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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온유 Apr 20. 2023

빈 아기집을 품다

두 번째 계류 유산을 겪으며

어느 강연이 생각난다.

수학의 원리에 관해 가르쳐 주는 대목이었다. 숫자 1과 0의 차이를 비교하며, 0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것이 아니라 "0"이라는 존재 자체인 것이라고, 그것을 아는 것에서부터 수학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이다.


우리에게 찾아올 줄 알았던 아기 둘은 그렇게 0의 존재를 각인시키며 끝내 세상에 안착하지 못했다.

내 자궁 속에 선명하게 보이는 0의 기운은 빈 아기집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닌, 무(無)의 존재 자체로 여전히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해골의 까만 눈구멍 같기도 하고, 죽은 자의 외마디 비명과도 같은 동그란 그 모양.

아무도 아니면서, 끼니를 거를 때마다 어서 한 숟가락 밥을 떠먹으라며 여전히 입덧을 유발하고 있었다.


첫 번째 유산 때는 상심이 컸다. 코로나 감염으로 인한 고열을 앓고 난 직후이기도 했어서 가망이 없는 싸움이긴 했다. 자연 배출 후 회복기를 가지며, 남편과 나, 그리고 아직까지는 외동딸인 우리 아이의 간절한 소망이 한 데 모아졌고, 다행히 임신의 징후가 바로 보여 가족이 함께 행복한 비밀을 지니게 되었다.


두 번째 유산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무 문제 없이 보인다던 5주 차가 지나고,

한 번은 아이와 조랑말을 타러 외출을 한 적이 있었다.

한창 말을 좋아하는 시기여서 한 번은 꼭 태워주고 싶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하필 스트레스가 많은 말을 고르게 되었다.

고삐를 넘겨받고 농장을 돌려던 그 찰나부터 그 까만 말은 고갯짓을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내

히히힝 거리며, 고삐를 쥔 나와 안장에 올라탄 딸을 모두 떨궈내고 도망을 갔다.

나는 마치 슬로비디오처럼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건초 위로 떨어지는 딸을 보았다. 너무 충격적인 순간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때 말이 나도 같이 걷어찬 것 같긴 하다.

다행히 딸은 입술만 조금 찢어진 타박상을 입었고, 아랫니 사이에 흐르는 피를 닦으니 진정이 되었다.

또 현장에, 자녀의 승마 수업을 기다리고 있던 의사 분이 계셔서 딸의 상태도 봐주셨다.

한번 그런 일을 겪고도 씩씩하게 다른 말을 타겠다며 결국은 포니라이딩을 마친 딸.

그 순간에는 잘 몰랐지만, 그때 내 뱃속의 아기집도 큰 충격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실은 고사난자의 경우, 염색체 이상인 경우가 많다고 하니, 낙마의 충격은 일종의 자책거리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임신을 내가 너무 만만히 봤다는 그런 생각에서는 여전히 벗어날 수가 없다.

아기가 쉽게 생길 줄만 알았지, 유산도 쉽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로써 나는 두 번이나 악몽을 꾸게 된 것이다.


아직도 난 빈 아기집을 품고 있다. 조만간 이 집도 떠내려갈 것이다.

그때까지는, 0의 존재를 인정할 것이다.


아침이 밝아오면 빼앗길 걸 알면서도, 

그 밤을 지새워 알을 품는 암탉처럼

좀 더,

따듯하게 안아줄 것이다.


0의 엄마가, 아빠가, 그리고 언니일지 누나였을지 모르는 우리 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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