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쿠아마린 Aug 30. 2021

자운영 꽃밭에서 우는 여자와의 행복한 만찬

추억의 서랍을 꺼내며



봄이면, 남녘의 들판에 아직도 자운영꽃이 융단처럼 펼쳐져 있는지 나는 모른다. 공선옥의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를 생각하며, 자운영 그대로를 풀어 말하자면, 자주 구름 꽃밭에서 그녀는 무에 그리 사무쳐 꽃밭에 엎어져 울었을까를 봄 그늘만을 골라 발을 디디며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섬진강과 보성강이 만나는 지점에 이 있다. 압록에서 한 몸을 이룬 강은 하동을 흘러 남해로 흘러간다. 물색이, 푸른 오리의 머리 빛을 닮아 압록(鴨綠)인 압록면은 곡성에 있다. 


공선옥은 곡성사람이다. 훈풍이 가물거리는 남쪽의 봄날에 춘궁기가 다가오면 자운영 틈에 삽상한 연두의 보드라운 독새기풀은 비단결이라 했다. 소는 자운영도 좋고, 독새기도 좋았을 것이다. 자운영은 배고픈 봄날에 풀때기 죽 재료가 되기도 했을까? 그녀가 자운영 꽃밭에 얼굴을 파묻고 쏟았을 눈물은, 어린왕자가 소행성 B612에 두고 온 장미를 생각하며 풀밭에 쏟아 낸 눈물과는 그늘이 다르다. 오월의 자주 구름 꽃밭에는 ‘불붙는 슬픔’이 있다고 공선옥은 독새기 섞인 자운영 꽃밭에 퍼질러 앉아 그렇게 말했다.






<달리기는 제가 하루키보다 낫습니다>의 박태외 작가와의 인터뷰가 있었다. 인터뷰어는 황정미작가였고, 사진은 초이작가가 담당했다. 우린 황정미 작가가 여름내내 먹은 아인슈페너를 시켰다. 막시와 황정미작가는 아메리카노를 시켰는데 처음 먹어 본 아인슈페너는 밀도가 짙었지만 첫인상으로 담박에 사람을 휘어잡는 매력은 있었다. 밤새 설레어 잠을 못 이뤘으니까 말이다. 




작가가 끼어 있으니, 우리의 만남엔 어김없이 책이 오고 갔다. 독서 이력이 짧은 나는 나눌만한 책이 마땅치 않아 강화도 시점에 가서 ‘한 권씩’ 안길 작정이었다. 인터뷰장소가 송도, 황정미작가의 오피스텔 부근인 걸 나만 모르고 있었다. 강화도로 신나게 달릴 생각과 해바라기가 땡그란 얼굴로 서로의 얼굴을 비비고 있는 ‘난정저수지’도 계획하고 있던 나였다. 

내 손 때와, 서점에서 고르기 위해 쏟은 시간과, 내 체취와 마음이 머문 책을 누구에게 주는 일이 손쉬운 건 아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내가 고른 새 책보다, 자신이 마음 써 고르고 골라 선물해 준 책이나, 자신이 읽은 책을 기꺼이 나눠주면 받는 감동이 배가 된다. 


윤서라 작가, 황정미 작가, 막시 작가로부터 내게 건너온 책은 <공선옥의 행복한 만찬>과, 배수아의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문갑식 작가의 <여행자의 인문학>이었다.

이 세 권의 책을 펼쳐보는 밤에 나는 두근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좋아 죽은 줄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토속음식이 쪼르르 쏟아지는 공선옥의 추억 버무림에 내 입맛이 합세해 찔레나무 밑에서 용틀임을 하는 뱀의 몸처럼 징글징글 나를 감아대는 식욕이라니. 이 식욕으로 사는 한 나는 ‘자주 구름 꽃밭’에서 눈물 따윈 흘리지 않을 사람이다.

나는 식탐쟁이다. 눈앞에 있는 것은 모조리 먹어 치워야 한다. 그런 나를 데리고 어느 날 아버지가 한의원엘 갔다. 아버지 친구 한의사는 말했다. 한꺼번에 키는 컸는데 먹을 걸 잘 못 먹어서 뼛속이 허하단다. 결론은 보약이다. 나는 코웃음을 쳤는데 아버지는 냅다 동조를 한다.


“맞어, 얘가 뻔질나게 굶었지. 도시락도 잘 안 가져갔으니까!”

그렇다. 도시락을 안 가져간 것 맞다. 빵 사먹으라고 동생들 편에 돈 보낸 건 다 잊으셨구만.

빨간 도시락 가방 둘레둘레 들고 내 교실 앞문을 아롱거리던 동생들은 생각도 못 하시는구만.

그리고, 뻔질나게 굶은 사람이 소라도 잡을 듯이 이리 실해?

아버지 앞에서 나는 한없이 연약한 실버들 몸매의 딸일 뿐이다. 여름에 보약을 먹었다. 돌아서면 배가 고팠다. 밥을 먹거나, 마늘을 잔뜩 넣은 닭백숙을 먹고 나면 약 먹은 파리처럼 시들거렸다. 그래도 먹고 또 먹었다. 엄마 아버지는 나더러 잘 안 먹는다고 지청구를 했다.



여름이면 대청마루에 들여놓은 찐감자 담긴 바구니를 앞에 두고 줄창 감자를 먹었다. 길을 가다가 트럭에서 감자를 팔면 무조건 감자를 샀다. 어떨 땐 양쪽으로 들고서 집에 가기도 했다. 감자만 보면 사다 날랐다. 내가 이러했을 때 아버지의 다음 일은 당연히 감자 한 가마니를 사는 일이다. 잘디잔 알감자를 사다 놓으면 엄마는 더이상 쫄깃거릴 수 없게 잘 조려 놓았다. 뭉근한 불에 얼마를 졸였을지 우리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조선간장 짭조롬한 향이나, 고등어 자반 기름진 비린내가 밴 알감자 조림은 지금도 내 애정 반찬이다.



<가시내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 감자를 집에 가져와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다...엄마는 장에 가서 비린 것을 사온다. 감자 넣고 조린 갈치 조림은 단연 일철의 논두렁에서 인기 만점의 반찬이다. 비린 것 없으면 햇고사리 넣고 조려도 되고, 햇고추 넣고 조려도 된다. 그냥 왕멸치 몇 개 넣고 조리기도 한다. 조그만 새끼 감자에 마늘종을 넣고 물엿을 조금 넣고 쫀득쫀득하게 조리면 만드는 도중에 다 먹어버릴 정도로 맛있다> 

두서너 알이 담긴 음식점의 알감자 조림이 나오면 추가로 시키는 사람은 반드시 나다.





올해 하지가 넘어 이웃 점포에서 감자를 캤다고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감자가 담긴 봉지를 주었다. 비닐봉지엔 금세 물방울이 맺혔다. 봉지 입구를 넓게 벌려 바람을 쏘인다는 게 시간이 지웠는지 감자 얼굴에 일제히 멍이 들었다. 사무실 뒤꼍에서 휴대용 버너에다 알감자 조림을 만들었다. 국물이 넘치고 난리를 치른 다음 조림은 완성이 됐다. 맛을 봤다. 혀와 목이 털털거리는 오토바이를 탄 것처럼 얼럴럴러 아린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혀와 목은 어디론가 막 떠나간다. 내가 내 혀를 잡아 세울 수가 없다. 이게 독을 맛본 혀의 반란인가 보다. 아깝지만 한 냄비나 되는 알감자를 다 버렸다. 이웃 몰래(아깝고 죄스러웠다).


공선옥의 <행복한 만찬>을 보며 비린내 향긋한 감자조림을 눈으로 먹으며, 나는 공선옥과 함께 겸상을 했다. 방아잎 향그러운 부침개가 놓인 상이다.

작가의 이전글 살아있다는 것이 죄인가!이승우 '마음의 부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