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의 품격은 이런 것이다.
신사의 품격에 길을 잃다. 에이모 토올스의 모스크바의 신사
모스크바의 신사 저자에이모 토울스출판현대문학발매2018.06.22.
초조한 마음으로 건강검진을 받았다. 번호표를 받고 서성이는 병원 벽에 자작나무 수채화가 결려 있었다. 잎에 막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자작나무 밑동을 둘러싼 풀포기는 아직도 푸르름을 잃지 않고 있다. 모스크바 신사는 다행히 시베리아로 유배를 떠나지 않았다. 라스콜리니코프에겐 소냐가 있지만, 로스토프 백작은 함께 유형 생활을 해 줄 여인이 없었다.
얼마 전 읽은 에이모 토올스의 <모스크바의 신사>가 서서히 가슴을 물들이고 있는 나날이다. 흐린 날 아궁이에 불을 때면 뒷마당 굴뚝의 연기는 공중으로 피어오르지 않고 낮게 포복을 했다. 연기는 넓은 품으로 마당을 한참이나 안고 있다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자신의 향기를 땅에 그윽히 내려놓은 채. 모스크바의 기품 있는 신사 로스토프가 지금 어둑해진 뒷마당을 덮고 있던 연기처럼 나를 포위하고 있다. 은근하고도 은밀하게 그의 향기가 감돈다. 나는 그의 향을 오래 음미하고 싶다. 낙엽을 태우는 연기에서 커피향이 난다고 한 사람은 이효석이다. 로스토프 백작은 그의 고향에서 사과나무 장작으로 불을 피우고 있을지 모른다. 사과나무에선 무슨 향기가 날까. 그의 고향까지 몇날 며칠을 날아서, 꿀벌들이 모아 온 꿀을 먹고 그는 생의 의지를 찾지 않았던가. 마들렌드와 홍차의 향을 따라가면 어린시절의 기억이 펼쳐지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처럼,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세계는 향기 속의 낙원일지도 모른다.
자작나무가 빽빽할 시베리아 벌판으로 추방되지 않은 로스토프 백작. 구시대의 인물 부르주아, 귀족이다. 외국으로 추방해서 그가 잘 먹고, 잘 사는 꼴을 볼 수 없었던 볼셰비키는 그를 메트로폴 호텔에 연금을 시킨다. 호텔에서 한 발자국도 나올 수 없는 형벌이다. 그가 썼다고 전해지는 詩 덕분이다. 호텔에 연금되기 전에 그는 벌써 메트로폴 호텔, 스위트홈에 몇 년째 숙박 중이다. 그의 작품이라는 詩 <그것은 지금 어디 있는가?>로 그는 혁명 이전의 영웅 범주에 들었다.
“당신은 당신이 그리도 좋아하는 그 호텔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오. 하지만 절대 착각하지 마시오. 만약 당신이 한 걸음이라도 메트로폴 호텔 바깥으로 나간다면 당신은 총살될 테니까”
그의 거처는 이제 귀족들이 호텔에 묵을 때 동행한 하인들이 사용하던 다락방이다. 9제곱 미터 넓이의 방이며, 키가 190인 백작이 부주의하면 천장에 머리를 찧어야 한다. 짐을 옮긴다. 최소한의 짐. 나머진 혁명정부의 소유물이 될 것이다. 이 최소한의 짐 속에 그가 호텔에 연금된 30여 년 동안, 경제적 어려움 없이, 기품과 신사의 품격을 잃지 않게 하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소설 속에 감춰 둔 수많은 비유와 은유는 팝콘 같은 목련 봉오리가 터지듯 작품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호텔을 배회하는 애꾸눈 고양이 이름조차도 역사적인 이름을 부여한 백작이니, 백작을 통해 지적인 유희를 맘껏 발산한 에이모 토울스의 익살을 독자는 맘껏 즐기고 행복해하면 그만이다. 역사, 철학, 문학, 음악, 음식, 포도주, 영화.. 그의 지적인 탐구는 광대하다.
그가 조그만 다락방에 앉아 읽는 책은 몽테뉴의 <수상록>이다.
‘ 그 책은 마음에 겨울밤이 스며들었을 때 쓰인 책일 거라는 애초의 의심이 확인되었다고 생각했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 책은, 새들은 이미 남쪽으로 날아갔고, 장작은 벽난로 옆에 쌓여 있고 들판은 눈으로 하얀 그런 때를 위한 책이었다’
비로소, 몽테뉴가 읽히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그는 결코 좌절하거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거나, 혁명으로, 전쟁으로, 변해가는 자신의 조국 러시아로 귀국한 자신을 탓하지 않는다. 프랑스엔 서재가 있는 자신의 집이 있다.
작품의 기저에 흐르는 정신은 그의 대부였던 대공이 해 준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지 않으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품격을 잃지 않았던 백작이 호텔의 연금생활을 즐기는 듯 보이는 이유가 대공의 말씀 때문이었다는 걸 알았지만, 그는 고향을 그리워했고, 여동생을 그리워했다.
그의 고향은 사과나무가 숲처럼 펼쳐진 니즈니노르고로드다.
“숲속 어딘가 깊숙한 곳에 석탄처럼 까만 사과가 열리는 나무 한 그루가 숨겨져 있대요. 그런데 그 나무를 찾아서 열매를 먹으면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겁니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인 영화배우 안나와 처음 호텔에서 사랑을 나누던 날 나누는 대화가 헛된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걸 로스토프의 말을 상기해 보면 안다.
‘삶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생각에는 확실히 매력적인 게 있습니다“
로스토프는 체호프와 톨스토이를 러시아 문학의 선반 양 끝을 지탱하는 청동 받침대라 생각했다. 특히 체호프를 연상하게 하는 힌트를 여러 곳에 숨겨 둔 작가의 기지를 훔쳐보며 나는 미소 지었다. 체호프의 작품엔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이란 단편이 있다. 작품 속의 주인공 이름은 ’안나‘이다. 백작이 만난 영화배우 ’안나‘는 영화가 ”무성’에서 목소리까지 들리는 ‘유성시대’로 넘어가자 인기가 떨어졌다. 또한 구시대적인 ‘공주’역할은 볼셰비키의 정신을 거스르는 배역이었다. 슬럼프에 빠진 ‘안나’의 목소리는 허스키하고 카리스마가 있었다. 혁명정부에 적합한 영화배우는 또한 연극 무대에서 체호프의 ‘갈매기’를 공연한다. 체호프의 작품 ‘세 자매’ 속엔 모스크바로 가자고 외치기만 할 뿐 고향을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는 ‘행동하지 않는 자’들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호텔엔 로스토프 백작처럼 또 하나의 연금자가 있었다. 노란색을 좋아하는 어린 소녀 ‘니나’다. 백작에게 호텔 깊숙한 곳을 탐색시키며 마스터키를 선물로 준 니나는 그녀가 있는 영역을 확대하며, 팽창시키고, 나중엔 모스크바 전반을 아우를 정도로 자신의 지평을 넓히는 아이였다.
백작이 무인도에 갇힌 로빈 후드처럼 살자고 결심한 것은 다락방으로 거처를 옮긴 날이었다. 환경을 지배하는 자. 로빈 후드. 어린 소녀 니나는 바로 로빈 후드였다. 호텔의 마스터키가 아닌 세상을 향해 날아갈 수 있는 실질적인 ‘키’를 백자에게 선물해 준 니나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길을 거침없이 걸어갔다. 체호프의 연극 ‘갈매기’ 속 ‘니나’가 온갖 시련을 무릅쓰고 배우로서의 사명감을 깨닫고 자신의 길을 개척했던 것처럼 말이다. 니나가 백작을 위해 선물해준 실질적인 '열쇠'는 그녀의 딸 '소피아'였다. 기꺼이 아버지 노릇을 행복하게 받아들이는 백작의 품격은 그녀의 재능을 꽃피우게 했으며,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라고 외쳤다.
"인간이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지 못하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 밖에 없다"며.
'가장 현명한 지혜는 늘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는 것'이란 몽테뉴의 말을 들려준다.
그가 그의 딸 소피아에게 또 말했다.
"내가 세상에 태어 난 후 이제까지 인생이 나로하여금 특별한 시간에 특별한 장소에 있게 한 것은 딱 한 번 뿐이었어. 바로 네 엄마가 너를 이 호텔로비로 데려온 날이란다. 그 시간에 내가 이 호텔에 있었던 것 대신에 러시아 전체를 통치하는 차르 자리를 내게 준다해도 난 절대 그걸 받아들이지 않을 거다."
백작의 이 말을 꼭 기억해 놓고 싶다. 세상 전부를 준다해도 너하곤 안 바꿔. 아니 못 바꾼다는 부모의 말은 가시밭길을 고독하게 걸어가야 할 자녀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며, 든든한 응원이겠는가!.
이 소설은 방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끝이 없다. 특히 나는 로스토프 백작이 여동생 옐레나의 사망 10주기 날에, 샤토뇌프-뒤-파프 와인을 마시며 세상과의 하직을 꾀했을 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이 포도주에 담긴 역사와, 백작 가문에 얽힌 이야기를 따라가며 읽는 재미를 놓치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 교황의 아비뇽 유수를 상기하며, 이 포도주의 품격을 한층 높여 준 대목들이 아련하다.
백작이 발표했다고 알려진 詩를 창작한 자가 누구인지, 이로써 이들의 운명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풀어가는 전개는 헥토르와 아킬레우스의 싸움처럼 격렬하지도, 메세나 해협처럼 급하지도 않다. 라트비아 스튜에 어울리는 조지아산 무크자니 와인처럼 아늑하며 부드럽게 전개될 뿐이다. 잠시 한 눈을 팔면 놓치고 말 흐름 속에 해답이 있는 것이다.
또한,
영화 ‘카사블랑카’에 숨겨진 ‘키’와 백작이 여러 날을 바쳐 배운 바느질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알게 되는 순간 느끼는 전율을 맛보시기 바란다. 호텔 내, 초호화 레스토랑, 보야르스키의 요리사 에밀, 웨이터 주임인 로스토프 백작, 식당 주임 안드레이, 이 세 사람이 펼치는 믿음과 우정은 따뜻한 인간미가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준다. 이들의 하모니를 보는 즐거움은 덤이었다.
백작은 우리에게 말하는 것 같다.
“당신들의 문은 항상 열려 있어. 무엇이 두려운가! 행동하지 않는 자유는 종신연금생활자인 나와 다름이 없어. 용기가 없어 언어의 유희로만 끝나는 자유는 가치가 없다고. 갈매기 속의 니나를 보란 말이야.”
‘벚꽃동산’ 속, 하인의 마지막 독백은
“마치 내가 살지도 않을 것처럼 삶이 흘러가 버렸어. 이젠 아무것도 남은 게 없어.”였다.
백작과 하인의 말 중 어떤 것을 택할지는 우리들의 자유다.
그나저나, 노년의 백작은 까만 사과가 열리는 한 그루 사과나무를 찾았을까!
백작의 향기는 오래 남을 것 같다. 급히 도서관에서 빌린 <모스크바의 신사>를 내 곁에 두고 싶어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문장을 조신하게 필사했다. 그러나 글씨는 엉망이다. 진도가 급했으므로.
-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갑자기 하나의 필수 과정이었음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찾아든다 -
나무를 흔드는 바람에 이유가 있듯, 우리를 흔드는 외부요인은 필히 이유가 있음을 겸허하게 수긍해야 겠다.
사진이미지 : 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