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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 Aug 12. 2022

길 위에서 눈보라를 만나면

 - 무위사에서 구례까지, 2017 겨울


  하지만 대흥사를 나서는 순간부터 재앙이었다. 눈보라와 함께 시야가 막히고 앞서가던 차들도 갑자기 속도를 늦추었다. 순간 어떻게 할 바를 몰라 길 한쪽으로 차를 세웠다. 예정대로라면 구례 가는 길에 보성에서 하루 머물 생각이었지만, 얼굴 상처도 있고 해서 언니네 집이 있는 구례로 내비를 찍었었다. 어떻게 된 건지 내비에는 3시간 40분이 걸린다고 뜬다.


  이 상태로는 구례까지 갈 수가 없다. 그냥 집으로 가야 하나? 잠시 눈이 잦아드나 싶어서 다시 차를 몰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내비 목적지를 집으로 바꾸었다. 바퀴도 안 갈아서 미끄러운데 아무리 모험도 좋지만 눈길에 목숨을 걸어가며 여행을 계속할 수는 없었다.


  광주를 찍고 20분쯤 갔을까? 성전 쪽 국도로 들어서는데 다시 눈보라가 닥치더니 갑자기 시야가 10미터 확보도 어려워졌다. 이런! 지금 이 길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갑자기 앞선 차들이 속도를 확 낮추면서 길 양쪽 끝으로 한 대씩 가서 선다. 


  어떡하지? 이대로 가다가는 길 한가운데서 오도 가도 못한 채 서버릴 것 같고 그러면 정말 답이 안 나오는 건데. 왼쪽 중앙선 쪽으로 댔던 차가 유턴을 한다. 그래, 나도 돌아가자. 유턴을 해서 고속도로를 찾자.


  다행히 금방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이르렀다. 톨게이트를 벗어나 차를 한쪽에 대고 보니 이정표에 목포 방면이 나온다. 그래, 목포는 멀지 않을 거야. 목포만 가면 광주까지는 대로가 뚫려있고 차량 통행이 많으니까 제설 작업이 잘 되어 있을 거야.


  앞에 세워져 있던 큰 트럭이 움직이자 난 그 트럭을 쫄쫄 따라갔다. 캄캄해진 눈길에서 꽁무니에 불까지 밝힌 그 트럭은 좋은 안내자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한참 후에 그 트럭은 다른 길로 빠졌고 이제 나 혼자 힘으로 눈길을 헤쳐가야 한다.

  그렇게 헤매기를 두 시간 여, 드디어 난 목포에 도착해서 광주 가는 고속도로로 접어들었고, 그 길은 이미 눈이 녹아있는 데다 뽀송하게 마르기까지 했다. 더불어 환한 햇살까지 내리쬐고 있었다.


  휴게소에 들러 호두과자를 사고 커피를 마시면서 생각했다. 자, 이제 어떻게 하지? 지난 두 시간은 악몽이었다. 지금 이 길은 드디어 광주로 가는 안전한 길이다. 햇빛 화창한 이 날씨는 언제 컴컴한 눈보라로 변할지 모르는데 이대로 광주로 갈까?


  휴게소를 나서서 차에 올랐는데 이대로 집에 가기는 정말 싫었다. 겨우 이틀간의 자유 여행 후에 이틀의 안전한 템플 스테이만 마친 채 이 여행을 접는 것은 도저히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마치 패잔병이 되어 돌아가는 느낌. 

  구례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는 어제 순천에 가서 아직 그곳에 있는데 곧 구례로 돌아갈 거라고, 순천은 아침에 눈이 오다가 지금은 해가 쨍쨍하고 길도 다 녹았다고 했다.


  그래? 마음을 바꿨다. 이대로 광주까지 가서 고속도로를 타고 구례로 가는 거다. 그렇게 광주를 지나, 지척에 보이는 집 근처를 그대로 지나 구례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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