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위사에서 구례까지, 2017 겨울
그렇게 광주를 지나, 지척에 보이는 집을 그대로 지나 구례로 갔다. 구례 언니네는 지은 지 얼마 안 된 한옥을 사서 이사했는데, 지난번 가서 보았을 때보다 훨씬 정돈되어 있었다. 창호지를 바른 미닫이문과 창살들도 색다른 느낌이었다.
본채에서 50센티쯤 꺼진 채로 달아낸 별채는 한쪽은 부엌, 그리고 다른 쪽은 다이닝 룸 겸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형부는 그곳에 낡은 턴테이블과 엘피 음반들을 쌓아 두고 옛날 노래 듣는 재미에 빠져있다고 했다.
난로 위엔 커다란 곰 솥이 있고 그 안에서는 어성초나 겨우살이 같은, 약재로 쓰이는 잎과 가지들이 끓고 있었다. 난로 한켠에는 고구마를 구워 먹을 수 있는 칸도 내장되어 있었다.
언니랑 얼큰히 취한 형부랑 김광석의 노래를 틀어놓고 난로에 고구마도 구워 먹고 떡도 구워 꿀에 발라먹으면서, 이야기 꽃을 피웠다. 간혹 형부의 농에, 그리고 언니 특유의 재치 있는 대꾸에, 난 참 오랜만에 배가 아프도록 웃어댔다.
형부는 내 상처에는 알로에를 바르면 좋다고, 비들 비들 죽어가는 알로에 싹을 잘라서 붙여주고 벌침을 놓아주기도 했다. 언니는 정성스러운, 느리다 싶을 만큼 오래 걸리는 요리로 내 미각을 한껏 즐겁게 해 주었다.
삼십 년이 되도록 언니 집에 드나들면서 언니와 형부를 만났지만, 그날처럼 유쾌하고 즐거웠던 적이 없고, 형부가 그렇게 편안했던 적이 없었다. 내가 다친 상처를 갖고 찾아든 때문일까? 아니면 여행 중에 여행의 연장으로 가서, 일상의 어떤 요소도 없는 여행 기분이어서였을까? 새삼 고맙고, 보호받고 보살핌을 받는 것 같아서 마음이 참 따뜻했다.
내가 사서 보낸 새끼 전복과 홍합, 새우, 오징어 등을 넣어 끓인 환상적인 해물탕에 야채샐러드, 동치미 등이 오른 아침상을 찍어 카톡으로 보냈더니, ‘나도 이모가 차려준 그 밥상 받고 싶어!’하면서 봄이가 애통해했다. 결국 다음날 봄이가 구례로 오기로 했지만, 그날도 눈이 내렸다.
하루 더 자고 다음 날 5일장 구경을 가자는 언니의 제안에 구미가 당겨서, 나는 오겠다는 봄이를 만류했다. 원래 일정대로 하자면 일요일엔 임실에 가서 케이를 만나길로 되어있었지만 이 얼굴로, 이 날씨에, 그 일정은 무리였다.
내일은 언니랑 화엄사에도 가고, 구례 5일장 구경도 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