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8. 블로그
이제는 쓸모없는 바이럴 마케팅의 용도로 전락해 버렸다고 하지만, 나는 아직도 블로그를 놓을 수가 없다. 편리함에 손을 놓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오랫동안 블로그라는 공간에 별의별 이야기를 해와서 그런 것 같다. 누가 보든 말든, 거의 대부분 공개지만 때로는 비공개로, 즐겁고 힘든 모든 순간이 담겨 있다. 블로그로 알게 된 수많은 소중한 인연들이 있었고, 그들과 손편지와 선물을 주고받기도 했고, 실제로 만난 이들도 있었고, 어떤 이와는 연애를 하기도 했다. 지금은 블로그를 하지 않아도, 연락이 닿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그들의 생을 잘 살고 있으리라 믿고 있다.
웹에다 내가 찍은 사진이나 일기 같은 기록을 올리기 시작한 게 얼마나 됐나 더듬어 봤더니, 블로그를 사용한 것만 20년이 되어간다. 추억의 싸이월드를 나도 거쳤지만, 어쩐지 싸이월드의 작은 창이 답답하여 바로 블로그로 넘어왔다. 이 정도면 블로그에 없던 애정도 쌓일 시간이 아닌가. 매일 일기를 썼다가, 주 단위로 썼다가, 월 단위로 썼다가, 다시 매일 일기 쓰기로 돌아왔다. 요즘에는 주 단위도, 월 단위도 같이 쓴다. 참 많이도 쓴다.
블로그의 장점 중 하나로 꼽는 것은 사진과 글을 모두 저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끔 내 기억을 믿지 못할 때 검색을 해본다. 단어 몇 개로 언제 내가 무엇을 먹고, 누구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했고, 그날의 기분은 어땠는지 모두 확인할 수가 있다. 그때 먹었던 음식의 사진이나 풍경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기록에 기록을 계속 쌓아가는 나의 꾸준함 때문이겠지만, 결국 검색 기능을 가진 블로그여서 가능한 것이다.
지금은 워낙 짧은 글이나 동영상, 예쁜 사진이 대세라지만, 어쩐지 나는 계속 블로그를 놓고 싶지가 않다. 돈을 받고 광고를 올리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고 하지만, 나처럼 개인적인 기록을 남기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서로 정답게 이웃하며 매일 안부 글을 남기고, 그의 글을 읽고 공감하며 댓글을 남기던 귀여운 문화는 많이 사라졌지만,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건 꽤 따뜻한 추억이 되어서 블로그라는 차가운 웹 공간을 지펴준다. 그래서 오래도록 블로그는 남아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