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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혜 Jun 07. 2024

터미널을 멈춘 노인  

  거대한 터미널의 한 조각에 자리를 잡고, 한순간에 고요해진 풍경을 마주했다. 웃음이 났다.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할머니가 승강장을 나가려던 고속버스를 향해 달려가면서 “멈춰요 멈춰!“라고 외쳤다. 할머니 뒤를 열심히 따라가고 있는 할아버지. 어디서부터 달려온 건지는 몰라도 지친 발걸음을 하고 있다.


  할머니가 버스로 달려가자 터미널을 나가려던 버스가 멈췄다. 형광색 옷을 입은 안내요원이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소리를 지르며 뛰어왔다. ”이러시면 안된다고요!!!“.


  거대한 고속버스터미널을 가득 메우는 짜증 섞인 외침이었다. 화가 난 안전요원은 큰 소리로 ”짜증나 정말!!!“이라며 한숨을 크게 쉬었다. 아무래도 안전을 담당하는 노동자 입장에서 할머니의 행동은 여러 방면에서 위협적이겠다.


  사람들이 각자 할 일을 멈추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터미널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놓은 주범들을 보기 위해 나도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마주한 풍경은 달랐다. 그들이 만들어낸 풍경은 고요했다.


  시간이 되면 열을 맞춰 재깍재깍 움직이던 버스들이 천천히 멈추는 풍경, 핸드폰을 하면서 버스를 기다리던 행인들이 천천히 고개를 드는 풍경. 버스 문이 열리자 주섬주섬 짐을 들고 천천히 버스 계단을 오르는 두 노인의 뒷모습.


  승객의 안전에 책임감을 지닌 그 안전요원에게는 미안하지만, 잠시 숨통이 트였다. 날 태우고 가야 할 버스가 떠났으니 멈춰 세워야지. 질서를 흩트리고 속도를 늦춰야지. 그들이 멈춰 세운 것이 내가 멈춰 세우고 싶은 것들과 겹쳐지면서,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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