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나의 서가
'한 사람의 내면에 단단하게 쌓아올린 집과 방에 관한 낯설고 친밀한 이야기'라는 하재영 작가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를 읽었다. 그리고 내 가슴속에 살아있는 기억 속으로 여행을 했다. 아직도 생생히 살아있는 최초의 우리 집, 엄밀히 말하면 내가 태어난 집에 관한 기억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아들 중 둘째인 아버지는 결혼을 하자 할아버지 집 행랑채에 살림을 차렸다, 방 한 칸에 부엌이 딸린 집이었다. 내가 거기에서 태어났고 동생 둘이 2년 터울을 두고 태어났다. 그 방에서 나는 홍역을 치러냈는데 광대나물꽃 같은 무늬가 그려진 벽지의 방이었다. 아버지가 늦게 들어오는 날은 아버지 베개가 놓인 옆자리에 누워서 엄마에게 부탁을 했다. "엄마 발을 나한테 뻗어 줘." 엄마는 이불 밑으로 당신의 발을 뻗어 주었다. 거기에 내 발을 맞대고 아버지를 기다리며 나는 잠들었다.
어쩌다 할머니 방에서 잠이 들 때가 있었다. 깊은 밤중에 눈이 떠지면 우리 집에 가야했지만, 마당을 건너갈 일이 깜깜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주무시고 있으니 깨울 수가 있나. 뚫린 창호지 문구멍에 문을 대고 마당을 내다보니 세상에나, 마당이 하얀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눈이 온 거라고 생각했다. 홀로 깨어 멍하니 마당을 바라보다 이불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아침에 눈을 뜨니 할아버지 할머니는 식사를 하고 있었다. 열어젖힌 문으로 바라본 마당엔 눈은커녕 아침 햇살이 부서지고 있었다. 어젯밤의 하얀 마당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했으나 묻어 두었다. "어젯밤에 눈이 왔었어"라고 한들, 믿어줄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리고 알았다. 마당의 흰빛은 눈이 아니라 밤에 내린 달빛이라는 것을. 밤에 본 하얀 마당 이미지는 내게 평생을 따라다닌다. 쏟아진 달빛으로 마당이 하얗게 일어서던 순간을, 어린 나는 뚫린 문구멍을 통해 보고야 말았다. 잠이 덜 깬 채로 바라보던 마당의 아름다움을 어린 나는 가슴에 품었다.
독서모임 멤버 '초이'님을 만나던 날, 그녀는 <하재영>작가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를 선물로 주었다. 인천 송도의 <황정미 작가>집에서였다. 읽어보니 찰떡이 따로 없다. 맘에 쏙 든다. 아.. 집으로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쓸 수가 있구나, 탄복을 하며 읽어내려갔다. 나의 이야기이고, 엄마들의 이야기지만 작가 하재영보다 많이 살아온 내가 미처 사유하지 못한 여자의 자리, 여자의 방을 이야기할 때, 난 하마터면 눈물이 나올 뻔했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집이라는 테두리에 갇혀 얼마나 절망을 하고, 도달해야 할 목표가 내 집을 갖는 것임을 일깨워주었을 때 서글펐다. 이게 대한민국 젊은이, 아니 전 국민의 절박한 모습이 아닌가 말이다.. 집이란 존재가 재테크의 수단이 되고, 과도한 욕망의 결집체로 변해버린 세상에서 치솟는 집값을 감당할 수 없어 자신의 미래마저 포기하는 젊은이가 있는 나라는 결코 좋은 나라가 아니다.
<다크 헤리티지>. 부정적인 문화유산인 일본의 적산가옥이 즐비한 대구의 북성로.
작가는 이곳에서 사랑을 받고, 유복했지만 많아진 가족 때문에 더 초췌해가는 엄마를 느낀다. 어린 나이에 엄마의 고단함을 알아차린 명석함과 섬세함은 나처럼 무딘 딸에겐 경이로운 일이다. 대구를 가 본 적 없지만, 김원일의 소설<마당 깊은 집>에서 바깥채로 쫓겨난 길남이네가 살았던 곳은 아닐까! 길남이의 풀 죽은 모습이 가엾던 <마당 깊은 집>과는 대조적으로 작가의 할아버지 댁은 상가 관리인과 여직원까지 있는 부자였다.
집은 우리에게 같은 장소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집이 쉼터이기 위해 다른 누군가에게 집은 일터가 되었다. 보수도, 출퇴근도, 휴일도 없이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가사 노동의 현장. 엄마는 운전을 배우고 싶어 했고 같은 지역에 사는 친언니를 만나로 가고 싶어 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는 웬만해선 며느리의 외출을 허락하지 않았다. '집처럼 편하다'라는 관용구대로 일과가 끝난 뒤 돌아가는 휴식의 공간을 집이라 한다면 엄마에게 집은 집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가족에게 집이 집이기 위해 엄마는 집을 비워선 안 되었다.
그렇다. 집이 집이기 위해 한 사람의 희생이 전제되는 가부장적인 가족제도에서 엄마라는 대상은 '성이 다른' 한 여성이며, 무급의 노동자였다.
청산의 대상이던 적산가옥이 뉴트로의 흐름으로,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을 하면서 카페와 술집 등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업종으로 바뀔 때, 기존의 상인들은 상승하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그곳을 떠나야만 한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cayion)현상이 대구 북성로에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하재영 작가가 대구 수성구 명문빌라로 이사가던 해는 1989년이었다. 그 빌라를 로드뷰로 찾아 보았다. 전용면적이 42평쯤 된다. 거래는 빈번하지 않지만 2021년의 시점에서 거래액은 15억에 가까웠다. 재건축을 추진 중인 것 같다. 현수막이 그것을 말해준다.1989년 시절, 하재영 작가의 부유함을 말해주는 빌라단지는 재건축부지로도 최고다.>
작가 하재영 가족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북성로의 상가와 주택을 팔고, 대구의 강남이며 학군이 좋은 수성구 멍문빌라로 이사를 한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구시가지와 개발지의 고급 주택가가 형성되자 학교에서는 주거형태에 따라 계층이 형성되고 계급이 정해졌다. 아이들은 같은 급의 아이들과 어울리며 자기들끼리 신분을 갈랐다. 어른들의 기준을 너무도 잘 아는 아이들은 누가 자신들의 계급과 동일한지를 어렵지 않게 찾아 냈다.
작가는 이 시기를 자신의 암흑기였다고 말했다. 친구들의 따돌림이 있었던 곳도 이곳이었다. 유년의 시절이 끝나고 경쟁에 뛰어들어야 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명문빌라 건너편의 가든하이츠. 재영에게 "어디 살아?'묻던 유미가 살던 아파트다. 집이 잘 산다고 잘난 척을 했다며 유미는 친구들과 함께 하재영 작가를 따돌렸다. 가구가 이태리제라고 말한 게 화근이었다고..어디가나 유미같은 영악힌 아이는 있다. 하는 업이 지도 보고, 위치 보는 것이라 찾아봤다.>
아버지 사업이 부도를 맞자 이들이 살아온 집들은 열악했다. 하재영은 도망치듯 상경을 하여 몸을 위탁한 곳은 집이 아닌 <방>이었다. 내 공간이 확보되지 않은 방. 그녀의 소망은 물리적 공간의 독립과 자아의 독립이 가능한 자신만의 공간을 갖는 것이었다. 그녀는 서울에서 수많은 이사를 해야 했다. 그리고 가난에 대해 생각을 했다.
무엇이 가난일까? 한강 다리 위에서 아파트촌의 불빛을 바라보며, 나도 언젠가는 이 도시에 집 한 채를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하다 마음이 저려왔던 순간을 가난이라 이름 붙일 수 있을까?
가난은 서로에게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고 그녀는 썼다.
누군가에게 가난은 월세 30만 원짜리 자취방이지만 누군가에게 가난은 포클레인이 밀어버릴 쪽방이었다. 누군가에게 가난은 자기만의 방을 가지지 못한 것이지만 누군가에게 가난은 거리로 내몰린 노숙인의 삶이었다. 가난을 가늠하는 일은 자신의 과거든 타인의 현재든 비교 대상이 필요했다. 마포의 30평대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는 친구의 집을 다녀온 날, 나는 가난했다. 원룸에서 불과 몇 정거장 떨어진 난곡의 쪽방을 목도한 날, 나는 가난하지 않았다.
명품 백을 빌려 외출을 하고, 누추함을 감추기 위해 복사판 명화를 걸어놔도 감출 수 없는 현실은, 명품 가방 속의 낡아빠진 지갑이었다. 지갑은 자신의 실제 그림자였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작가 하재영이 대단하며 틀림없이 좋은 사람이란 걸 알아챘다. 어디에 살든 품위를 잃지 않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아름다웠고,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섬세함이 듬직했다. 자신의 집을 스스로 가꾸고, 자신의 공간을 기어이 갖게 되는 자존심이 놀라웠다.
< 내가 자기만의 방을 소망할 때 나는 무엇을 소망하는가? 그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 나의 고유함으로 자신과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욕망일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의 방이 자신의 꿈과, 자유와, 독립, 목소리와 무관하다고 썼다. 돈벌이를 위해 글을 써야 하는 작업의 공간이자, 주부로서 집의 곳곳을 쓸고 닦아야 하는 노동의 장소, 즉 이중속박의 현장이라고 했다. 집안 청결을 위해 공력을 쏟고,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정갈을 유지하는 것은 가부장제의 구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고백한다. 여자에게 집은 소유의 대상이기 이전에 관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집의 청결과 정갈과 정돈으로 평가되는 여성의 인격은 얼마나 비인간적인가 말이다.
큰 딸인 나는 일찌감치 내 방을 가질 수 있었다. 추위를 잘 탄다고 가장 따뜻한 방을 내준 부모님은 책상 위에 어지럽게 놔둔 책들을 정리하라는 잔소리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 책상은 스스로 정리했다.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가끔 동생들이 큰 소리를 내며 씩씩대고 있었다. 이유는 동생 중 하나가 집에 있으면서도 집안 청소를 안 했다는 것이었다. 누구든 집에 돌아왔을 때 자신의 노력 없이 깨끗한 집을 원했다. 내가 쐐기를 박았다.
" 앞으로 누가 청소를 안 해놨다고 큰소리치면 가만 안 둘 거야. 싸우면서 깨끗한 것보다 나는 조용한 게 좋아. 알았어? 청소는 보기 싫은 사림이 해."
내 서슬이 얼마나 시퍼랬던지 이후로 동생들끼리 청소로 언성을 높인 일은 없었다. 가정주부, 또는 여성의 부단한 노력으로 한 집안의 청결이 유지되는 이 쇠사슬이 나는 싫다. 사람보다 먼저 집안의 깨끗함을 살피는 강박적인 신경증이 나는 거북스럽다. 집은 세파에 찌들어 상처받고 긴장하고 돌아온 영혼들이 조건 없이 쉴 공간이어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우리에겐 어질러진 집일지언정 넉넉히 반겨 줄 엄마 같은 집이 필요했다.
가정주부의 노동으로 유지되는 집안 내부와, 집이라는 대상으로 분류되는 계층과 계급은 사회적인 기현상을 낳고 있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대변하는 주거형태, 사는 동네, 평형은 이제 유치원 아이들 사이에서도 자연스럽게 나온다. "너네 집은 몇 평이야?" 이런 사회가, 나라가 정상인가? 솔직히 말하면 나는 끔찍스럽다. 아이를 아이답게 자라게 해주는 세상은 요원한가? 아니면 내가 잘못된 것인가?
나는 집으로 분류되는 인간의 계층이 염려스럽다.
'당신이 살고 있는 곳이 어디인가를 말하라.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이란 것을 말해 주마!" 이런 폭력적인 잣대가 광란의 춤을 추는 현실에서 나는 집을 팔고, 사 주는 직업을 가진 공인중개사다.
욕망의 주체로써 집에 관해 할 말이 많은 나는 아직도 달빛 쏟아지던 그 마당이 그립다.
하재영 작가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는 작금의 현실에서 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져주었다.
집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한층 무르익었음을 이 책을 덮은 순간,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