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행복의 근원은 무엇일까.
정말 단순하게는 내가 가진 환경에 감사하는 것. 내가 운동 후 샤워하고 따듯하고 노곤해진 몸으로 침대에 누워서 기분이 놀랍도록 나아질 수 있다는 걸 알 때. 걱정은 수용성이라 씻겨 날아간다는 말을 봤는데 참 단순하고 귀엽고 좋더라. 그러다가도 이런 집이나 공간이 없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저릿해, 그들은 그들의 아픔을 어떻게 극복해나갈까 싶어서.
부유한 사람이라고 해서 행복이 무한대로 증가할 수는 없잖아. 차가 5대 있다고 해서 5km마다 차를 바꿔 타거나, 옷이 수백 벌 있다고 해서 30분마다 옷을 바꿔 입을 수 없듯이, 부와 명성을 가진 것이 꼭 행복과 비례하진 않는다는 거야. 흔히 우리는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을 ‘환상’의 영역으로 여기고 섣불리 판단해버리는 경향이 있어. 떠받들거나 혹은 혐오하거나. 내가 여러 가지를 도전하는 이유 중 하나도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한 편견을 깨부수기 위해서야.
반짝 빛나 보이는 누군가를 갈망하다가도 ‘그래 봤자 하찮은 인간인걸.’이라고 생각하면 별 생각 없어져. 어쩌면 우주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인간들 사이에서 뽐내는 것은 귀리가 낱알 하나 더 붙었다고 자랑하거나, 물고기가 자신의 지느러미가 좀 더 길다고 으스대는 것처럼 하찮은 영역의 것이 아닐까 싶어. 물론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아예 벗어날 순 없겠지만, 이런 생각들은 적절한 선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되어주지. 내가 보다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자연을 사랑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이런 생각에서 비롯된 것 같아.
또 나는 행복엔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걸 알아. 밝게 미소 짓는 것과 같은 행복 외에도, 사색의 행복, 고요의 행복, 집념, 성찰, 고뇌, 인내하는 스스로에 대한 격려.. 굳이 행복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일 필요도 없이 그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것이 내 행복의 근원이라고 볼 수 있겠다.
내게 의미 부여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되었어. 난 ‘내 힘듦이 의미가 있지 않을까?’하고 항상 고민했었어. 항상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이어서 남들 앞에 나서는 것도 무서웠는데, 오히려 그런 성향이 나와 같은 소외된 사람도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이기에 리더에 적합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 또 자기 검열이 심한 점 역시, 그 성향을 자제할 줄 모르는 어린 시절엔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나를 돌아보고 조언을 받아들였기에 지금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 그만큼 내가 나에 대해 갖는 생각은 정말 많이 바뀌더라. 또 내 힘듦도 언젠간 가치 있는 때가 올 거라고 믿었어. 지금 너에게 글을 써줄 수 있는 것처럼.
책을 많이 읽은 편은 아니지만 시간 날 때마다 깊이 있는 내용의 책을 읽었어. 내가 좋아하는 책 중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라는 책엔 "모든 쾌락은 선에서 비롯되었다. 악은 다만 쾌락의 정도를 낮추고 끝없이 갈구하도록 만들 뿐이다."라는 구절이 나와. 세상의 많은 악행, 범죄들은 이 사실을 간과하는 데서 나온다고 생각해. 금지된 것을 추구하는 데서 오는 쾌락- 그건 과연 쾌락일까. 쾌락이라고 느끼고 싶었던 것 아닐까. 단지 ‘금지되었다고’ 쾌락을 느끼는 것이라면 그건 꽤나 하찮은 사고방식 아닐까. 아끼는 사람들과의 교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운동하면서 느끼는 강한 에너지,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 자연과의 교감.. 이 모든 것은 선한 것으로부터 창조되었고 악은 단지 이 모든 것을 한 차원 꼬아서 적절하지 못한 시간, 적절하지 못한 장소에서 끝없이 갈구하도록 만들 뿐이라는 거지. 이런 생각들은 내가 ‘선한 것’이 가장 매력적이고 의지할 만한 것이라는 생각을 공고히 하는데 도움을 주었어. 건전하면서도 섹시한 사람이 되는 것, 좋은 맛을 추구하면서도 건강해지는 것, 같이 있으면서도 혼자됨을 아는 것과 같이 반전의 묘미를 아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고.
또 ‘하버드 상위 1%의 비밀’이라는 책에선 "죽음 앞에선 모두가 '무'로 돌아간다. 나를 향한 사회의 시선 역시 '무'이다."라는 구절이 있어. 죽음을 인지해야 하는 것의 중요성 중 하나는 우리를 향한 사회의 시선이나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은 죽음 앞에서 결국 ‘무’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거야. 그 모든 게 ‘무’라고 생각하면 두려움이 한층 없어져. 더 도전하고, 더 분노하고, 더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지. 그런 행동들은 나를 더,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이끌어. 이처럼 내가 생을 사랑할 수 있는 건 죽음이 전제되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해. 우리 모두에게 생이 필수는 아니야. 삶을 맹목적으로 살아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부터 삶은 의미를 잃는 것이기에. 역설적이게도, 무언가를 정말 사랑하려면 그게 전부가 아님을 인지해야 하는 것 같아.
올해 들어 특히 더 행복해진 건 ‘과거와 미래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고 항상 현재만 존재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야. 과거에 대한 미련도, 현재에 만족하지 못해 미래에 막연히 걸던 기대도 다 버리고 그저 나와 지금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 중요성을 익히 들어왔지만 정말 체감한 건 딱 요즘이야. 이걸 깨달았다는 사실 하나로 올해 정말 많이 성숙해졌다고 말할 수 있어. 흑역사를 곱씹을 때나, 기분 나빴던 순간들이 떠오를 때면 '아, 나 지금 마늘 썰고 있지.' 하면서 금방 벗어나게 되더라. 또 지금 내 행복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막 친해진 친구를 만날 때, 어색할까를 걱정한다면 ‘좋은 사람을 더 알아가는 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그 외에건 깡그리 없애버리자는 마음을 갖는 거지. 시시콜콜한 잡념이 행복을 방해하는 큰 요소 중 하나더라고. 좌우명은 수시로 바뀌지만, 요 근래 나를 지탱하게 해주는 생각은 이거야. ‘젊을 때 나이 드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쉴 때 일함을 걱정하지 않고, 잘한다 싶을 때 실수함을 걱정하지 않고. 다만 매 순간이 온전한 나의 전성기이기를.’
나의 글이 너의 행복을 찾는데 도움이 되길.
온 마음을 담아, 하린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