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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나 Sep 14. 2020

백수가 보내는 한 장의 사진엽서

자체 감금 생활과 카메라의 상관관계

  정신 차려보니 벌써 반년도 넘었다. 코로나 19로 강제 감금 생활을 시작한 것이.

  나는 기본적으로 스스로의 의지로 현관을 나서지 않는 사람이다. 최소한의 외출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루에 약속을 2개 이상씩 잡는 날도 있고, 혼자 살았을 땐 식재료 사러 가는 것이 귀찮아서 물로만 이틀을 살았던 적도 있다. (결국 근처에 사는 친구가 보다 못해 도시락을 사들고 왔다.)

  그래서 처음 코로나로 다들 밖에 못 나가는 것을 우울해할 때,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평소랑 똑같고,  심지어는 별로 가고 싶지 않은 약속이나 회식도 ! 24시간 침대 밖으로 한 발자국도 안 나오는 것도 가능한 방구석 폐인에게는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이런 나라도,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자체 감금에 미쳐버릴 것 같은 시기가 왔다.




  회사는 올 초에 그만뒀다. 코로나가 원인이긴 한데 자의로 그만두었기에 아쉽지는 않다. 다만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조금씩 받던 개인 작업도 다 끊겼다.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스튜디오에 가서 촬영하는 것이 유일한 외출이었는데, 이제는 정말로 집 앞 슈퍼 외에는 갈 곳이 없다.

  여름에도 긴 팔이나 집업을 꼭 챙겨 입기 때문에 모자에 검은 집업, 마스크까지 쓴 누가 봐도 수상한 차림으로 새벽 3시나 4시쯤 24시 슈퍼나 편의점에 가는 것이 백수의 유일한 외출인 것이다. 사실 이것도 간식이나 특별히 먹고 싶은 게 있을 때나 나가지, 보통은 출퇴근하는 동생이나 부모님이 퇴근길에 슈퍼에 들렀다 오니 집에 있는 것으로도 삼시세끼 해결은 가능하다. 물론 수면욕(게으름 욕구)이 식욕을 가뿐히 이기는 게으름뱅이이므로 하루에 한 끼 정도 차려먹으면 잘 먹는 날에 속한다.


  집에서 일도 안 하고 누워만 있을 거라면 다른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면 될 텐데, 나의 게으름은 식욕도 이겨버리는 수준이기 때문에 정말 다급한(미리 돈을 받아버린 외주의 마감이라던가) 일정이 아닌 이상 웬만해서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가 쉽지 않다. 노트북을 켜고 브런치에 글 쓰는 것도 일주일에 하나씩은 써야지, 하고 마음먹었으나 한 달에 한 개 정도 쓰는 것이 내 최선의 노력인 것이다.

  쓰다 보니 올해 말에 있을 자격증 시험을 등록해야 하는 것도 생각났다. 이것도 아침 먹고 할까..


  하루 종일 집에서 뭐해?라고 물으면 사실 별로 대단한 것도 안 한다. 정말 누워있을 뿐이다. 누워서 핸드폰 거치대에 핸드폰을 고정시켜놓고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1편부터 몰아본다. 그리고 유튜브를 보거나, 시간 죽이기 용의 핸드폰 카드 게임이나 꼬인 줄 풀기 게임 같은 걸 한다. 그리고 낮잠도 자다가 개한테 인형 몇 번 던져주고 하다 보면 하루가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짓을 반년 가까이 하고 있으니 질리지는 않지만 현타가 좀 온다. 그리고 보통 이맘때쯤이면 여름휴가로 일본에 가는 것이 마이 룰인데 일본은커녕 부산 대전 양평 홍대도 못 가는 상황이라니. 얼마 전부터 사진 첩을 뒤지기 시작했다. 인스타 스토리 기록에서 1년 전, 3년 전의 사진까지 끌어다 추억팔이를 하고 있다.

  2015년의 가을에는 부산에서 코스모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었고, 2017년의 여름 끝자락에는 도쿄에서 불꽃놀이를 하고 있었다. 도쿄에서 같이 불꽃놀이를 하던 친구는 지금 자가격리 중이다. 나는 백수고.




내 첫 인물 사진

  사진첩을 뒤지다가 오래전에 찍은 이 사진을 발견했다. 이번 글을 써야지, 한 것도 이 사진 때문이었는데 나는 말을 하다 보면 쓸데없는 서론과 사족을 너무 길게 해 버리는 안 좋은 버릇이 있다.


  21살, 얼마 되지도 않는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반년을 모아서 작은 카메라를 샀다. 좋은 카메라도 아니었다. 그냥 보급용 DSLR. 가벼운 미러리스를 사지 않은 걸 한 1년은 후회했지만 조금씩이라도 카메라로 일하게 된 지금은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때 나는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도 그다지 좋아한다는 건 아님) 주구장창 풍경 사진만 찍고 다녔다. 내가 큰 맘먹고 산 카메라에 담는 것은 분과 초 단위로 흘러가는 구름이나, 반짝이는 나뭇잎이나, 져버린 꽃잎, 부서져 내리기 시작한 돌담 같은 것들뿐이었다.


  모델인 당사자가 보지 않을 테니 하는 말인데 인물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이 사진 이후였다. 물론 제대로 찍기 시작한 건 이 사진 이후로 또 몇 년이 지난 뒤지만.. 그냥 이 사진을 찍고 나서 연속으로 누른 셔터 소리에 뒤를 돌아보는 모습과, 조리개 조절도 할 줄 몰라 하얗게 부서진 다음 사진들을 보면서 나는 내게 이 아름다운 순간들을 영원히 간직하게 해 줄 마법 같은 힘이 생긴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말주변도 그림 솜씨도 없는 내가 이 시간과 당신과 공간이 내게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마법. 이 풍경이 내게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로는 전달하지 못할 것들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




  사실 나는 사진 찍히는 것을 엄청 싫어하는 타입의 애였다. 지금 카메라를 잡는 게 신기할 정도로. 그래서 교복을 입었던 시절의 사진이 별로 없다. 나는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내 외형에 항상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었다. 카메라에 가감 없이 비치는 내 몸과 얼굴이 너무 싫었다. 남이 찍어주는 내 사진을 좋아하게 된 것도 내가 인물 사진을 찍기 시작했을 무렵부터니까 얼마 되지 않았다.


코로나 없던 작년의 바다에서 친구가 찍어준 사진

  그런데 이게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니 예뻐 보이더라고. 너무도 싫은 표정으로 찍힌 너무 싫었던 어린 내 모습이 생각보다 괜찮았다. 더 많은 사진을 찍어놓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내가 인물 사진을 처음 찍기 시작했을 때, 지인들과의 약속이 있을 때마다 카메라를 챙겨 나가 한 두장씩 찍어 보내주고는 했는데 처음 내 카메라와 마주한 친구들은 백이면 백 모두 카메라를 어색해했다. 렌즈 앞에서 굳는 건 둘째 치고서라도 커다란 DSLR 카메라에 찍히는 자신은 너무 적나라해서 못생겼다며 필터 걸린 핸드폰 카메라 앱을 건네주는 일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내가 뷰파인더 너머로 보는 풍경은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누르고 싶어 질 정도로 정말 아름답다는 것을, 나는 항상 말해주고 싶었다.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부정적이기만 했던 시선이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원래의 나였다면 눈길조차 주지 않고 그냥 지나갔을 깨진 담장 사이에 난 풀잎 하나까지도 눈여겨보게 된다. 아무래도 좋던 인생에서, 변해가는 내 시선에 비친 이 반짝이는 풍경을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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