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7. 수집
나의 수집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조부모와 살던 10대 때는 나의 공간이라고는 두세 평 남짓한 작은방이 전부였다. 아주 오랫동안 사용했던 철제 책상이 있었는데, 열쇠로 잠가둘 수가 있었다. 책상 서랍을 꺼내보면 안쪽에 빈 공간이 생겨서 비밀스러운 기록을 숨겨두고는 했다. 그런 책상 서랍에는 온갖 물건들이 가지런하게 모여있었는데, 사촌 동생들이 명절에 놀러 오기만 하면 매번 내 서랍을 털었다. 신기하고 재밌는 물건이 많다고.
타인을 소중하다 여겼던 때에는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쪽지 편지까지 끌어안고 있었는데, 어느 날 편지만 넣어둔 박스가 가득 차서 뚜껑이 덮이질 않았다. 모두 꺼내어 보니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아이들의 이름과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미련 없이 박스를 탈탈 털어 모두 버렸다. 텅 비워진 박스에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담아 두었다. 동시에 이미 흘러와버린 어린 시절의 한 조각들은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는데, 중고등학교 때의 이름표나 학교 뱃지 같은 것들이다. 학교 졸업 앨범은 버린 지 오래됐지만, 수험표나 상장 같은 것들은 아직도 가지고 있다.
수집을 하는 사람의 특징은 그 물건에 담긴 추억을 소중히 여기거나 물건 자체를 소중하게 여긴다고 한다. 나는 전자와 후자의 성향 모두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어느 쪽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어릴 때는 단순히 버리지 못하는 사람인가 했는데, 때마다 싹 내다 버리는 걸 보면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살짝 게으른 사람이기도 하고, 버릴 수 있는 때를 기다리는 사람이기도 하다.
애써 수집을 하려고 한 건 아닌데 수집이 되어버린 경우도 많았다. 좋아하는 것들을 꾸준히 사게 되거나 특정 습관이 물건을 모으게 했다. 전시회를 갈 때마다 사 오던 엽서나 귀여운 스티커, 노트와 펜 같은 것들. 애쓰지는 않았지만 의식적으로 모았던 적도 있다. 캐릭터로 만들어진 미니카에 빠져서 하나 둘 모으기 시작했고, 어떤 때는 고양이나 미니언즈 랜덤 피규어를 모으기 시작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런 수집 행위는 어느 순간 멈출 때가 있었다. 또 다른 것을 좋아하게 될 때. ‘금사빠’일 수도 있겠지만, 나름의 철칙이 있다. ‘취향’에 맞아야 한다. 어떤 것이 너의 취향이냐고 물으면,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 ‘취향’이라는 것은 어차피 객관적인 기준이 될 수가 없으니까. 결국, 수집 자체가 취향인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해본다. 집안을 둘러보니 어느 정도는 맞는 것 같다. 이토록 와글와글 복작복작한 공간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