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원리에 관해 가르쳐 주는 대목이었다. 숫자 1과 0의 차이를 비교하며, 0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것이 아니라 "0"이라는 존재 자체인 것이라고, 그것을 아는 것에서부터 수학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이다.
우리에게 찾아올 줄 알았던 아기 둘은 그렇게 0의 존재를 각인시키며 끝내 세상에 안착하지 못했다.
내 자궁 속에 선명하게 보이는 0의 기운은 빈 아기집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닌, 무(無)의 존재 자체로 여전히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해골의 까만 눈구멍 같기도 하고, 죽은 자의 외마디 비명과도 같은 동그란 그 모양.
아무도 아니면서, 끼니를 거를 때마다 어서 한 숟가락 밥을 떠먹으라며 여전히 입덧을 유발하고 있었다.
첫 번째 유산 때는 상심이 컸다. 코로나 감염으로 인한 고열을 앓고 난 직후이기도 했어서 가망이 없는 싸움이긴 했다. 자연 배출 후 회복기를 가지며, 남편과 나, 그리고 아직까지는 외동딸인 우리 아이의 간절한 소망이 한 데 모아졌고, 다행히 임신의 징후가 바로 보여 가족이 함께 행복한 비밀을 지니게 되었다.
두 번째 유산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무 문제 없이 보인다던 5주 차가 지나고,
한 번은 아이와 조랑말을 타러 외출을 한 적이 있었다.
한창 말을 좋아하는 시기여서 한 번은 꼭 태워주고 싶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하필 스트레스가 많은 말을 고르게 되었다.
고삐를 넘겨받고 농장을 돌려던 그 찰나부터 그 까만 말은 고갯짓을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내
히히힝 거리며, 고삐를 쥔 나와 안장에 올라탄 딸을 모두 떨궈내고 도망을 갔다.
나는 마치 슬로비디오처럼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건초 위로 떨어지는 딸을 보았다. 너무 충격적인 순간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때 말이 나도 같이 걷어찬 것 같긴 하다.
다행히 딸은 입술만 조금 찢어진 타박상을 입었고, 아랫니 사이에 흐르는 피를 닦으니 진정이 되었다.
또 현장에, 자녀의 승마 수업을 기다리고 있던 의사 분이 계셔서 딸의 상태도 봐주셨다.
한번 그런 일을 겪고도 씩씩하게 다른 말을 타겠다며 결국은 포니라이딩을 마친 딸.
그 순간에는 잘 몰랐지만, 그때 내 뱃속의 아기집도 큰 충격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실은 고사난자의 경우, 염색체 이상인 경우가 많다고 하니, 낙마의 충격은 일종의 자책거리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