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철학수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준 Apr 27. 2024

배워도 다 못 배운다

선이란 무엇인가 - 자비(慈悲)

나만을 위하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남을 위해 주고 싶은 마음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나만을 위해서 한다는 것은 결코 그 하나만으로 성립하지 않으며 남을 위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선이란 무엇인가> 스즈키 다이세쓰


밖에 나가는 것이 싫었고,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내 곁에 있어주려고 하는 사람들은 매우 힘들어했다. 소중한 사람이 아파하는데 어떻게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들의 삶도 서서히 조각나기 시작했다. 엄마의 표정은 늘 어두웠다. 늘 마음의 부침이 가득했다 불안해보였고 버거워보였다. 집 밖에 나가 밥벌이는 하는 곳에서는 식당 사장 눈치보랴, 집 안에 와서는 자식 걱정하랴 자신의 삶을 지켜낼 수도 없고 그럴 의욕조차 없었다. 

당시 언니는 첫 아이를 임신했다. 당신의 몸에 첫 생명이 생긴 소중하고 기적같은 시간들이었다. 몸 관리도 잘 해야하고, 먹는 것도 잘 먹어야하고, 주변의 도움도 참 많이 필요한 시간이다. 엄마가 될 준비를 하는 시간의 당신의 엄마가 얼마나 그리웠을까? 하지만 엄마는 둘째딸 때문에 첫째딸의 기쁨에 함께하지 못했고 신경쓸 새가 없었다. 그 중 다행은 형부가 언니와 늘 함께해주고 최대한 직장생활이 아닌 시간을 함께해주며 언니가 겪는 신체적 변화, 호르몬으로 인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지날 때 외롭지 않게 곁에 있어주었다.


소중하고 작은 아이가 태어났다. 나에게 첫 조카가 생긴 날을 여전히 기억한다. 그 작은 생명을 보고싶은 기쁨은 나의 슬픔을 압도했다. 아무런 고민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말이지만 아이를 보러가는 길에 큰 망설임이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 아이가 소중하고, 예뻤다면, 그 처음 세상밖으로 나온 아이를 정말 위했다면 난 그 날 문 밖으로 나왔어야 했다. 여전히 난 내가 중요한 사람이었다. 나만 보고, 나만 중요하다고 여기는 마음은 진짜 나를 위하는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몰랐다. 나만 중요한 사람은 나를 위하는 삶을 살아낼 수 없다는 것을 그 때는 몰랐다. 그리고 나만큼 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음과 나를 진짜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은 동시적이며 결국 같은 것이라는 것을 몰랐다.


언니는 이제 아이를 더 이상 낳고 싶어하지 않는다. 엄마가 끓여주는 미역국도 먹지 못했고,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남편과 둘만의 시간을 갖지도 못했다. 언니에게 아이는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선물이지만, 그 과정에서 겪고 혼자 감당해야 했던 어려움을 다시 겪고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작은 슬픔은 세계의 슬픔이 되고, 나의 작은 기쁨은 세계의 기쁨이 된다. 나의 작은 행동 하나가 한 아이의 생명으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은 과도함이 아니었다. 너를 위한다고 했던 행동들이 진정으로 나만을 위해 했던 행동들은 없었기에 가닿지 못했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혼자 기대하고 실망하고의 텅 빈 반복이 아니었을까? 


너를 소중히 대하지 못해서 나를 소중히 대하지 않았다. 나를 배려하지 않았기에 너를 배려할 수 없었다. 나를 돌보는 삶은 곧 너를 돌보는 삶이었다. 나를 위하는 마음으로 행하였던 것들의 물줄기의 방향은 주로 불행 또는 슬픔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알고자 배우고 또 배웠다. 하지만 그것으로 완성되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배웠다. 아무도 내 것을 대신해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배움을 가르쳐준 사람은 이미 너를 위하는 마음과 나를 위하는 마음이 같다는 것을 삶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너에게 주고 싶고, 나를 위하고 싶다. 나를 위하고 싶고, 너에게 주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