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난뱅이의 배반

by 뭉치

요즘은 바쁜 일상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내란정국은 이제 조금 적응이 됐는데, 미뤄둔 일들의 마감 기한이 슬슬 다가오니 째깍째깍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마음이다. 오늘은 전세계약 만료가 다가와 집주인한테 전화가 왔다. 스리슬쩍 계약연장을 하면 되겠지 편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집을 사려고 하니 집을 보여달라는 말에 가슴이 쿵 내려앉고 만다. 또 어디로 이사를 가야 하지. 마음이 또 마구 바빠진다. 이 집에 이사를 왔던 2년 전과 통장잔고는 같은데, 전세는 오르고, 월세는 더 많이 올라 이제 정말 갈 곳이 없다. 청년 이자 할인을 받을 수 있는 나이도 이제는 별로 남지 않았는데, 고양이 두 명을 데리고 또 어디에 터를 잡아야 하나 벌써부터 한숨이 푹푹 나온다.


사실 지금 직장으로 이직한 건 경제적 동기가 제일 크다. 이전 직장에서는 최저임금을 조금 웃도는 임금을 받았다. 주말 동안 울산에 사는 아빠를 보러 가고 싶은데 KTX 왕복 10만 원이 없어서, 혹은 아까워서 아빠를 보러 가는 걸 몇 번이나 참았을 때, 그게 너무 화가 났다. 집 밖에서 쓰는 천 원 이천 원이 아까워서 늘 도시락을 싸서 다녔고, 도시락 먹을 곳이 여의치 않으면 야외 테이블이 있는 편의점에 들러 두유 하나를 사고는 거기에 도시락을 펴놓고 먹었다. 바깥에 앉을 수 없는 겨울이면, 김밥 한 줄, 샌드위치 하나로 끼니를 때우곤 했다. 그런 내 꼬라지가 쪽팔리거나 자존심 상하지는 않았는데 연애를 하니까 그게 문제였다.


이름만 대도 모두가 다 아는 회사에 다니던 전남편과 헤어지고 난 이후로는 ‘대기업’의 ‘대’ 자만 봐도 치가 떨렸다. 나보다 돈 많은 남자는 일부러 걸렀고, 나보다 나이가 크게 어리거나, 외국인이거나, 힘이 그닥 쎄보이지 않거나. 어떤 식으로든 내가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어떻게든 나는 그를 이길 수 있어야 했으니까. 힘으로도, 돈으로도, 욕으로도 그를 이길 수 없어서 고작해야 잔뜩 화가 나 소리를 지르는 그의 등 뒤에 대고 몰래 뻐큐나 날렸던 내 과거를 생각하면, 나름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가난뱅이만 만났다는 얘기다. 데이트를 할 때 천 원 이천 원을 계산하고 있는 마음이 낯설었고, 내 가난도 겨우 버티는데, 상대방의 가난도 같이 감당하려니 솔직하게는 짜증이 났다. 내 가난은 애틋한데, 상대의 가난은 구질구질했다. 이렇게 말하니 진짜 나쁜 년 같아서 얼굴이 화끈해지지만, 정말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런 연애를 몇 번 하다가, 날씨 좋은 날 살랑이는 산책과, 여름밤 편맥과, 털 끝을 곤두세우는 섹스도, 그런 구질구질한 기분을 지우지 못할 때쯤 연애모드를 접었다. 혼자서 폼나게 가난한 편이 낫겠군 하면서.


그러다 몸이 아팠다. 울고 울고 울다가 뼛속까지 말라버리겠다 싶은 나날을 버티던 무렵이었다. 처음엔 몸이 아픈 이유를 몰라서 좌절하다가, 병원을 돌다 돌다 한의원까지 찾게 됐을 때, 결국엔 비싼 한약을 몇 달이나 먹어야 했다. 그 선생님은 먹으라는 것도 많았다. 오징어, 식혜, 김치, 오렌지, 고기 국물. 비건신념도 내려놓고 평소라면 절대 쓰지 않았을 액수의 금액을 식비로 쓰기 시작했다. 결국 병은 호르몬 문제였다는 걸 알게 됐지만, 아프고 나니 가난이 폼나기보다는 좀 지긋지긋해서, 채용 지원을 해보라는 제안이 왔을 때 그냥 이때다 하고 직장을 옮겨버렸다. 그래봤자 한 달에 60여만 원이 더 들어오는 건데, 그걸로 숨통이 트이는 게 좀 신기하다.


첫 월급을 받기도 전에, 나는 생전 하지 않던 쇼핑을 왕창 했다. 티셔츠, 운동화, 배낭, 귀걸이, 고양이 간식, 심지어는 이불까지. 휴대폰에 쇼핑앱을 깔고 스크롤을 내리다가 맘이 내키면 장바구니에 넣었다. 엄마가 다 떨어진 내 운동화를 나무라며 제발 새 신발 좀 사라고 잔소리를 할 때, “엄마, 내가 철마다 새 신발 사려면 활동가가 됐겠어?”하고 못되게 쏘아붙였던 나였는데. 그런 내가 무색하게 새 옷과 새 신발을 샀다. 새 직장은 도심 한복판에 위치해 있고, 그 거리를 또각또각 예쁜 구두 신고 걸어 다니는 또래 직장인들이 예뻐 보였다. 길거리에서 데모하고, 광장에서 연설하는 언니들이 아니라, 그저 거리를 걷는 그 여자들이 예뻐 보이다니. 내 인생에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다. 아파서 부어버린 얼굴과 다 떨어져 너덜거리는 신발이 조금은 부끄러워서, 아팠던 적도 없고, 가난했던 적도 없던 사람처럼 위장을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내 쇼핑을 아무한테도 들키고 싶지 않다는 거다. 집에 돌아오면 문 앞에 쌓여있는 택배 봉투가 챙피했다. 혹여 누가 볼세라 재빨리 집 안으로 옮겨두었고, 쇼핑 앱을 기웃거리는 걸 누가 볼까 봐 있는 시간에만 쇼핑을 했다. 다 떨어진 신발과 구멍 나기 직전의 가방은 쭈글거리긴 해도 숨기고 싶은 적은 없었는데, 난데없는 물욕이 발동한 나 자신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가 않았다. 월급이 오르면 단체 후원을 증액하거나, 후원처를 늘리거나 해야 되는데, 내 가난뱅이 친구 동료들을 곁에 두고 티셔츠 쪼가리나 사고 앉아있는 나를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속한 가난뱅이의 세계를 배반했다는 생각이 들어 한동안 마음이 찜찜했다.


활동가에게 가난은 어쩌면 숙명 같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활동가라는 내 소중한 이름표를 애틋하게 만지작거리면서도 아픈 몸과 가난은 왜 이렇게 미웠던 걸까. 감추려 해도 감출 수도 없는 것들인데, 기껏 몇 만 원짜리 티셔츠 쪼가리 몇 장과 새 파운데이션 정도로 그걸 감추려 했던 내가 우습다. 어차피 그런 나를 견디지도 못할 거면서. 질병과 가난은 하필 내가 제일 취약했던 시기에 찾아와서, 또다시 나를 그렇게도 미워하게 만들어버린 걸까. 나를 향하는 수치심과 적개심의 깊이가 그렇게 큰데, 다른 이들을 사랑할 수 있을 리도 만무했다.


누군가 공개된 내 일기장을 주르륵 읽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뭉치의 글, 존엄으로 가득해요.” 부끄러워서 도망가고 싶을 때마다 끄적였던 것들인데, 그 마음들을 그는 존엄이라고 읽었다. 어쩌면 취약성과 존엄은 종이 한 장 차이의 단어들이 아닐까. 내 취약성이 미워서, 감추려고 노력하다가 그것마저도 감추고 싶어질 때, 이러다간 나를 잃어버릴 것 같아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감추고 싶었던 택배봉투들을 치우며, 발가벗은 것 같은 마음으로 나를 다시 바라본다. 이렇게 취약하디 취약한 나도 감당할 수 있겠니, 사랑할 수 있겠니. 이 물음에 “예스”라고 답할 수 있을 때쯤 나는 도망가기를 멈출 수 있으려나. 이 마음들에 존엄이라는 이름을 붙여줄 수 있으려나.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