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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벌레 Oct 21. 2023

우정에 대하여

"인생 전반의 복락을 위해 지혜가 구할 수 있는 모든 재화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우정을 얻는 것이다." 에피쿠로스, 『바티칸 금언』


진정한 친구를 찾아 헤맨다. '진정한 친구'는 어떤 친구일까?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떠나지 않고, 내 편을 들어주고, 내가 힘들 때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친구인가? 본인 살기에도 바쁜 생활에서 그 한 사람을 찾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뿐만이랴, 나이가 들고 자기가 책임져야 할 가정이 생긴다면 '친구'를 찾는 것은 허무맹랑한 소리처럼 들리기까지 한다. 


우정은 사랑을 껴안는 단어다. 우정이 깊어지면 사랑이 된다. 그 의미에서 결국, 진정한 친구는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한 사람은 도대체 어딜 가야 만날 수 있을까? 그 '영원한 내 편'은 있기나 한 것일까? 


"모든 우정은 그 자체로 인해 바람직하다. 하지만 우정은 유익성으로부터 시작된다." 에피쿠로스, 『바티칸 금언』

야박하게 들리겠지만, 우정은 기다린다고 나타나지 않는다.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는 그 편지를 적어 주어야 한다.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는 그 편지를 소중하게 적어 먼저 건네주어야 한다. 내가 힘겹게 쌓아올린 성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해 주어야 한다. 아니, 나의 오장육부가 꾸물거릴만큼. 그 사람을 떠올리며 바라보는 하늘이 너무도 찬란해서 눈물이 날만큼. 그렇게 대가를 치르는 편지를 적어 주어야 한다. 


나도 한 때 실제적인 도움을 바라며 산 적이 있다. 그 한 사람만 나타나면 내 삶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운이 좋게 한 모임에서 우연히 알게 된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나보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웠으며, 내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고자 나의 행복한 삶을 바라는 어여쁜 마음으로 경제적인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그 우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그 친구에게 유용함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친구에게 대가를 치를만큼의 마음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의 관계는 멀어졌다. 그 시간 이후 오랜시간 나를 미워했다. 나의 무능력함, 무용함, 역량없음에 괴로워했다. 그 시기를 지나며 스승은 내게 돈부터 벌라고 했다. 그 때는 깨닫지 못했다.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5년이 지난 지금, 스승에게 자기배려에 관한 수업을 듣고 있다. 그 편지가 다시 떠올랐다.


 저는 이제 벌레씨의 선생이 아니에요.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 가세요. 저에게도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마세요. 물론 이 말이 '본인의 고민과 문제들에 대해서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에요. 하지만 벌레씨의 고민과 문제에 직대면하기 위한 이야기가 아닌, 불안과 혼란을 회피하기 위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저 묵묵히 견뎌내세요. 


이 편지는 그가 준 내게 최초의 각성을 일으켜 준, 유용함이었다. 야박할 정도로 차가운 편지가 마음이 미어지도록 따뜻하다. 그는 내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지 않았으나 자신보다 나를 걱정해주며 자신보다 나를 위하는 시간들을 통해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었기 때문이다. 


욕심이 앞선 채 한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을 때가 있다. 그 친구는 매일 나를 고꾸라지게 하고, 넘어지게 할 것 같은데 내가 줄 수 있는 유용함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게 한다. 각자만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투성인 이 뾰족한 세상에 참 잘해줄 것밖에 없는 그 사람을 무작정 뛰어가서 안아주고 싶다. 그런데 그의 성 안에 벽은 너무 두껍고, 문도 참 많다.


서러울 때도 있고, 기다리게 만드는 순간들이 쌓이면 서운할 때도 있다. 그 순간 나의 부족한 것을 본다. 내가 네게 줄 수 있는 유용함을 떠올리면 참 부질없구나 싶어 미안하다. 밥벌이해야된다는 핑계로 소중한 것들을 놓치며 살아 너의 표정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나를 지키지 못해 너를 지키지 못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기에 너 또한 있는 그대로 비추어주지 못하는 하루들이 쉽지 않은 나날들이다.



스승이 용기란 스스로의 모습에 괴로워서 하는 마지막 발악이라고 했다. 용기는 의지로 되면 좋겠지만 용기란 그렇게 쉽게 생기는 것이 아니더라. 그 발악을 하기 위한 시간들을 보낸다. 

결국 진정한 친구란 평생 내가 받을 수 있는 도움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나의 유용함을 주고 싶은 한 사람이다. 그 사람의 유용함은 그 사람이 가진 유용함보다 내가 유용해지도록 하게 하는 그 각성을 주는 그 자체가 그 사람의 유용함이 아닐까. 


그 각성이 일어나는 순간 나의 녹는점은 도달한다. 나의 녹는점이 도달하는 순간, 내가 쏟는 용기는 전부 너다. 그 순간까지 애매하게 넘어가려 하지 않고 이 순간들을 충분히 더 깊어지고, 괴로워하고, 낮아지며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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