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미레이트 항공 객실 승무원
생명공학을 공부했지만 진득이 앉아 연구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잘하는 영어를 사용하며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어울려 일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찾던 중, 우연히 알게 된 외항사 승무원이 '아, 이건 내가 원하는 환경의 일이다!' 생각했다.
준비부터 면접까지
CV를 쓰고 틀과 면접방식을 알게 된 후부턴 미친 듯이 답변을 만들었고 스터디를 통해 실전처럼 연습했다. 답변을 외우면 안 된다고 하지만, 답변을 '통째로'외우는 게 비효율적이라는 것이지 답변을 외우는 데에는 요령이 있다. 사실 모든 300개가 넘는 면접 질문에 대한 답을 써 나가다 보면 결국 질문의 요지는 2-30개로 줄어든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질문이 곧 저 질문이었다. 모든 답변은 내 경험과 예를 들어 설명했다.
'저는 ~해서 긍정적이고 ~게 업무를 잘할 수 있습니다'가 아니라, '~를 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실제 경험)으로 ~했었고,...'
형식적인 대답이 아닌 상대방이 내 이미지를 그릴 수 있는 경험담을 모아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여 홍콩으로 날아가 면접을 봤다. 기억력이 안 좋은 내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날이다. 땀으로 범벅을 하고, 2층 침대가 다닥다닥 붙어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호스텔 통로에 기대앉아 면접을 위한, 우리나라로 치면 인성시험 같은 invitation questions를 제출했다. 다음날 캐리어와 배낭을 낑낑이고 면접장으로 가 500명이 넘는 면접자들과 함께 시험을 봤다. 한국인 반, 홍콩인 반인듯 했다. 자리가 없어 서있는 지원자들이 많았다. 일찍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8시간이 넘는 면접에 3~4번의 합격자 발표를 거쳐 필기시험을 치르고, 그 다음날 한시간이 넘는 최종면접을 치렀다. 한국에 돌아와 Golden call을 받았을 때 기분은 정말 짜릿했다. 구름 위에서,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내려다보고 하늘의 별을 보며 다니는 직장이라니. 졸업하고 뭘 하나 불안하셨을 부모님께 새삼 감사함을 느낀다.
두바이 Day 1
합격 후 두바이에 오기까지 두달간 후회 없이 미친 듯이 놀았다. 그냥 주야장천 놀았다. 낮에는 이곳저곳 발이 아플 정도로 돌아다녔고, 밤에는 이태원에서 새벽까지 춤추고 뒷골목에서 해장하는 맛에 살았다. 후회 없는 사랑도 했고, 친구들과 함께 합격해서 더더욱 기뻤다. 스터디 같이 한 언니들과 다 함께 붙어 두바이에서 가족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너무 귀한 인연.
그렇게 두바이에 도착한 새벽, 집은 악명 높은 두바이의 온도를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추웠다. 새벽 5시에 얼굴도 모르는 룸메를 깨우지 않으려고 물 한 병 없이 시베리아 같은 에어컨 바람에 덜덜 떨며 잠을 설쳤다.
n년차 비즈니스석 담당 프랑스인 룸메이트는 친절하고 깨끗했지만 - 냉방온도 합의점을 찾을 수 없었다.
'여긴 두바이야, 24도로 생활할 수 없어'
'프랑스에서 한 겨울에 히터를 30도 넘게 켜면서 18도가 웬 말이야'
하필 에어컨 온도가 전체 집안을 통제하는 시스템이라.. 새벽에 추위에 떨며 온도를 높이면, 룸메가 다시 내리고.. 언쟁을 반복했다.. 너무 괴로웠다. 결국 룸메가 Move out 하고, 그 이후 2명의 룸메가 더 있었다. Probation 기간 중 휴가를 다녀와 안타깝게 회사와 이별했던 한국인 언니, 그리고 청소가 뭐니? 설거지를 할 줄 몰랐던 우크라이나 아가.. 다사다난했던 두바이의 사막 Al Nahda와 작별하고 나의 사랑스러운 배치 메이트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 친구들과 가족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해줬고, 항상 함께여서 더더욱 가족처럼 느껴졌던 1년이었다.
두바이를 떠나기로 했다.
장거리 연애에 남자 친구와의 주기적인 갈등과, 한 달을 주기로 찾아오는 감기몸살에, 우울함과 외로움을 버틸 수가 없었다. 불면증이 심해져 잠은 오지 않아 매일 밤 울었고, 언제 그랬냐는 듯 이중인격자처럼 출근하면 방긋방긋 웃었다. 더 이상 뉴욕에, 모리셔스에 가는 것이 신나지 않았고, 스케줄을 받으면 잠 못 잘 걱정부터 들었다. 이러다간 우울증에 말라죽겠다는 생각이었다.
결국 생명공학이라는 전공을 살려 직장을 가질 예정이었지만, 일이 재밌고 많은 친구들도 만나 직장생활이 길어진 건 사실이었다. 1~2년만 하자고 생각했는데 2번째 SEP(Safety & Emergency 갱신교육)가 다가오고 있었다. 미련 없이, 더 이상의 후회 없이 그렇게 두바이의 짐을 정리해서 돌아왔다. 2~3달간 쉬고 자신감에 넘쳐 이제 구직 좀 해볼까 하며 별다른 준비도 없이 이력서를 넣을 때 - 온갖 좌절과 쓴맛에 남자 친구와의 이별까지, 지옥 같은 하루들이었다. 자신감은 0에 수렴 중이었지만 감사하게도 주변엔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2달 후 원하는 직무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것에 감사하다. 마치 지금의, 앞으로의 내가 있기 위해 있었던 일들처럼. 추억에 갇혀 떠나지 못했던 나를 보내줬던 사람도, 묵묵히 응원해준 엄마도, 혼자라고 생각했지만 혼자이지 않았다.
두바이에서의 처음과 끝만 써보았다. 다음 글부턴 잊을 수 없는 Destination에서의 기억을 적어보고 에미레이트를 떠나기까지 추억을 글로 남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