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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달링 Oct 05. 2020

디자인 안 하겠습니다.

디자인하지 않을 용기

첫 번째 회사를 퇴사 후 들어간 디자인 회사에서는 정말 여러 가지 일을 했다.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작은 디자인 회사였기 때문에 레퍼런스를 쌓기 위해 명함이나 스티커 만드는 작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캐릭터, 웹사이트 제작, 간판, 메뉴판, 브로슈어, 리플릿 등 안 해본 걸 세는 게 더 빠를 정도로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경계를 넘나들며 많은 일을 했다.


글의 이해를 돕기위한 예시이미지 - 출처 : https://www.ejungle.co.kr/index.jsp


마침 그 해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해였다.

디자인 회사들은 나라의 큰 이벤트가 있을 때 디자인할 일이 많아진다.

특히나 국회의원 선거가 있을 경우 후보 소개 및 홍보물과 현수막 명함 등의 수요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실장님은 꽤 젊었고 얼굴이 유난히 예뻤다. 그래서 영업을 잘했다.

내가 느끼기엔 디자인보다 영업에 더 소질이 있어 보였다.

빠비 돌아가던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는데 전화를 받던 실장님은 얼굴에 미소가 확 번졌다.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정치 정당에서 전화가 온 것이다.

선거 홍보자료를 의뢰하는 것이구나 단번에 알아차렸다. 나는 새로운 일을 할 생각에 들떠있었다.

실장님은 무엇 무엇을 제작하려 하는지 한참을 물으셨고 거의 거래가 성사되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싸늘해진 얼굴로

“저희는 디자인 안 하겠습니다” 라며 전화를 끊는 게 아닌가.

“무슨 일 있으세요? 왜 안 하신다고 하셨어요?”

“아.. 그게요...” 잠시 머뭇거리면서 말하기를

“알고 보니 저의 정치 신념과 맞지 않는 정당에서 전화가 온 거였어요!

저는 그 정당을 위한 디자인을 하고 싶지 않아요!”

그땐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 정당의 일을 잘하면 레퍼런스도 쌓이고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은데

정치적 신념이 뭔데 이 작은 회사를 운영하면서 그걸 따질까 싶었다.

단지 정치 성향이 맞지 않다는 이유로 일을 거절하는 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피싱 사이트는 도대체 누가  만드는 건데?’


몇 해 전부터 어르신들을 상대로 금품을 뜯어내는 피싱사기 전화가 유행을 하고 있다. 은행과 정부에서는 문자를 통해 피싱사기에 당하지 않도록 안내문을 보내지만 어르신들은 진짜와 가짜를 잘 구분 못하신다. 우리 아버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느 날 아버지에게 걸려온 한통의 전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다급한 남자의 목소리

그 목소리는 다름 아닌 아버지의 아들! (나에겐 오빠)

“아버지 저 지금 어느 창고에 잡혀있어요. 이 사람들에게 4,000만 원 좀 보내주세요!

저 좀 풀어주게 해 주세요” 아버지는 심장이 덜컥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단다.

말을 더듬을 정도로 당황하셨고 온몸이 굳어가는 것처럼 느끼셨다고 한다.

나도 아이를 낳고 길러보니 어떤 심정이었을지 짐작이나 아빠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버지는 정말 오빠라고 생각하셨고 떨리는 목소리로 어디로 돈을 보내면 되냐고

허공에 대고 머리를 조아리며 “돈 보낼 테니 우리 아들 좀 살려달라고” 애원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전화를 끊었고 가짜 은행 사이트가 적힌 문자를 받으셨다.

정신없이 돈을 보내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서 허둥지둥 되고 계실 때 천만다행으로

어머니가 집에 들어오셨고 어머니의 빠른 대처로 4,000만 원을 날리는 일을 막으셨다고 한다.


만약 가짜 은행 사이트에 들어가서 정말 돈을 입금하셨다면

아버지는 4,000만 원이라는 큰돈을 날렸다는 상심 감과 함께 큰 우울증에 빠지셨을 거다.




근데 그렇게 똑같은 가짜 은행 사이트는 누가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누구나 속을 정도로 똑같이 만들려면 어쨌든 디자인 지식을 가진

어떤 디자이너가 그 일에 가담했을 텐데 디자인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왜 자신의 고유한 능력을 그렇게 나쁜 곳에 쓰는 걸까.

나는 이 세상의 모든 디자이너들이 확고한 철학과 신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돈이 된다고 아무 일이나 하지 않아야 한다. 나의 신념과 맞지 않는 정치를 하는 정당에게

“저희는 디자인 안 하겠습니다”라고 외친 멋진 실장님처럼 말이다.


나는 그제야 디자이너들은 어떠한 사명을 가지고 디자인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디자이너는 상품을 더 좋게 보이게 하고 돋보이게 해주는 일을 한다.

근데 그건 좋은 상품일 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내가 디자인을 해서 소비자들에게 전달되는 정보가 진실되지 않는다면 소비자들을 현혹시켜

엉뚱한 소비를 하게 만드는 그런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디자이너들이 그런 신념을 가지고 일을 한다면 이 세상에 남을 속이고 나쁜 물건을 파는

벌레 같은 기업들은 조금은 없어지지 않을까?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다.  정당하지 않은 디자인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디자인 안 합니다!”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라고!


"저는 그런 디자인 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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