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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뭉치 Mar 17. 2024

자책의 끝

탈혼 후, 전 남편의 현 애인들로부터 종종 연락이 왔다. 내 인스타그램은 어떻게 안 건지, “혹시 ooo 아시죠?” 라며 말을 걸어왔다. 언제는 미국인이었고, 언제는 한국인이었다. 그 이후로 모르는 여자에게서 스팸이 아닌 DM 신청을 받을 때면 마음이 덜컥 긴장을 한다. 하나 같이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었다. 그로부터 손찌검을 당하거나 협박을 받고 있었다. 나는 이제 그와 관련한 것이라면 역겨움이 올라와, 길을 걷다가도 허공에 발길질을 하곤 하는데, 그 여자들의 연락은 왠지 피할 수가 없었다.


내게 연락한 그의 현 애인들로부터 전해 듣기론, 그들뿐만 아니라 몇 명의 다른 여자들이 그의 이혼 후 연애사에 등장하고 있었다. 결혼하자는 얘기까지 했었다고 하는 걸 보니, 감정의 농도가 결코 옅지는 않았으리라 짐작한다. 시간이 지나 그 사건들을 곱씹다 보니,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한 궁금증이 든다. 그는 어떻게 나와 헤어지고 나서 그렇게 진하게 연애들을 하는 걸까. 좀 부럽기까지 하다.


나도 예전엔 친구들 사이에서 알아주는 금사빠였다. 열여섯 살 이후론 연애 공백기가 거의 없을 정도로 연애를 좋아했다. 누군가 나에게 호감을 보이면, 마음이 살랑거렸고, 내가 누군가에게 관심이 생기면, 십중팔구는 그 사람 역시 나를 궁금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세상만사에 호기심이 많은 나는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게 어렵진 않았고, 내 세계에 그들의 세계를 들여놓는 일이 익숙했다. 사랑에 빠지는 게 세상 쉽던 나였는데, 요즘은 마음이 낡아버린 철제 로봇처럼 삐걱삐걱 도통 작동을 하지 않는다.


탈혼 후 N번의 연애를 했다. 짧으면 2개월, 길면 4개월. 그동안 내 입에서는 사랑한다는 말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고, 여차하면 발을 빼버릴 태세로 연애를 했다. 아홉 살 연하를 만났더니 내가 엄마가 된 기분이라 헤어졌고, 열 살 연상을 만났더니 이 남자는 이 나이 먹고 왜 이렇게 징징거리나 해서 도망쳤다. 매사에 자신 넘치는 남자들이 꼴 보기 싫어서 과묵하고 점잖은 사람을 만났더니, 답답해서 죽을 것 같았다. 연애가 끝났을 때 타격감도 별로 없었다. 연애가 끝날 때마다, 상대방을 탓했는데 경험이 누적되고 보니, 문제는 나한테 있다 싶다. 이 관계에서 정말 도망쳐야 했던 건 나를 만난 그 남자들이지 않았을까.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할 수 없는데, 섣부르게 관계를 시작했었으니까 말이다.


결혼이라는 걸 해보기 전까지는, 내가 결혼 안 한 사람으로 살 거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 동생은 열일곱 살 때부터 강력하게 비혼선언을 했고, 결혼 안 할 거라며 당차게 말하는 친구들도 주변에 많았다. 그들의 결심을 지지하고 응원했지만, 그건 나의 미래는 아니었다. 세상이 무너져도 내 편이 되어줄 단 한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 예쁜 딸도 하나쯤 낳아서 딸과 커플룩을 입고 소풍을 다니고 싶었다.


언젠가 홀로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본 한국인 가족. 그게 내가 원하던 모양새였다. 엄마와 딸이 하늘하늘한 흰 원피스를 입고 아름다운 석양 속을 거닐 때, 세상 다 가진듯한 표정으로 그들을 카메라 렌즈에 담던 남자. 그 장면에 눈을 빼앗긴채 코로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들에게서 나는 향기가 짙었다. 내 삶에선 한 번도 허락된 적 없었던 안락함과 애정의 향기. 아빠 얘기를 하면 울던 엄마, 엄마 얘기를 하면 입을 꾹 닫아버렸던 아빠, 그들 사이에선 상상조차 사치였던 그 향기다. 그 세 사람이 내뿜는 향기가 너무 달콤해서, 저 장면을 언젠가 꼭 내 것으로 만들어내고 말리라 생각했다.


결혼 안 한 사람으로 다시 산지 3년째, 나는 자주 자책했다. 왜 나는 결혼을 못 버티고 도망쳐 나온 걸까. 그가 요구하는 대로 집안일을 도맡아 했더라면, 그가 원하는 대로 직업을 바꿨다면, 그가 말하는 대로 발레를 그만뒀더라면, 그가 욕을 하거나 물건을 던질 일이 없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지금쯤 우리가 당첨됐던 어느 신도시의 신축 아파트에서 예쁜 딸 하나 낳아 달콤하게 살고 있지 않을까. 이탈리아에서 홀로 훔쳐봤던 그 가족들처럼 하늘하늘, 우아하게.


그런 이상한 자책이 들 때마다 그 가족의 모습을 떠올리는 나를 보면, 그 장면이 나한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생각한다. 외로운 유학생의 눈길을 빼앗은 그 장면은 며칠 굶은 사람한테 쥐어준 사탕 같은 게 아니었을까. 당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결핍의 몸에 스며드는 사탕물. 혈당 스파이크에 정신 못 차릴 만도 하지. 이후로 허기질 때면 그 세 가족의 장면이 무슨 불량식품처럼 땡겼으니까 말이다.


남자들과 예전처럼 연애를 못하는 내가 낯설다. 연애와 결혼의 세계에 내 영혼을 두고 온 걸까. 이제 누군가가 쉽게 좋아지지 않는 걸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 세계에 두고 온 어린 시절의 내가 짠하지만, 이제 나는 그 세계로 돌아갈래도 돌아가지지가 않는다. 사랑받고 사랑하는 것보다, 내 마음을 흔드는 것들이 많아서. 동료들과의 치열한 회의, 나 자신과 씨름하는 글쓰기, 코어와 발란스에 집중하는 발레, 머지않아 다시 시작할 공부. 이건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내가 사랑하는 모양대로 사는 데 에너지를 아끼지 않고 있으니까.


이탈리아에서 만난 화보 같던 세 가족의 모습은 안타깝게도 내 것은 아니었지만, 다시 노력해도 그 세계로 갈 수 없는 걸 보면, 그게 내 것이 아닌 게 맞긴 맞았나 보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입맛도 여러번 바뀐다던데, 이제는 불량식품을 끊을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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