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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쿠아마린 Aug 28. 2021

살아있다는 것이 죄인가!이승우 '마음의 부력'

남은자들의 아픔


어머니의 전화를 받은 아내가 송화기를 가리고 아들에게 건네준다. 얼마 전 어머니는 아들이 당신 돈을 갚을 건지 며느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고 했다. 그런 적이 없는 아들은 어머니의 이런 행동에 마음이 복잡하다. 어머니는 죽은 형이 살아 있는 듯 이야기를 한다. 며느리에게 하는 이야기는 송화기를 건네받은 아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어머니에겐 죽은 형이 살아 있다. 제 자리를 못 찾고 떠돌던 형이 카페를 차리고 싶다며 도움을 청했을 때는 작은아들의 대학원 등록금이 급할 시기였다. 딱 한 번 도움을 요청한 큰아들의 요청을 뿌리친 어머니는 두고두고 마음에 걸린다. 세월이 갈수록 회한이 깊어간다.


“이제라도 성준이한테 카페 차릴 돈을 좀 해주고 싶다. 그래서 그런다. 그래서 돈을 달라는 거지 내가 어디 다른 데 쓰려고 그러는 게 아니다” 


숨을 죽이고 전화기를 귀에 대고 있던 아들은 숨이 막혀 털썩 주저앉는다.



2021년 제44회 이상문학상 수상자는 이승우다. 늦은 감이 있지만, 꾸준히 작품활동을 한 보람을 이제야 맛보는구나 하면서 반갑고 좋았다. 


그는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이청준 선생과 같은 장흥 출신이다. 그 이유로 이승우는 내게 특별한 존재였다. 종교색이 깊은 그의 작품은 사유가 깊고 관념적이다. 그는 신학대 출신이다. 대중적인 인기는 불처럼 일지 않았어도 소설가란 존재의 각인은 누구보다 깊었다. 그가 금곡동 우리 아파트에 산다고 알려준 사람은 소설가 “구효서”였다. 문인 주소록을 보니 정말 우리 아파트 103동에 그는 살고 있었다. 우리 앞동이었다. 밤이면 불 켜진 그 집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비록 한 번도 마주친 적은 없지만, 그 시절 그의 모습은 단정하고 야무진 훈남이었다. 이제 세월을 비켜 가지 못한 모습으로 책날개를 장식하고 있다. 그보다 더 나이를 먹은 내 모습은 얼마나 정면으로 세월을 마주쳤을까! 이제 그도 나도 더 이상 그곳에 살지 않는다. 



제44회 이상문학상 수상작은 <마음의 부력>이다. 


구성이며, 등장하는 인물이 이청준의 <눈길>을 생각나게 한다. 내내 이청준 선생을 생각하며 읽어내려가는데, 전화기 속에서 흘러나오는 어머니 이야기에 훅 무언가 올라온다. 붉은 덩어리가 목에서 치민다. <마음의 부력>에서 어머니가 이야기하는 대목이, 이청준 선생의 <눈길> 속 어머니 이야기와 겹치고 있다. 장흥 출신의 아들들을 통해 흘러나오는 어머니의 이야기는 각자의 지점에서 출발하여 합류한 강줄기처럼 거대한 울림을 주고 있었다. 페이지의 행간을 두 어머니가 걷는다. 자식을 향한 짐을 내려놓지 못한 채 꾸역꾸역 걸어가는 모습이 지구의 자전에 의해 끌려가는 서산의 해를 닮았다. 운명의 여신이 정해준 궤적을 비척대며 걷는 어미의 모습이 빈껍질이 아닌 것은 다 내어주고도 끝내 거두지 못한


恨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머님은 그 발자국 때문에 아들 생각이 더 간절하셨겠네요."



"간절하다 뿐이었겄냐. 신작로를 지나고 산길을 들어서도 굽이굽이 돌아온 그 몹쓸 발자국들에 아직도 도란도란 저 아그 목소리나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듯만 싶었제. 산비둘기만 푸르르 날아올라도 저 아그 넋이 새가 되어 다시 되돌아오는 듯 놀라지고 나무들이 눈을 쓰고 서 있는 것만 보아도 뒤에서 금세 저 아그 모습이 뛰어나올 것만 같았지야.


하다 보니 나는 굽이굽이 외지기만 한 그 산길을 저 아그 발자국만 따라 밟고 왔더니라.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너하고 둘이 온 길을 이제는 이 몹쓸 늙은것 혼자서 너를 보내고 돌아가고 있구나!“



집이 남의 손에 넘어갔다. 대도시로 유학 간 아들이 돌아온다는 소식에 어머니는 새 주인의 허락을 얻어 그 집에서 아들을 맞아 식사를 챙기고, 함께 잠을 자며, 새벽 버스를 태워 돌려 보낸다. 아들을 보내고 눈 쌓인 길을 홀로 되돌아오며 아들의 발자국을 자신의 발자국으로 덮는 어머니는 이청준 선생의 <눈길> 속 어머니다.



한 많은 어머니들의 강은 마침내 당신들의 사랑으로 물빛이 변하고, 뒤척이고, 뒤집어지며 심연을 흐를 것이다. 주고 또 주어도 결핍이라고 부대끼며 살아온 삶이 주체못할 물줄기로 변할 때 그녀들은 허물어지는 것이다. 언제나 아픈 건 에미들의 몫이니까.



<마음의 부력> 속 화자는 부나방처럼 세상을 떠돌다 세상을 뜬 형에게 어머니처럼 부채감을 안고 산다. 어머니는 꼭 한 번의 형 부탁을 들어주지 못한 것이 회한으로 남는다. 신실한 믿음과 나름대로 이름을 지어 붙인 화초를 키우며 어머니가 형의 부재를 잘 이겨내고 있는 줄 알았다. 형과 함께 나누어야 할 몫이 자신에게로만 흘렀을 때 그도 괴로웠다. 구약 성서 속 이야기인  '에서'에게 가야 할 축복을 가로챈 '야곱'의 마음을 헤아렸다. 자신이 장남의 축복을 가로챈 야곱이며, 그 계략을 꾸민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가 평생 짊어졌어야 할 마음의 짐을 어머니를 통해 읽어낸다. 



'마침내 나는 내가 형에게 돌아갈 몫을 부당하게 차지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는 자신을 외면하지 못했다. 의도와 상관없이 혜택을 더 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편애의 대상이었음을 인정해야 하므로 위험했다. 그래서 회피했다. 편애의 대상이 된 사람이 느끼는 마음의 불편함을 사람들은 간과한다. 그들을 한쪽으로 치우친 사랑에서 제외된 사람의 아픔에 주목할 뿐, 주목하느라, 한쪽으로 치우친 사랑의 대상이 되어있는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는 헤아리려 하지 않는다'



아들은 알지 못했다. 


‘상실감과 슬픔은 시간과 함께 묽어지지만 회한과 죄책감은 시간과 함께 더 진해진다는 사실을...’



어머니는 어쩜 치매를 앓고 계신지도 모른다. 아들은 어머니를 모셔와서 함께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는 죽은 형의 이름을 말한다. ”성준이냐?“ 


살아 있다는 것은 죄일까!


형의 몫을 가로챈 야곱은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갈까! 


어찌해야 어머니의 죄책감과 부채감을 소멸시킬까!



”어머니는 다 비우고 다 주고 가는 사람“ 이라는 박경리 선생의 말씀이 축축한 오늘이다.



주제와 구성은 전형적이지만, 마지막 장면의 감동은 가히 이승우 작가의 저력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맏이의 위치에서 아직도 편애의 대상에서 탈출을 못한 나는, 내 밑 여동생 모습이 날개 젖은 제비로 다가와서 눈이 뜨거웠다. 



천지창조 이래 풀지 못할 이야기는 오늘도 인간의 마을에서 서로 다른 얼굴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인연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죄책감의 그물은 또 하나의 코를 뜨고 있다. 그 그물은 누가 걷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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