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나 (조현철, 2023)
조카의 사진을 가끔 본다.
볼 때마다 '맑음'이란 걸 의인화한다면 이런 모습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문득 [떼다]라는 동사가 떠올랐다.
걸음마를 떼고, 숫자를 떼고, 한글을 떼고, 이제 초등학교에서 덧셈과 뺄셈 뗄 준비를 한다.
하나씩 떼어 간다. 떼어내고, 붙이고, 떼어내고.
무슨 말을 시작할 때도 입을 뗀다고 하고
옮길 때도 발걸음을 뗀다고 하네.
떼야만 한다. 나아가려면.
또, 하나의 시작은 무엇인가를 떼어내야만 한다.
떼어낼 수 있을까?
지금 나에게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들을 다 떼어낼 수 있을까?
떼어내야만 하는데, 그래야 나 한 발 나아갈 수 있는데.
삼켜내는 것. 꼭꼭 씹어서.
이미 나한테 달라붙은 이상 아무것도 없었던 흔적으로 할 수 없다.
떼어내고 싶은 그 절박함으로 하나씩 꼭꼭 씹는다.
배가 더부룩하고, 견딜 수가 없어 옴짝달싹하지 못한다.
결국엔 1g도 삼켜내지 못하고 씹다만 채 멈춘다.
그리고 그다음엔
흉내만 내고 씹지도 못하고 멈춘다.
절박하지 않았나 보다. 에라 모르겠다고 하고 싶다.
이젠 삼켜내지 못한 허여먼 것들만 남아있다.
한참을 떼어내지 못한 것만 바라보았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고개를 들어 보게 됐고, 볼 수밖에 없었고, 멈출 수 없었다.
거긴 한 사람의 코끼리 행진으로 다 쓸려버린 너희들의 남겨진 자리였다.
한참을 울었다. 허여먼 것들로 너희는 쓸려갔다.
내가 삼켜내지 못해서 내가 떼어내지 못해서
고개를 한 번도 들지 않아서
너희들은 떼어져 버렸다.
너무 늦게 알아버린 게 내가 죽기 전까지 삼키지 못할, 떼어낼 수 없는 까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