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ucingRan Oct 17. 2022

역시 나는 만두를 미워할 수는 없어

023. 만두



몇 년 전 고모들과 함께 동승하여 지방을 가는데, 작은 고모가 말했다. “아, 명절마다 엄마가 만들어 줬던 만두 먹고 싶다.” 듣고 있자니 약간의 부아가 치밀어서 내가 말했다. “고모, 그거 다 내가 만든 거야. 명절마다 내가 만든 만두를 고모한테 싸준 거라고.”


나는 10대 시절에 조모에게서 신체적, 정서적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 그 사실은 나의 결핍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깨달았던 20대 초반에 알게 되었다. 조모가 시키는 여러 가지 집안일들을 했었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명절에 빚던 송편과 만두다. 조모가 별세한 이후로 지금도 송편은 거의 먹지 않지만, 어쩐지 만두는 멀리할 수가 없었다. 내가 좋아했던 음식이기도 하고 결국에는 내게는 큰 영향을 주었던 음식이기도 했다.


손으로 뭔가 만드는 것은 즐겨 했기에 송편이나 만두를 빚는 행위 자체는 좋았다.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딸을 낳는다는 헛소리를 듣는 건 싫었지만, 실제로 예쁘게 빚는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10대 시절 내내, 매년, 명절 연휴 전부터 앉아서 꼬박 사흘간 수백 개를 빚고 나면 어깨도 허리도 목도 빠질 것 같이 아팠다. 몸이 아파서 못 빚겠다고 하면 조모는 먹지 말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만들던 모든 만두를 많이 먹었던 것도 아니었다. 10대 꼬맹이가 뭐 그리 많이 먹는다고.


내가 빚어서 가지런히 열 맞춰 쟁반에 올려두면 조모는 바로바로 찜기에 넣어 만두를 익혔다. 그리고 터진 만두와 잘생긴 만두를 분리해 두었다. 터진 만두는 매번 내가 먹었고, 잘생긴 만두는 포장되어 냉동실로 향했다. 냉동실에 있는 잘생긴 애들은 모두 고모들을 위한 만두였다. 몇 년 경험을 해보니 예쁘게 빚어봐야 조모가 본인 딸들한테 생색내는 용도라는 걸 알았다. 결국 열심히 해봐야 내 몫으로 돌아오는 건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은 꼬마는 꾹꾹 눌러서 마무리하는 과정을 부러 소홀히 한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조모의 호통을 들어야 했지만, 결국 불었거나 터진 만두는 결국 내 몫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내 몫의 양만 조금 늘어났을 뿐, 불어 터진 만두가 맛있었을 리가 없다.


20대 이후로는 만두를 빚었던 적은 없다. 다행인지 거주했던 곳들마다 근처에 만두 맛집이 있었고, 맛있다고 소문난 곳들을 찾아다니며 만두를 먹었다. 언젠가 절친과 맛있게 먹었던 유명한 새우만두, 쫀득하고 두꺼운 피로 만든 중국식 만두, 홍콩 여행에서 체류하며 내내 먹었던 딤섬, 간간이 튀겨 먹었던 냉동 만두 같은 것들.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속이 꽉 찬 만두를 생각하면 역시 나는 만두를 미워할 수는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나몬 향 가득한 겨울 루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