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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혜 Apr 12. 2024

공무원이 밀고 시민이 막던 날

용주골 성매매집결지에 공무원이 들어왔다.



  여자들이 가운데에 껴 서로를 밀었다. 정확히는 밀린 것이다. 현장에 있던 성노동자와 시민들이 함께 집결지 입구를 막았다. 집결지가 폐쇄되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본 파주시는 여자공무원을 앞에 세웠다. 철거를 위해 집결지에 들어와야 했기 때문이다. 남자공무원 한 명이 지시를 내렸다.


  "한 발자국 앞으로 가세요."


  그 말은 밀라는 뜻이다. 뒤에서 남자공무원들이 밀자 앞 줄 여자공무원들이 밀린다. 공무원이 밀고 시민이 버틴다. 아무도 움직이지 못한다. 또 지시를 내린다.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터져 나온다. 지시 내리는 사람은 대열에 없다. 다시 지시를 내린다. 다시 밀고 다시 버틴다. 쓰러진 사람이 나왔다. 과호흡 때문이었다.


  사람이 쓰러졌다고 외쳤다. 응급차가 왔다. 그리고 경찰이 들어왔다. 경찰은 공무원과 성노동자들 사이에 섰다. 밀고 버티기를 그만하고 서로 떨어지라는 뜻이다.


  그제야 성노동자와 시민들을 밀던 공무원들의 얼굴이 보인다. 파란색 조끼를 입은 여자공무원들은 아무 표정이 없다. 피곤해 보인다. 그 뒤에 용역이 보인다. 젊고 등치 좋은 남자들, 사이사이 여자들도 보인다.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정갈한 머리스타일이다. 머리에 왁스를 잘 발랐다. 장난을 치기도 하고, 사진도 찍는다. 저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어딘가에서 술 취한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그 남자는 시민대열을 뚫었다. 경찰대열도 뚫었다. 그러더니 공무원들과 용역 앞에 섰다. 큰 목소리로 말한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 밀 수 있습니까. 해도 너무한 거 아닙니까. 배운 게 없으면 무시해도 됩니까. 이게 인권침해지. 인권침해! 거리에 드러눕는다. 경찰이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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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 소리쳤다. 당신들에게도 소중한 것이 있듯 우리에게도 소중한 것이 있다고. 맞다.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마음에는 감히 법이 낄 자리가 없다. 소중한 걸 지키려고 막는 것이다. 여러 번 말해도 듣지 않으니 거리를 막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한 공무원이 물었다. 왜 통행을 방해하냐고. 그는 집을 빼앗긴 이들에게 "소통할 마음이 있긴 하냐"고 외쳤다. 왜 거리를 막는지 납득시키라며 소리쳤다.


  집을 지키는 사람은 집을 빼앗으려는 사람을 설득할 의무가 없다. 뒤에 있던 한 성노동자가 말했다. 무섭다고. 우리도 파주시민인데 왜 그러냐고. 술에 취한 아저씨가 말했다. 이제 좀 잘 살아보려는데 자꾸 왜 그러냐고. 공무원의 역할은 이 질문들에 대답하는 것이다.


  성노동자들도, 나도, 시민들도, 우리를 밀던 여자공무원도, 그날 모두가 안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모두가 동등하게 위험한 건 아니었다. 우리 중에는 더, 더, 더 안전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내게 오늘은 무서운 날이었다. 그러나 누군가에 오늘은 삶이 붕괴되는 날이었다. 법으로부터 되려 공격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소중한 걸 지키는데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위험에 처했다고 외치는 사람의 말을 믿어야 한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위험에 처한 것으로 봐야 한다. 없애버리는 게 아니라, 안전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없애면 안 된다.



집결지에서 만난 경찰들을 집 가는 길에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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