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 사회 인생 2막을 위한 문화예술
『액티브 시니어 보다 즐거운 어른』
- 초고령 사회 인생 2막을 위한 문화예술
<문화+정책 이슈페이퍼 Vol. 2025-3 (2025.3.12 발간>
"Joyful Adults: Beyond Active Seniors - Arts and Culture for a New Chapter in an Aging Society (by Hae-Bo Kim, Culture+Policy Issue Paper Vol. 2025-3, SFAC, 2025)
요즘 “액티브 시니어”가 유행입니다. 기업들은 고령 세대 중심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재편하는 “시니어 시프트(Senior Shift)”에 열을 올리고, 언론은 어르신들의 손 큰 씀씀이에 주목하는 경제 기사를 쏟아냅니다. 저성장기 경기회복 소비 진작 캠페인이나 기업의 마케팅 전략처럼 흘러가는 액티브 시니어 유행이 우리 사회가 직면해야 할 초고령 사회의 삶에 대한 생각 방향을 잘못 세팅할 위험성도 엿보입니다. 세태 비판에 그치지 않고 초고령 사회에서 문화정책의 역할 설정에도 참고가 되도록,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소비되고 있는 액티브 시니어 현상을 문화적으로 좀 곱씹어 봤습니다.
“액티브 시니어”의 정의는 혼선이 있지만, 주로 은퇴 이후에도 활발한 사회 및 여가, 소비 활동을 즐기며 능동적으로 생활하는, 통상 50세 이상의 인구를 지칭하는 말로, 특히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0년 이후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기존 고령자들과는 다른 시대(한국의 경제성장기)에 태어나 인적자본이나 교육 수준, 건강에 더 많은 투자를 받을 수 있었던 사람들로서, “파워 시니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바야흐로 초고령화 사회에서 어르신들이 복지정책의 대상으로만이 아니라 활발한 사회 주체로 주목받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지만, 다분히 새로운 돈줄이 될 “큰 손” 어르신들만 반기고 부추기는 듯한 사회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LG경영연구원(정지윤, 2023)은 “MZ 마케팅에만 집중하던 기업들은 다른 소비자군으로 눈을 돌려야 했고... 이들의 시선을 끈 것은 바로 시니어 세대”였다며 액티브 시니어 담론 유행의 배경을 진단했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세대주가 40~79세인 가구의 소비 유형 분석결과로 (나 중심의 선택적 소비를 하는) 액티브 시니어의 성향이 가장 두드러지는 연령대를 55~69세로 좁혔습니다. ‘부모로서의 삶’을 사는 경향이 더 두드러지는 40~54세는 빼고, 액티브 시니어의 공통 특징을 “경제적 여유를 바탕으로 한 왕성한 소비활동과 가족만큼 자신의 삶도 중요하게 생각하여 나의 행복을 위해 아낌없는 투자”라고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고령화 사회의 다양한 면을 보여주는 통계 숫자들을 제대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기업의 마케팅 전략 차원에서 찾아낸 “자신을 위한 소비 파워”라는 분석 아래에 전체 시니어들의 삶이 감추어지고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특히 초고령사회에서의 문화정책의 역할을 제대로 설정하기 위해 이들의 문화생활 통계와 이야기를 상세히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베이비부머 세대의 강한 소비력의 증거로 제시되는 통계치는 늦게 독립하는 자녀에 대한 뒷바라지와 전통적 가치관에 따른 부모 봉양을 위한 이중 지출의 결과로 파악됩니다. 서울연구원이 발간한 『한눈에 보는 서울 2024』에 따르면 50~60대 서울시민은 행복지수, 여가생활 만족도, 외로움 관련 지수의 연령대별 비교에서 모두 최저 수준을 보여줍니다. “수입을 위해 일을 더하기 보다 여가 시간을 갖고 싶다”는 답변 비율도 전 연령 대비 가장 낮게 나타나, 여전히 생계의 고단함에 매여있고 여가를 즐길 줄 모르는 특성을 여지없이 보여줍니다. 보건복지부가 2024년 10월에 발표한 <2023년 노인실태조사 결과>는 소득·자산 및 교육 수준이 높은 새로운 노년층의 등장을 말하고 있지만, “10명 중 3명 독거노인, 고독사도 7년 새 2배 증가”(한국경제, 2025.2.18.) 등 고령 사회에의 양극화 현상과 “장수 부모·백수 자녀 부양, 내 노후 불안... '삼중고'”(조선일보, 2024.11.29.)에 빠진 포스트 베이비부머의 현실을 보여주는 기사도 많습니다. 서울문화재단이 발간했던 『2017 서울시민 문화생활 리포트 – 삶과 문화에 대한 116명 시민과의 수다기록』에서는 제대로 놀아보지 못했던 베이비부머들이 이제 좀 삶의 여유가 생겨서 문화생활을 하려고 할 때 느끼는 사치스러움, 부담감, 막막함, 희열, 그리고 바람에 대한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노인 세대에 대한 단편적인 진단이나 특정 영역의 목소리만으로는 실제 노인들의 삶에 대한 적절한 정책 수립이 불가능합니다. 기업이 시장 세분화와 고객 타겟팅을 주요 전략으로 공략하는 것처럼, 초고령사회 대응 공공정책도 다양한 고령 세대들의 삶의 형태와 욕구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것이 정책 수립의 첫 걸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베이비부머를 포함한 노령층의 최근 삶의 변화는 그들의 소비 활동만이 아니라 문화적 측면에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50플러스포털 중장년 매거진에서는 액티브 시니어 세대에게 필요한 것들 다섯 가지로 “건강한 몸, 마음의 건강, 자기 관리·자립, 센스, 풍부한 경험의 공유”를 제시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인생 2막에서 여가 시간을 자신을 위해 쓸 줄 아는 마음과 능력이 필요합니다. 노년기 여가 활동은 몰랐던 재능과 가치 발견, 건전한 대인관계와 지지집단 형성, 지역사회 내로 통합, 외로움 줄여 주기 등의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정작 고령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른다’는 등 여가 활동에 대한 정보와 사전 준비가 부족하다고 파악됩니다(박선희, 2025). 특히 인생 2막의 주 테마가 될 외로움을 이기는데 문화예술이 필요합니다. 예술은 여태 자기 자신에게 외면당하면서 외롭게 지내온 또 다른 자아를 만나는 낯설고 어색한 활동을 도와줍니다. 인생 1막을 산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살펴보기 위해 거울 앞에 설 것이 아니라 빈 노트 앞에 앉아 보는 것을 권합니다. 그리고 고학력 베이비부머들 조차 아직 자신을 위한 여가 활동에 선뜻 돈을 지출하지 못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공공문화서비스가 중고령층을 위한 사회 안전망 차원에서 제공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이 꼭 취약계층이라서가 아니라, 액티브한 소비자 보다 액티브한 문화인으로 자리잡는 것이 그들의 인생 2막과 우리 사회를 안정적으로 만들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1948년생 시니어이시면서 오랜 전업주부의 경력을 노년의 글쓰기 창작 활동으로 단절시킨 “경력 단절녀” 이옥선 작가의 『즐거운 어른』으로 기업의 마케팅 전략에 포섭된 “액티브시니어”라는 말을 대체해 봅니다. 젊은 세대들이 나도 저렇게 살면 즐거운 인생이겠구나 하며 따라할 수 있는 즐거운 어른들이 많으면 좋겠습니다. 어른이라기 보다 소비자로 분석되는 액티브 시니어의 (부동산 불패 신화에 편승한) 구매력은 다른 세대의 존경이나 편안함 보다는 봉급이 절대 만들어 줄 수 없는 경제적 자유를 향한 불안한 투기심과 불편한 위화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마음의 허전함에서 나오는 자랑과 치장, 외로움 때문에 이끌리는 광장의 친구들이 젊은 세대들에게 존경받으며 즐거운 인생살이의 본을 보이질 못합니다. 일로 지친 몸을 술로 달랠 줄 밖에 모르는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뒤늦게 한글을 배워 “인생 팔십 줄 사는 기 와이리 재민노”라며 시집을 내고 영화와 뮤지컬의 주인공이 된 칠곡 할매들이 젊은이들이 본받을 즐거운 어른들이십니다. 초고령 사회라는 말의 뉘앙스가 별로 밝지는 않은데, 문화예술로 액티브하고 즐거운 어른들이 많아진다면, 그만큼 살아온 삶의 이야기가 많아서 더 다양하고 재밌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sea@sfac.or.kr)
< 목 차 >
0. 큰 손 어르신들에 주목하는 유행의 불편함에 대하여
1. 액티브 시니어 ~ 파워풀 베이비 부머?
2. 돈 잘 쓰는 노인? ... 통계 숫자와 그 이면의 이야기 제대로 읽기
3. 다양한 시각의 정책 준비가 필요한 양극화·초고령 사회
4. 몸도 마음도 건강한 인생 2막을 위한 문화예술
5. 즐거운 어른이 본보여 주는 즐거운 인생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