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씽크 3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찬호 Jul 16. 2020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가족입니다

<어쩌다 하루>에서 만나는 색다른 가족

   가족 간의 유대감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흔히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들 말한다. 피를 나눈 사이가 그렇지 않은 사이보다 ‘아무래도’ 훨씬 끈끈한 관계일 것이라는 전제가 깔렸다. 과연 피를 나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족의 자격이 생기는 것일까? 피를 나눴어도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버리기도 하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 의지가 되는 사람도 있는데 말이다. 혹시 혈연보다 중요한 ‘그 무엇’이 있지는 않을까? <어쩌다 하루>가 만나본, 조금 색다른 세 가족의 공통점을 살펴보면서 그 답을 찾아보자. 


1. ‘상대가 힘들어하는 바로 그 순간, 손 내미는 용기’

(사진=어쩌다 하루 7회)

   부모와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는 탈북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부모의 손길이다. 봉사활동을 하던 김태훈 씨는 하루만 같이 있어 달라는 한 탈북 어린이의 부탁을 받은 후, ‘새터민그룹홈’을 만들어 탈북 아이들 10명의 아빠가 되었다. 아이들을 앵벌이 시키려고 하느냐는 주변의 숱한 오해를 견뎌내야 했음에도, 탈북 아이들을 돕기로 마음먹었던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는 김태훈 씨. 탈북 어린이의 애처로운 눈빛을 외면하지 않았기에 지금의 가족이 탄생할 수 있었다.

   20여 명의 다문화가정 아이들과 이주민을 돌보는 정종원·김성은 부부네도 만만찮은 대가족이다. 만약 부부가 과거에 다문화 가정과의 인연을 그냥 흘려보냈다면 북적이는 대가족은 이뤄질 수 없었을 것이다. 사회복지사였던 부부는 의지할 곳 없는 이주민 가족들의 힘든 상황을 접한 뒤, 그들의 진정한 가족이 되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과감히 그만두고 ‘대안공동체’를 만들었다. 사실 형편이 어려운 여러 다문화 가정을 챙기기 위해서는 인력이 필요하지만, 급여를 많이 줄 수 없어 사람을 구하지 못해 두 부부의 몸은 무척 고되다. 현실적인 문제에 늘 부딪혀도, 고마워하는 가족의 얼굴을 떠올리면 부부는 힘이 난단다.

   가족들을 생각하면 힘이 나는 것은 최승주·조호진 부부도 마찬가지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뒤 방화 범죄를 저지른 한 소년을 만나고 나서부터 부부는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노동하는 청소년들이 많다는 것을 안 부부는 청소년들이 존중받으면서 일할 수 있도록 ‘소년희망공장’을 개업했다. 조호진 씨는 어머니 없이 유년시절을 보냈고, 소년원에 다녀온 형이 있어서 홀로서 서기 어려운 청소년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를 마주해야 했지만, 청소년들에게 힘이 되기를 바라는 그의 마음 덕분에 가슴으로 이어진 가족이 탄생했다. 매장을 정리하고 나서 밤늦게 퇴근할 때는 몸이 쓰러질 듯 피곤하지만, 점차 활기를 되찾아가는 아이들을 보면 부부는 지칠 겨를이 없다.

   어쩌다 아이들과 함께 살게 되었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이들은 하나같이 ‘무작정’ 시작했고 ‘어쩌다 보니’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답했다. 별일 아닌 듯 이야기하지만, 이들이 새로운 가족을 이루기까지 분명히 엄청난 용기와 책임감이 필요했을 것이다. 상대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봤더라도 이것저것 재지 않고 바로 도움의 손길을 건네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손을 내미는 것, 피를 나눈 사이에도 쉽지 않은 그 일을 그들은 가족이라는 이름을 되새기며 해낸다. 


2. ‘소통: 마음을 나누는 것’

(사진=어쩌다 하루 3회)

   아무리 피가 섞인 가족이라도 마음의 벽이 느껴지면 가족을 가족이라 부르기 어색해진다. 하지만 세 가정의 모든 구성원은 함께 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독립해서 나간 이들까지도 스스럼없이 가족이라 부른다. 이들이 피가 섞이지 않는 사람들을 너무나 따뜻하게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는 서로 ‘진솔한 마음’을 나누었기 때문이다.

   정종원·김성은 부부는 다문화가정 아이들과 이주민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마음속 상처를 이해하기 위해서 부부는 끊임없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부모와도 이야기를 나누면서 감정 상태를 꼼꼼히 살핀다. 그들이 “너무 무섭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와 같이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늘 곁을 내어주는 부부. 실제로 유방암을 진단받고 수술할 때까지 자식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노라 씨가 유일하게 두려운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상대는 부부였다. 마음의 소리를 듣는 부부에게 그녀의 서툰 한국어는 문젯거리가 아니기에, 그들의 대화는 멈추지 않는다.

   최승주 씨와 소년희망공장 직원들을 보면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다. 서로가 겪는 어려움을 잘 이해해주고, 각자의 상황을 존중해준다는 것을 알기에 그들은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 수 있었다. 최승주 씨는 끼니를 챙기기 어려운 직원들에게 이틀 치 식사를 포장해 주는 등 직원이자 자식들인 청소년들을 살뜰히 살핀다. 최승주 씨에게 중요한 것은 하루 매상은 어땠는지, 직원들이 근무 시간은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가 아니다. 직원들이 오늘 식사를 거르지는 않았는지, 미혼모 청소년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어려운 점은 없는지 등이 그녀의 가장 큰 관심사이다. 이런 최승주 씨의 마음을 닮아가는 것인지, 소년희망공장에서는 아기가 아픈 미혼모 직원이 일찍 퇴근할 수 있도록 동료 직원끼리 서로 배려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가족으로서의 진정한 소통은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게 아니라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주고받을 때 가능하다. ‘그건 네 사정이지.’라고 생각하지 않고 상대의 마음에 온 힘을 다해 공감하려 노력하는 것. 그것에서부터 진정한 소통이 시작되고 가족이란 이름이 더 따뜻하게 여겨질 수 있지 않을까. 


3. ‘미래를 함께 그리는 사이’

(사진=어쩌다 하루 21회)

   단순히 의식주를 함께 해결한다고 해서 가족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가족 구성원이 성숙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서로에게 정서적 지지를 보내주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김태훈 씨, 정종원·김성은 부부, 최승주·조호진 부부가 꾸린 공동체는 가족이라 부르기에 충분하다. 이들은 아이들이 부족함 없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아이들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김태훈 씨는 탈북 아이들이 안정적인 수익을 벌면서 지역 주민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길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나라 최북단 카페를 차렸다. 그곳에는 새터민그룹홈을 떠나 자립한, 20대 탈북 아이들이 직원이자 주인으로서 책임감을 배우고 있다.

   또 정종원·김성은 부부가 운영하는 수경재배 농장은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는 돈을 버는 직장이자 자신들의 꿈을 키우는 공간이다. 실제로 사진작가를 꿈꾸는 자니는 그곳에서 제품 사진을 찍으며 자신의 꿈을 키웠다. 또 아이들은 여러 사람과 함께 일하며 사회성도 기른다.

   최승주·조호진 부부도 소년희망공장 카페를 통해 아이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소하여 스스로 꿈을 꿀 수 있는 여유를 갖기를 바란다. 그 과정에서 부부는 아이들과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이들의 꿈이 현실화할 수 있을 때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최승주 씨가 미술 학원을 연계해준 덕분에 직원 혜빈 양은 입시 미술을 준비하고 있다. 최승주 씨가 함께 응원해주기에 혜빈 양은 직접 무대를 디자인할 그 날을 향해 더 힘차게 걸음을 내딛는다.

   지금껏 사회적 편견 때문에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아이들. 이 아이들이 계속해서 꿈을 꿀 수 있는 이유는 자신들이 도전에 실패하더라도 가족의 사랑과 응원은 변함없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가족 구성원의 미래를 함께 그려가는 것, 혈연관계가 아닌 가족일지라도 그 어떤 가족보다 건강해 보인다. 


   이 세상에 부모와 형제를 직접 선택해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엄밀히 말해 어쩌다 눈을 떴을 때 우리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는데, 이후 어떤 이들을 아버지 어머니로 삼고, 또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란 이들을 형제라 부르며 살아갈 뿐이다.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가족은 다양한 형태로 탄생할 수 있다. 상대가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상대의 가능성을 믿어주고 응원해준다면 그들은 피를 나눈 것보다 더 끈끈한 사이가 될 수 있다. 이런 끈끈함이 혈연이 아니더라도 그들을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 혼자 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