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 달리기
요즘 나의 생활 루틴은 굉장히 단순하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달리거나 수영장을 가고, 일기를 포함한 글을 쓰고, 책을 읽다가 잠든다. 주 3회 정도 꾸준히 달리려고 하는 중이다. 일을 포함한 취향, 루틴, 가치 등의 나를 이루는 모든 것들은 정말 ‘어쩌다’ 나의 일부가 되었다는 것을 불현듯 실감하고 있다. 불과 6개월 전에는 한 달에 한 번 달렸는데, 지금은 한 달에 10번 이상 달리고 있으니까. 사람 앞 일은 역시 모르는 거고,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더 재밌는 것이다.
달리기는 내게 ‘힘든 과정’이었다. 종종 힘든 일이 있거나 스트레스나 분노가 쌓일 때면 밖에 나가 무턱대고 달렸는데, 당시 내게 달리기만큼 힘든 순간이 지속되는 게 없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들이 마시고 내쉬는 호흡조차 몹시 힘들어지고, 다리는 기운 없이 후들거렸다. 그렇게 30여 분을 내리 달리다 보면 내가 가진 스트레스나 분노의 감정, 힘들다 여기는 모든 것들이 하찮게 느껴지고는 했다. 한겨울에도 무작정 달렸는데, 나는 그런 시간을 ‘분노의 질주’라 불렀다.
한창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때 어떤 이가 마라톤을 준비한다면서 내게도 달리기를 권유했다. 친했던 사람도 아니었고, 내가 아주 가끔 달린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흥미가 돌았다. 무언가 몰두할 것이 필요했던 시기여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무턱대고 장거리를 달리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5km를 목표로 두고 거의 매일 한 달을 달렸다. 갑자기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마라톤은 취소가 되었고, 함께 달리자던 이는 야근이 잦아져 점점 멀어졌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비대면 5km 단거리 마라톤을 시작했다. 내가 그때부터 달리기를 꾸준히 해왔다는 걸 그는 아마 영영 모를 것이다.
나는 농담 삼아 달리기를 ‘운동’이 아니라 ‘노동’이라 부른다. 부지런히 팔다리를 앞뒤로 움직이면 심장은 빠르게 뛰고, 허벅지에는 관성이 생긴다. 그러다 어느 순간 호흡은 편해지지만 몸에 열이 오른다. 그제야 몸이 제대로 일을 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분노의 질주를 하던 내가,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는 게 흥미롭다. 달리면 달릴수록 지구력이 생긴다더니, 오히려 체력은 잘 모르겠지만 마음에는 조금의 지구력이 늘어난 것 같다. 6개월 동안 관성처럼 달리고 또 달리다 보니 겨우 달리던 5km는 거뜬해졌다. 2주 후에는 마음먹고 7km를 달려보려 한다. 내년에는 10km 달리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상상해 보니 달리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 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