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대륙에서 인간은 항상 경매시장에 나오게 된다. 노동의 가치에 실증적으로 값을 매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비트리지다.
난문쾌답(234쪽)
*아비트리지Arbitrage: 차익거래, 동일 상품, 노동력이 지역에 따라 다를 때 이익을 얻는 방법
요 며칠 생각에 잠겼다. 그 탓인지 꿈을 꾸었다.
삼성에서 3번을 퇴직했다. 제일모직에서 퇴사하고 삼성물산으로 계열사 이동을 했다. 삼성물산을 그만두고 강호江戶에 거의 5년을 보내고 다시 제일모직에 입사했다. 이후 사업부가 삼성SDI와 합쳐지고, 명함을 바꿔 일을 하다가 거기서 퇴직했다.
변화가 생겼다. 신기했다. 고질병이던 월요병이 완치됐다. 일요일 오후부터 스트레스가 시작되어 밤에 잠도 제대로 못자는 고질병이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9년을 자유인으로 살았다.
기억나는 대로 꿈을 복기해보면, 다시 제일모직으로 들어갔다. 삼성에서 3번의 퇴직 후 4번째 입사가 된다. 출근 첫날부터 문제가 터졌다. 사원 카드가 사라졌다. 회사 출입이 쉽지 않았다. 어찌저찌하여 들어갔는데 출근 시간은 이미 2시간이나 지났다. 일을 할 줄 알았던 동료들은 다 무슨 파티를 했는지, 파하고 전부 돌아가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남은 사람들의 얼굴은 전부 낯설었다.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잠에서 깼다. 몸이 여기저기 뻐근하다.
지난 이틀 동안 머릿속을 복잡하게 한 건, 아직도 등가교환의 가치가 남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경력 증명을 떼기 위해 여기저기 연락하면서 사심私心이 마구 솟구쳤나 보다. 가치가 없는 일에는 기회를 잡는 모험이 필요 없다. 진입장벽이 낮기 때문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난 8년, 이 순간을 위해서 준비하는 것이었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미 '조직'이라는 곳에서 필요로 할 만한 매력도는 없다고 여겼다. 기회는 구경이나 하고 음미하는 대상이 아닌 잡아야 하는 실체다. 등가교환의 법칙이 통한다면 과감히 내놓아야 할 것이여러 가지다. 어차피 동시에 손에 쥘 수 없는 것들이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놓아야 하는 것과 같다. 전투적인 태도로 달려들어도 가질 수 있을까 말까 한데 마음은 덤덤하다.
10년 전 미국계 화학기업 한국지사장 자리를 잡지 못한 적이 있다. 7년 전 중국계 장비회사 지사장 포지션도 놓쳤다. 다 주인이 있는 자리였다고 받아들였다. 마음은 기대 반, 두려움 반이었다. 스스로 위로했다. 인생은 순리대로 살아야 탈이 없는 거라고.
욕심부리지 말고 이번은 흘러가는 물에 올라타야겠다. 예전 같으면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처럼 덤벼들었을 것이다. 도전적이고 진취적으로 보이니까. 남는 건 별로 없었지만... 시나브로 근육량도 줄어들고 뼈의 밀도도 낮아지는 나이에 접어들었다. 마찬가지로 마음의 근육도 부드럽게 변하나 보다. 무리하다가는 다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으니, 딱 할 만큼만 한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