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한테 전화가 왔길래 "뭐해?" 라고 물으니 "늙어가고 있지." 라고 답한다. 월요일 대낮부터 슬프게 할래?
웃음이 나오면서도 뭔가 목에 걸리는 기분이었다. 농담처럼 던진 말인데, 그 말 속에 진짜가 섞여 있다는 걸 둘 다 알고 있었으니까. 사십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이제 늙는다는 게 뭔지 조금씩 알아간다. 그냥 숫자가 바뀌는 게 아니라,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는 것을. 예전엔 이틀 연속 10킬로를 뛰어도 끄떡없었는데, 이제는 하루 쉬어야 다음 날 제대로 뛸 수 있다. 밤새 술을 마시고도 다음 날 멀쩡했던 친구들이 이제는 "내일 출근해야 해"라며 11시 전에 귀가한다. 알코올 대사 능력이 떨어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야, 그래도 아직 젊잖아."
내가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친구는 한숨 섞인 웃음을 내뱉었다.
"젊긴 뭐가 젊어. 지금도 염색 안하면 흰머리 작살나."
마흔셋. 어디서 봤는데 우리 몸은 44세를 전후로 급격하게 변한다고 한다. 심혈관 질환 관련 분자 수가 크게 변하고, 지질 대사와 알코올 대사 능력이 떨어진다. 피부와 근육도 이 시기에 급격하게 노화한다. 우리는 지금 그 급행열차를 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이 늙어감이 전부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거다. 이십대 때는 몰랐던 것들을 이제는 안다. 무리하지 않는 법, 쉬어가는 법, 내 몸의 신호를 듣는 법. 매일 10킬로를 뛰는 대신 이틀에 한 번씩 뛰면서도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것. 무작정 달리는 게 아니라 존2, 존3을 나눠서 훈련하면 더 효율적이라는 것.
중년이라는 시기는 단순히 나이에 따라 규정되는 게 아니라, 삶을 다시 바라보고 재정비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라고들 한다. 빠르게 달려온 시간을 뒤로하고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을 찾아가는 시간. 느리게, 그러나 깊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시간.
"그래도 말이야." 내가 말을 이었다. "우리 여전히 뛰고 있잖아. 그것만으로도 괜찮은 거 아닐까."
친구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그렇긴 하네. 늙어가되, 멈춰 서지는 않고 있으니까."
사십대의 우리는 그렇게 늙어간다. 극적이지 않게, 조용히. 어느 날 갑자기 주름이 생기는 게 아니라, 거울을 볼 때마다 조금씩 낯선 얼굴과 마주하게 되는 것처럼. 예전엔 별생각 없이 먹던 치킨이 이제는 다음 날 속을 뒤집어놓고, 어쩌다 밤을 샌 후에는 사흘의 회복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40년, 50년의 러닝타임이 남아 있다. 몸의 움직임이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만, 나이가 든다는 것은 곧 성숙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음이 익어가고, 지혜가 풍부해지고 넉넉해진다. 그렇게 우리는 늙어가고 있다. 나쁘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