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당신을 노리고 있다
가난한 계약직 은행원인 그녀, 이번 달은 재계약을 해서 보증금을 채워 더 나은 집으로 이사 가야 한다. 실적은 나쁘지 않지만 사회생활에 최적화된 약삭빠른 성향도 아니고, 번번이 남의 고객을 가로채 가는 다른 직원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해도 쓴소리 한마디 못하는 순진 무구한 그녀이다. 그나마 성실성 하나만은 인정받은 바 기대하던 정직원은 물 건너갔지만 대신 무기한 계약직에 만족해야 할 판이다. 여자 혼자 사는 것에 대한 남의 시선이 은근히 신경이 쓰였던지 남친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오피스텔 원룸에는 남성의 속옷에서부터 온갖 남성 용품이 준비되어 있다. 언제부턴가 원인 모를 최저의 컨디션 상황, 뭔지 모를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어느 날 잠긴 문으로 누군가의 침범의 징조가 보이는데 아무도 이 예민하고 소심한 아가씨의 신고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공포심은 증폭된다.
과연 툭하면 그녀의 방문을 두드리는 불청객은 누구일지, 이쯤 되면 관객의 궁금증은 슬슬 발동이 걸리기 시작한다. 이미 관객은 밤마다 그녀 곁에 알몸으로 눕는 한 남자의 존재를 알고 있다. 그 남자가 직장에서 은근히 추파를 던지며 비밀연애를 하는 과장일 것이라고 관객에게 상투적인 추측을 하게 만들지만 과장이 살해당함으로써 그 추측은 의미가 없어진다. 둘이 서로 다른 인물이라는 반전이 새로운 재미를 추가시킨다. 그녀 방의 침범자의 유력한 첫 번째 용의자인 과장이 제거되는 가운데, 두 번째 용의자가 수면 위에 떠오른다. 같은 봉천동에 사는 이웃이자 고객인 총각 한 명. 폭력 전과가 있고 가난한 청년이라는 열등감, 피해의식에 거칠어질 대로 거친 그는 스토킹으로 그녀를 괴롭히지만 결국 범인의 유전자와 일치하지 않아 용의자 선 상에서 제외되고, 역시 그도 죽음이라 결말에 이른다. 이 마저도 범인이 아니라면 또 누구일지 숨 막힐 듯한 공포감을 안고 그녀들만의 수사가 시작되는 가운데 진범과 맞땋뜨리게 된다.
상상했던 것보다도 더 끔찍한 상황이면서도 마치 영화 '미저리'를 연상케 하는 장면은 정신병자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701호에 거주하던 아가씨 팔다리를 잘라 버리고 그다음 타깃은 아래층 601호 사는 바로 그녀인 것이다. 난투극 끝에 여러 사상자를 낳고 범인은 죽고 사건은 종결된다. 이 모든 것이 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행해진 끔찍한 공포극이었다.
이웃과의 마음의 거리가 좁아지고 주변에게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으며 각자의 일에만 충실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향한 경고성 메시지이다. 공포의 근원은 바로 우리의 무관심에서부터 시작된다. 관심은 커녕 회사의 이미지 추락이 먼저인 탓에 힘없는 직원을 내쫓는 회사나 직장 동료, 상사들의 무관심과 냉대, 게다가 보호해 주어야 할 경찰들의 무관심으로 호미로 막을 일이 가래로 막는 상황에 까지 이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자는 누굴 믿고 살 수 있을까? 가장 범인 같지 않게 선하게 생긴 내 이웃이 가장 강력하게 해코지를 할 수 있는 흉악범이 될 수 있다는 상황에서 누굴 믿고 살 수 있을까?
추측과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반전과 공포를 긴장감 있게 표현하는 음향효과는 극을 한 층 고조시키는데 큰 몫을 하였고 관객은 모두가 셜록 홈스가 되어 범인 찾기 놀이에 흠뻑 빠진 2시간 반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