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물어 배우기 #3. 山木 중 陽子之宋

美, 惡, 貴, 賤, 愛, 귀, 귄, 귀염... 괴안타?

by 김해보

<기정재 고전강독 5기 수업중 묻다, 2022.1.19>


美, 惡, 貴, 賤, 愛, 귀, 귄, 귀염... 괴안타?


장자-山木 중에서

陽子之宋宿於逆旅 逆旅人有妾二人 其一人美 其一人惡 惡者貴而美者賤

陽子問其故 逆旅小子 對曰 其美者自美 吾不知其美也 其惡者自惡 吾不知其惡也

陽子曰 弟子 記之 行賢而去自賢之行 安往而不愛哉

陽子(楊朱)가 宋나라에 갔다가 여관에서 하룻밤 묵었다.

여관 주인에게 두 명의 첩이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미녀였고 한 명은 추녀였다.

그런데 추녀가 귀한 대접을 받고 미녀가 천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양자가 그 까닭을 물었더니, 여관의 심부름 하는 아이가 대답하기를,

“그 미녀는 스스로 이쁘다고 여기는(말하는)데 저는 그 아름다움을 알지 못합니다.

그 추녀는 스스로 추하다고 여기는(말하는)데 저는 그 추함을 알지 못합니다.”

양자가 말하기를 “제자들아! 이를 기억하라. 현명하게 행동하면서도 스스로 현명하다고 행동하는(과시하는) 것에서 떠나면(피하면), 어디 간들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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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장자가 고작 그런(양자가 제자들에게 한 말) 정도의 이야기를 했겠냐고, 더 깊은 뜻을 헤아려보라는 숙제를 내주셨습니다.

양자와 장자의 인식 차이

저는 우선 이 글에서 장자와 양자가 사람들의 시선을 인식하고 귀천을 판단하는 방식의 차이가 느껴집니다. 저는 장자의 인식을 지지하는 편이라, 그 인식의 차이가 철학적 깊이의 차이로 생각됩니다. 이 글 바로 직전에 장자가 “材與不材之間 似之而非也 故未免乎累(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의 사이에 머무는 것은 그럴듯하지만 아직 완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누추해짐을 면치 못한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해 봅니다. 이에 비하면, 양자가 제자들에게 한 말에서, 愛와 不愛 여부로 貴하게 대접받았는지 賤하게 대접받았는지 판단하는 것부터 장자와는 다른 인식이라고 생각됩니다. 장자와 같이 材와 不材로서 쓰임도 거부하는 입장에서는 누구로부터 사랑받느냐 아니냐가 귀천 여부 판단 기준으로 작용할 리 없을 것입니다. 도덕경 13장의 “寵辱若驚(총애를 받거나 욕을 당하거나 한결같이 놀라워해라)”을 기억해보면 더 선명해집니다. 그리고 貴와 賤의 여부 평가를 자신이 가진(其) 美와 惡에 대한 자기 스스로의 있는 그대로의(其) 인식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인식(他知其美/惡/賢)에 좌우되는 것으로 생각한 것도, 物物自然(물은 스스로 그러하며 변화한다)한다고 보는 장자와는 다른 인식입니다. 세 번째는 자기가 인식한 본성이 그러하다면 오히려 자기의 본성대로 自美/自惡/自賢하는 것이 自然스러운 것일텐데, 그것이 세상 사람들의 자신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준다고 걱정하는 것이(제자들에게 이를 기억해서 삼가라고 말하는 것), 장자가 타인의 평가에 개의치 않는 태도(?)와는 다른 것 같았습니다.

흔하다, 천하다, 귀하다 – 인식의 전환

그런데, 아내와 요즘 저의 회사에서의 처지와 장자 공부 내용이 너무 맞아 떨어진다는 대화를 나누다가 또 다른 해석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약 20년 전에 아이들을 위해 썼던 과학책 중에서, 아마 장자의 입장과 비슷할 것 같은, 한편의 글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그 글에서 저는, 귀하고 천한 것은 흔하고 흔하지 않은 것, 그리고 적절한 쓰임새가 있고 없고의 문제라고 전하고 있었습니다(초등생들한테 말이지요^^;). 보통 “흔하지 않은 것”을 “귀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금이 귀하면서도 정말 “귀중”한 이유는, 금반지 같은 귀금속으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전자제품, 이빨, 심지어 김밥에 뿌려먹어도 될 정도로 “흔하게 쓰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글의 요지였습니다.

즉 흔하고 귀한 것이 물(物)의 본성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쓰임으로써 <흔할 수 있는 것>이 오히려 그 성질로서 <귀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반대로 “천하다”는 것은 품격이 비천한 것이 아니라면, “흔하다(common, usual)”, 즉 찾기에 “귀하지 않다(easy to get)”는 뜻일 뿐이지, 그것 자체의 “가치가 낮다”(not precious)는 뜻이 아닐 것 같습니다. 이것을 위의 두 여인의 “그 이쁘고 추함(其美/其惡)”에 적용하면, 사람들이 그것을 인식하거나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의 “흔하고 흔하지 않음”으로 “귀하고 천함”을 해석해 볼 수도 있습니다. 즉, 자기가 이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타인에게 그 이쁨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는 흔하고(그래서 천하고), 자기가 이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타인에게 그 추함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그래서 귀하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귄 있다 – 귀하다의 본 뜻?

그런데, 이걸로는 귀하고 천함과 사랑받고 사랑받지 못함 사이의 구별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요즘 흔한 남매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지만(?) “귀”하게 보이지는 않으니까요. 사실 이 남매는 이쁘지도 않습니다. 즉, 사랑받는 것과 귀한 것, 이쁜 것은 다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귀한 것은 귀중하게 여겨질 수 있지만 꼭 사랑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받는다고 해서 “귀”한 도 아닙니다. 사랑받는다고 “이쁜” 것도 아닙니다.

지난 주말에 광주에서 제주, 부산, 광주, 서울(고향은 포항) 사람이 모이는 모임이 있었는데, 거기서 모든 것을 깨우쳐주는 경험을 했습니다. 토요일 저녁, 남도의 상찬이 차려진 “지도로”(나중에 꼭 가보시길 권합니다~~)라는 식당의 사장님은, 우리나라 최초 K-1 격투기 선수 출신의 시인이었습니다. 참 귀한(흔하지 않은) 분이신데 그 분의 시심(시집 “민어의 노래”에서 확인해 보세요~~)은 또 귀중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시 “꽃말”에 쓰인 전라도 사투리 “귄”이 저에게 “귀천” 숙제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삐고 귄있다”는 말을 보더라도 “이쁜 것”과 “귄 있는 것”은 다른 뜻입니다. 정확하게는 “귄이 있다”라고 쓰는 것처럼, “귄”이 명사라고 합니다. 그 뜻을 물어보니 영어로 “charm”, “매력” 정도라고 하는데, 분명 “매력 있어서 사랑받을 만하다”는 뜻과 연결되는 것 같았습니다. 반대로 “귄 없다”라고 하면 “매력 없다” 뿐만 아니라 “영 재수 없다”는 뜻으로도 쓰인답니다.

다음날 아침 호텔에서 집밥 같은 조식을 챙겨주시는 식당 매니저님은 참 삭삭한 마음씨, 넉살좋은 입담, 맛있는 음식솜씨를 모두 갖춘 분이었습니다. 광주 출신 일행들에게 저 경우를 “귄 있다”고 표현해도 되냐고 물어봤더니, 그건 아니라고 하더군요. 1박 2일 이어지는 제 숙제 챙기기에 응대해준 광주 사람들의 설명들을 종합하면, 요즘 쓰이는 대로 “매력” 보다는 좀 더 깊은 뜻으로 “귀하게 보이는 그 사람의 성정” 같은 뜻이 있는 것입니다. 일행 중에 일본어를 모국어처럼 쓰는 분은 일본어에도 “品格ある”(Hinkaku aru, 품격 있는)이라는 말이 “귄 있다”와 비슷하다고도 했습니다.

귀엽다, 사랑스럽다, 귀 없다?

아무래도 “귄 있다”와 “귀엽다”가 관련이 있는 것 같아서,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귀엽다”의 어원을 찾아봤습니다. 학구열에 불타 <귄 있는 사투리 쥐> 이모티콘도 찾아내서 사보구요. 모두 정확한 답변은 못되지만, 가장 유력한 가설로 제기하는 어원은 <노(怒)엽다>와 같이 한자에서 유래한 것, 즉 <貴엽다>였습니다(주 1). 두 번째 가설은 <귀 없다>였는데, 여기서 <귀>의 의미가 <모가 난 물건의 모서리>로 보았을 때 <모난 곳(못난점)이 없다>라는 뜻이 되니 그럴싸해 보인답니다. 마지막 가설은 훈민정음 서문에서 보듯이 <어여쁘다>의 원래 의미가 <불쌍하다>인 것처럼, <귀엽다>의 어원 또한 <가엾다>로 보는 설인데, 근거가 더 희박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 번째 가설의 경우, 저도 장자 어디쯤에서 <無方하다>를 <귀가 없다>, <삐쳐 나온 것이 없다>로 해석되는 것을 봤기에(어디였는지를 까먹었습니다.~~) <귀 없다>가 <귀엽다>로 되었다는 설을 완전히 낭설이라고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세 번째 가설은 일본어 카와이(可愛い)와 중국어 可爱(ke ai)를 주로 “귀엽다”로 번역하는 것을 주목해서 다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외모를 표현할 때 "예쁘다"를 주로 사용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키레이(예쁘다)"보다는 "카와이(귀엽다)"가 주로 사용된다는 점, 원래 '약하고 가련하다'라는 의미(可哀想)를 거쳐서 현재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는 점(주 2)에서 이 어원설도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예쁘다, 귀하다도 아닌 “귀엽다”는 개념 자체가 최근에 생긴 것이라는 이야기도(주 3)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말의 어원을 따지면서 뜻의 분화 과정을 따르는 것(논리적 접근)과 유사한 발음을 찾아내는(현상적 접근)을 모두 적용하다가 보면, 오히려 온갖 가능성을 모두 반영하여 아전인수 격의 어원주장을 하게 됩니다. 공부할 때 경계할 일인 것 같습니다. 오히려 살아있는 사투리에서 확인되는 “귄 있다”가 명백한 증거인 것 같습니다. “귄”은 “귀함”과 (이쁜 것과 상관없이) “매력적임”, 즉 “귀여움”, 그리고 귀여워서 “사랑스러움”의 의미를 모두 담아낼 수 있는 말 같았습니다.


괴안타, 貴安다?

그런데, “귄”이라는 참 이쁜 광주 말을 듣고는 경상도의 심통이 발동했습니다. “귄”이 귀하고, 귀엽고, 그래서 사랑스럽다면 결국 앞의 글에서 양자의 인식에 딱 맞는 말이 되니까요. 사실 장자라면 좋은 걸 있는 그대로 “좋다”고 얘기할지, 아니면 그냥 “so so”이야기 할지 자신이 없습니다. 요즘 그걸 그렇게 얘기하는 마음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술 한잔 탓인지, 평소에 반어법을 즐겨 쓰다가 고생한 노무현 대통령까지 들먹이며,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지 못하는, 또는 말하지 않는, 경상도 사람의 “내적 불행”을 이야기했습니다. 경상도 사람들은 좋은 것을 “괴안타(괜찮다)”라고 얘기합니다. 얼마 전 싱어게인 시즌2를 보는데, 이선희씨가 방금 노래한 가수를 극찬하면서 쓴 말이 겨우, 자막으로 커다랗게 “괜찮다”라고 적히는 것을 보고는, 순간 제가 속으로 움찔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어원을 찾아보니, 국어학자는 <괜찮다>는 <공연(空然)=>괜>하지 않다>로 보면 발음은 적절한데 <공연>이 <아무까닭이나 실속 없다>는 뜻이므로 <공연하지 않다>는 나쁘지 않다는 뜻으로 쓰이는 것이 이상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경상도 사람에게는 이 상황은 너무 잘 이해가 됩니다. 그 국어학자는 굳이 그것이 말이 안 된다고 <괴이(怪異)하다>의 부정어 <괴이티 아니다>에서 어원을 찾으려고 하기도 했습니다.(주 4) 적절한 선택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고어가 아직 살아있는 사투리에서 찾으면 쉽게 찾아지는 것을 표준어 사용자들이 어렵게 못 찾는 것 같습니다.

국어학자들의 주장이 뭐든지, 언어적으로는 뭐가 답이든지 간에, 저는 <귀하고>, <사랑받을 만한> 것도 그냥 담담하게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마음이 오히려 장자의 마음에 아닐까 생각합니다. 국어학자들을 위해 어원 찾기 상상을 보태드린다면, <괴안타>의 어원을 <貴安다>로 해석하면 이 모든 상황이 다 설명됩니다. 매우 장자스럽지 않은지요?^^; 물론 은둔하지 않고 사회생활을 해야 하기에 꼰대나 목석이 되지 않으려고, 좋으면 그냥 좋다고 얘기할 수 있는 마음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말은 개념을 표현하고 소통하기 위한 상징과 약속일뿐인지, 말이 개념을 만들어내는 것인지... 저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우리 조상님들의 입소리 발음으로 한 말이, 사실 그 뜻은 동북아의 갑골문자와 상형문자의 인식체계가 반영된 것은 아닌지, 아니면 그것이 우리 고유의 정신세계인지도 헷갈립니다. 이건 또 다음에 물어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각주, 참고문헌>

주1. 온라인가나다 상세보기 '귀엽다'의 어원은?

https://www.korean.go.kr/front/onlineQna/onlineQnaView.do?mn_id=&qna


주2. 귀엽다 - 나무위키

https://namu.wiki/w/%EA%B7%80%EC%97%BD%EB%8B%A4


주3. 19세기 이전 영어에는 '귀엽다'는 말이 없었다

brunch (https://brunch.co.kr/@qmsoqm/10)


주4. 온라인가나다 상세보기(괜찮다) | 국립국어원

https://www.korean.go.kr/front/onlineQna/onlineQnaView.do?mn_id=216&qna_seq=139430

<말의 뿌리를 찾아서> ‘괜찮다’의 어원 :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36hjs&logNo=150124562745

[우리말로 깨닫다] 괜찮다, 일없다 – 재외동포신문

(http://www.dongpo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43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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