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서랍을 꺼내며
내가 상위 2% 안에 든단다. 그녀의 목소리는 종달새처럼 들떠서 천장 위에 한 번 부딪힌 다음 비현실적으로 뭉개져서 내게 들려왔다. 나는 수긍도 긍정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경제력으로 상위 2%, 아니면 미모로, 또는 뛰어난 지적능력으로 상위 2%라면 얼마나 기뻤겠는가! 이 의자에 누운 ‘영웅'은 없다는데, 나는 치과 의자에 누워 거듭 ”상위 2%“라는 칭찬을 듣고 있다. 영웅도 떤다는 의자에 나는 당당하게 누워있었다.
경제력으로 상위 2%면 좋겠지? 눈을 감고 뜬금없는 ’제인에어‘를 떠올렸다.
천애 고아 신세이던 <제인에어>가 친지의 상속을 받게 되었을 때, 생계의 궁핍함을 면하게 해준 돈은 그녀에게 구원이었다. 타인에 매이지 않고, 속박당하지 않을 만큼의 경제력은 인간을 자유롭고 자신의 영혼에 걸맞는 영지를 선사할 수도 있다. 굴욕을 참지 않아도 될 만큼의 유산은 진정한 자아확립의 디딤돌이 된다. 제인에어가 유산으로 받은 금액이 컸던가? 아니겠지?
얼마 전 읽은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변역자가 파운드와 실링을 지금의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라고 알려 주었는데 잊어버렸다. 하긴 금방 산 물건값도 모르는데 머리에 남아 있을 리가 없다.
얼마 전부터 음식을 씹으면 왼쪽 어금니, 끝에서 두 번째 어금니에 힘이 주어지지 않았다. 나이 먹으면 잇몸이 부실해진다는데 그런 걸까? 미루다가 결심을 하고 동네 치과에 예약을 했다. 병원은 한산했다. 생년월일을 묻던 간호사가 자기들끼리 요새는 나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는 둥, 아까 손님은 깜짝 놀라서 생년을 다시 확인했다는 둥 소곤댄다. 나는 내가 내 나이로 안 보이나 보다..좋은 방향으로 생각한다. 가릴 거 다 가렸는데 나이가 보이겠어? 하기도 한다.
간호사 중 한 분은 내게서 집을 샀다. 얌전한 사람이다. 집을 살 때도 이집 저집 비교도 안한 건 물론, 안되면 말고 식의 가격을 절충 밀당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는 의지 자체가 아예 없는 사람이었다. 아니다, 나만큼 쑥맥일지도 모른다. 수줍어서 그러는 사람이 더러 있다. 물론 나는 이런 손님께 피 한 방울까지 짜내 최선을 다한다. 절충을 원하지 않는 손님이라도 내 선에서 가격 조율 카드를 던진다. 세상은 자기 몫을 챙기지 못하는 사람이 손해를 보며 살 거라고 착각을 하지만, 그건 아니다. 설령, 손해를 보는 때도 있겠지만 그건 어느 땐가, 어떤 방식으로라도 내게 행운이거나 물질이 아닌 무엇으로라도 보답이 온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오늘을 살고, 내일을 향한다. 오늘 잔금을 치른 손님이 그랬다. 가격 절충의 의지가 없는 손님이었다. 내가 스스로 나서서 시도한 절충이 성공하자 뛸 듯이 기뻐했다. 집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 가격절충은 생각도 안 했는데 알아서 가격 밀당을 해주니, 100만원이 얼마나 고마웠겠는가!.
간호사도 나도 아는 체를 안 했다. 철저한 손님과 간호사 신분이 된 것이다.
어금니 여기저기를 살피던 하이톤의 명랑한 목소리 의사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엑스레이를 찍자고 건의를 한 건 환자인 나였다. 역시 아무 문제가 없단다. 봄 보리밭 위를 나르는 종달새 목소리로
”잇몸이 내려앉지도 않으셨고, 치아 관리도 아주 훌륭히 잘하셨어요. 능히 상위 2% 내에 속하고도 남아요.“
나는 나대로 불편함을 호소한다.
말은 반복된다.
”상위 2% 세요. 걱정 마세요.“
파리의 말테와 파리 시립병원의 의사가 소통이 안 되는 것처럼, 21세기의 내각리 치과의사와 나도 전혀 소통이 안 된다.
초등학교 5학년 때었다. 점심을 집에 가서 먹고 오는 게 유행이 됐었다. 4교시가 끝나는 종이 땡땡거리자마자 같은 동네 친구들이 모여 집으로 달려갔다. 숨이 턱밑에 차도록 뛰어서 대문을 박차고 들어가면 상이 차려져 있다. 마루에 앉아 편히 쉴 시간은 없지만 어쩐지 집 대문 안에만 들어와도 좋다. 집은 어릴 때나, 어른이 되었거나 상관없이 육신과 몸의 안식처가 맞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은 우리가 태어난 엄마의 자궁 속으로 질주하는 행위 같은 것일 게다. 뭣 하나 풍족한 게 없어도 엄마가 있는 집은 좋았다. 살갑게 굴지 않아도 엄마는 밋밋한 맛의 쌀밥처럼 든든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엄마가 없으면 나는 동네가 좁도록 울어댔다. 아침에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오늘처럼 비가 오면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교실 천장을 뚫고도 남았다. 그걸 다 이기고, 극복하고, 학교를 다니고, 어른이 되었으니 나는 나에게 늘 성찬을 차리고, 선물을 주어야 한다.
그날도 서둘러 점심을 먹고 있었다. 밥에 돌이 있었는지 밥을 씹자마자 어금니 정 중앙에서 야무진 돌 부서지는 소리가 뇌를 관통했다. 어금니에 금이 갔을 텐데 아무런 치료를 하지 못했다. 치과를 구경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자라온 내내 그 어금니가 이상했다. 의사들은 문제가 없단다. 작금의 내 현실은 그 어금니에 힘을 줄 수가 없다. 잘 먹어야 하는데.. 씹는 것이 뇌의 활동과도 연관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치아가 부실할수록 치매율도 높다는 발표도 있다.
백과사전에도 있다.
'남아 있는 치아가 적은 노인일수록 기억을 담당하는 대뇌 해마 부근의 용적이 감소된다는 사실을 일본 토호꾸대학의 와따나베 연구팀이 밝혀냈다. 보통 알츠하이머에 걸리면 해마가 위축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와따나베 씨는 "치매예방을 위해서는 자기 치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씹는 행위로 뇌는 자극되는데 치아를 빼면서 치아 주변의 통증을 느끼는 신경이 손실되면 뇌에 자극이 없어진다. 이것이 두뇌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출처: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자연치아를 돈으로 환산하면 개당 3000만원의 가치가 있다고 한다. 3000만원 씩 28개를 곱하면 8억 4000이다. 차아가 건강하다고 8억 4000만원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그만큼 치아의 중요함을 일깨워 주는 말이다. 나날이 발전되는 의학에 힘입어 건강하지 못한 치아는 임플란트나 그 밖의 치료로 좋아질 수 있다. 그러나 자연치아에 비교가 되겠는가.
이렇게 중요한 자산인 치아를 위해 나는 특별한 관리를 하지 않는다. 잘 먹는 것, 그리고 너무 길지 않은 간격을 두고 하는 스케일링, 식사 후 하는 칫솔질 외에는 없다.
내 어린 시절엔 밥에 돌이 많았다. 그 날 내가 씹은 돌이 어금니에 금을 남기고,
”여기가 그때 그 자리야!“ 신호를 줄 때마다 나는 5학년 어느 날의 점심을 생각한다.
그래도 내 치아 상태는 전국 상위 2%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