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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은 안식처다.
어릴 적 살던 집은 옛날 사택이었다. 일본식인지 아니면 한국의 근대식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안방 방구들이 있는 쪽이나 마루가 있는 곳 위에는 으레 작은 문이 있어서 지붕 아래의 널찍한 공간과 연결된 곳이다. '다락' 또는 '다락방'이라고 불렀다. 국민학교 때 새로 지은 현대식 주택으로 이사했을 때도 다락방이 있었다. 일종의 창고 기능을 했다. 부모님이 오랫동안 간직하던 물건을 쌓아두기도 하고, 평소에 사용하지는 않아도 버리기 아까운 세간을 보관하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추운 겨울에는 강정 같은 간식거리를 넣어놓기도 했다.
다락방은 어려서부터 안식처였다. 엄마가 외출하면 먼지로 덮인 다락에 올라가서 구석구석을 헤집으며 아버지가 보던 책, 잡지, 노트 등을 펼쳐보거나 공구함에 들어 있는 신기한 것들을 보며 상상력을 키웠다. 국민학교 때는 학교에 가기 싫은 날에는, 몰래 다락방에 가방과 신발을 숨기고 짱 박혀서 오전을 보내곤 했다. 어떻게 보면 현실의 도피처이자, 학교에서는 제공하지 못한 상상력을 키워주는 장소였다.
아버지가 집에 둔 자료는 주로 미군에서 발행한 한국 관련 화보나 해군본부에서 발행한 《해군•해병》 월간 기관지 같은 부류였다. 그리고 항해술과 관련된 전문 서적, 군 시절부터 써온 노트 등이었다. 어린이가 보기에 어려운 내용이었을 거다. 하지만 기억이 나는 건 6.25 전쟁 후 벌거숭이가 된 한국의 모습과 사람들, 전쟁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 등이었다. 그림이나 사진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다.
사진을 보관하는 앨범도 있어서 부모님의 젊은 시절부터 친척의 얼굴, 나와 동생들이 아주 어릴 때 찍은 사진 등을 볼 수도 있었다. 아주 어릴 때 갖고 놀던 장난감을 찾아내어 놀기도 했다. 구축함, 어뢰가 발사되는 잠수함, UH-1H 헬리콥터, 가슴에서 우주의 모습이 나오는 로봇, 오른쪽 레버를 내리면 다른 나라의 경치와 사람들을 보여주는 요지경 등... 당시 아버지가 해외에서 일을 한 덕분에 외국 장난감을 많이 갖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레고 블록이다. 그때는 두 칸, 네 칸짜리 블록이 대부분이어서 주로 성이나 집을 만들거나 총으로 만들어서 놀곤 했다. 기억에 다락은 피난처이자 안식처 같은 곳이었다.
요즘은 다락방이 없다. 하던 일을 멈추고 잠깐 쉬고 싶을 때 마땅한 공간은 동네 카페뿐이다. 스타벅스는 주차비 유료화 이후 별로 가고 싶지 않다. 무인 카페는 의자가 불편하고, 그나마 의자가 편한 투썸은 사람이 너무 많고... 그저 하던 일 멈추고 양다리를 책상 위에 얹은 채로 잠시 눈을 붙이는 게 요즘 머리를 식히는 안식의 방편이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