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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ㅅㅇ Sep 16. 2021

슬기로운 의사생활 #11

시즌2

레지던트 도망(?)

극 중에서 외과 레지던트 2년차 선생이 연락이 되지 않고 출근하지 않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펠로우인 장겨울 선생을 비롯하여 동기 레지던트, 안정원 교수 등이 걱정하고 해당 레지던트를 대하는 모습도 나온다. 또한, 중환자실 담당을 하며 어떤 고민을 했는지 보여주기도 한다. 죽어가는 환자를 보며, 의사로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무기력감을 호소하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어떨까?


우리 외과 선생님들도 1,2년차 때 느끼는 무력감이 정말 힘들었다고 한다. 응급실에서도 수술하다가도, 중환자실에서도 환자를 눈앞에서 잃을 때마다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 맡았으면 살았을까”라는 생각이 떠나가지를 않고 반복적으로 자책을 하며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고년차가 되고 전문의가 되면서 어느 순간부터 “사람 힘으로 안 되는 것도 있구나" 라며 인정하는 시기가 온다고 한다.


하지만, 드라마에서처럼 위와 같은 이유로 도망을 가는 경우는 없고, 드라마 특성상 너무 참의사(?)의 모습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현실적으로는 업무가 너무 힘들어서 잠도 며칠 못 자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병원을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쉬고 싶다는 생각에 잠수를 타게 된다.


그게 아니면 적성에 맞지 않다거나 추후 전문의가 되고 나서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해서 신중한 고민 끝에 사직서를 제출하는  그만두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도망갔다가  돌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도망갔는데 막상 바깥세상도 별거 없고 지금까지  것도 아깝고 어차피 다른  할게 아니면 하루 이틀 정도 쉬고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물론 동료들을 보기에 민망하다 보니, 그럴 때면 누군가 나를 다시 불러주기를 바라기도 한다고.. 이와 달리 상황에 대해 교수들은 의외로 무덤덤하다.


또 갔구나.. 조금 있으면 다시 오겠지?


드라마에서 레지던트가 도망간 이유가 현실적인 부분과 동떨어져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나온 의학드라마 중에서는 전공의(인턴과 레지던트를 모두 일컫는 말)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잘 반영했다고 생각한다. 도망가는 전후 상황을 보여주기도 하고, 나가서는 어떻게 지내는지, 병동이나 같은 의사 동료들이 맞이 하는 장면이라던지, 서로 간의 대화 내용이라던지, 병원에서 실제 있을 법한 부분을 잘 담아냈다.



교수의 폭언과 폭행

신경외과 교수가 수술 중 레지던트에게 "부모님이 너 이렇게 멍청한 것 아시냐" "아들 의사 되었다고 좋아하셨지?" "너는 죄송하다는 말 밖에 할 줄 모르냐" 등등 모욕적이고 폭언을 일삼는다. 어쩌면 선배 의사 중에는 욕설한 것도 아니고 나는 저것보다 더 한 말도 들었다고, 맞은 적도 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저 말이 괜찮은 걸까?


내가 레지던트를 했던 정신과 의국에는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가 있어서 폭언조차 경험한 적은 없지만 인턴 때는 수술방에서 무서웠던 기억이 몇 차례 있다. 주로 레지던트 혼나거나 교수가 일방적으로 수술이 잘 되지 않으면 화를 내거나 욕설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수술과에 대한 로망은 금세 사라지곤 했다.


물론, 모든 교수가 그러지는 않고 요즘은 시대가 폭언이나 폭행에 민감하고 인권이 중시되다 보니 10년 전과 비교해봐도 인식이 많이 변하기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도 전공의 폭행에 대한 기사를 종종 접하게 되고 특히 자주 거론되는 수술과 가 있는 것을 보면 그곳에는 전해 내려오는 잘못된 문화가 있는 것은 아닐지, 악습이 반복되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다고 도제식 교육에서 절대 혼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채송화, 안정원 교수는 스위트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분명히 혼낼 때는 혼낸다. 혼내는 방식에도 상대방을 충분히 존중하면서 할 수 있다. 오히려 그런 분들에게 한두 마디 들었을 때 더 임팩트가 있고 의사 수련 과정을 밟고 있는 제대로 된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조그만 실수에도 반성을 할 것이다. 다만, 스승과 제자라고 할지라도 권위적인 상급자와 하급자 관계에서 조금은 벗어나 참된 교육자라면 같은 의사 동료로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에서 더 성숙한 치료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에 엄격하게 교육해야 한다는 말로는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고, 폭언과 폭행은 엄연히 범죄임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통계 상으로 의료계 내부보다 환자와 보호자가 의료진에게 가하는 범죄가 더 많다는 사실 알고 있는가?


문제의식을 느끼고 국민의 관심이 많아질수록 법이 제정되고, 제도가 개선되면서 시스템적인 접근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가야 할 길은 멀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자정작용을 하는 등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고, 우리나라에서 환자와 의사 관계도 더욱 성숙한 문화가 정착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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