하나 걱정했는데 웬걸 욕실까지 갖추어진 방이다.











  거기다가 템플 팀장도 워낙 말을 잘하고 붙임성이 있어서 아주 좋다. 담백한 저녁 공양 후에 다실에서 차 마시는 시간에 그녀와 많은 얘기를 나눴다. 결국 내가 템플 스테이에 와서 얻고자 했던 것이 이것 아니었겠나?

산사를 만나고, 그곳에서 잠을 깨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그 삶을 들여다보고 함께 나누는 것.


  저녁 공양을 5시에 하고 8시 반까지 차 마시며 얘기하다 내려왔다. 씻고 이 글을 쓰고 났는데도 저녁 9시 반밖에 안됐다. 새벽 예불은 건너뛸 예정이니 6시 아침 공양에 맞추어 일어나면 된다. 아! 참 느긋하다.

 

  여름이에게 전화를 걸어 화분에 물 한 번씩 주라고, 나 돌아갔을 때쯤 그 식물이 죽어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화분이 어딨는데?’ 한다. 거실 바닥에 한 달 넘도록 두었는데도.

  "무소식이 희소식인가? 연락 한 번 안 하네." 하고 떠보았더니 "알면서 뭘 그래"한다. 무심하기가 딱 나 같다. 투정 없는 걸 보니 잘 지내는 듯싶다.


  여행을 떠나면서 제일 마음에 걸린 것이 여름이었는데 걱정했던 것과 달리 잘 지내는 것 같으니 이제 언제고 마음이 동하면 떠날 수 있겠다. 더 긴 시간도.


  상처 때문에 샤워나 머리 감기가 엄청 더디고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욕실이 딸린 따뜻한 방을 혼자 쓰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난 절밥이 너무 맛있어서 아침 6시부터 한 그릇씩 뚝딱 비우는데 템플 팀장은 몇 숟가락 뜨는 둥 마는 둥 한다. 내가 너무 맛있다고 했더니, 그녀가 그런다. 

  “한 4년 먹어보세요.” 

  4년 전에 처음 왔을 때 자기도 그랬는데 스님이 그러더란다. 

  “한 20년 먹어보세요.”


  정말 세끼 메뉴에 거의 변화가 없었다. 그래도 이박 삼일 동안 있으면서 난 내내 잘도 먹어댔다. 밥 먹으면서 꼭 내가 팀장 왼편에 앉게 되어 오른쪽 뺨에 난 상처를 보이곤 한다고 미안해했더니 그녀가 그런다.

  “겉에 드러난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마음 안의 상처가 문제인 것이지” 한다.

  그 말에 난 또 위로를 받는다. 아! 이곳에서는 얼굴에 드러난 상처 같은 건 아무 문제가 안 되니, 나도 이렇게 당당하게 다닐 수가 있구나.


매거진의 이전글 대흥사 템플 스테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