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수 없다.
'역대 최고의 한국 공포 영화 순위'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어느 블로그에서 봤습니다. 그중에는 익히 들어왔던 '장화, 홍련', '여고괴담'도 있었고,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공포 영화도 있었고, 이름만 들어봤던 '알 포인트'라는 영화도 있었습니다. 문득 이 '알 포인트'라는 영화가 궁금해졌습니다. 궁금해졌다면 영화를 직접 보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저는 겁이 너무 많아서 무서운 영화를 못 봅니다. 잘 모르고 '곡성' 영화표를 끊었다가 영화 상영 내내 스크린의 모서리만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모서리만 봤는데도, 너무 무서워서 한 달 동안 불을 켜놓고 잤습니다. 그래도 이 영화가 궁금해서 '알 포인트 줄거리', '알 포인트 결말', '알 포인트 스포'를 검색하여 대략적인 내용을 알게 되었는데, 내용만으로도 왜 역대 한국 공포 영화 순위에 이 영화가 드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이 영화는 베트남 전쟁 중 작전 지역명 로미오 포인트 (R 포인트)에서 작전 수행 중 사망했다고 여겨지는 대원들로부터 구조 요청이 오면서 시작됩니다. 결국 사망한 대원들의 생사 확인을 위해 R 포인트에 병사들이 파견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손에 피 묻은 자, 돌아갈 수 없다.'라는 비문이 발견되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이 무시무시한 R 포인트가 우리 몸에도 있습니다. 손상되고 노화된 세포를 대신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몸에서는 새로운 세포들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포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모세포의 DNA가 복제되고, 세포 분열에 필요한 물질들이 합성되고, 균일하게 나눠지면서 모세포와 동일한 딸세포가 생성되는 주기을 통해 이뤄지는데, 이러한 과정들이 끊임없이 반복되기 때문에 '세포 주기'라고 불립니다. 세포 주기를 통해 세포가 분열하는 과정 중 DNA가 손상되거나 돌연변이가 생기기도 하는데, 이렇게 이상이 생긴 DNA가 발견되지 않고 계속 복제되어 딸세포에게 분배된다면 문제가 있는 세포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세포 주기 중간에 검문점이라 불리는 단계가 있는데, 이 단계에서 문제가 있는 세포를 검문하여 문제를 고치거나, 문제가 너무 심각해서 고치기 어려운 경우에는 세포를 제거하게 됩니다. 세포 주기 중간에 있는 이 검문점을 영어로는 checkpoint, restriction point, R point라고 부릅니다. 영화 알 포인트에서 '손에 피 묻은 자, 돌아갈 수 없다.'라는 비문이 발견되지 않았습니까? 세포 주기에서의 R 포인트에는 'DNA에 손상이 일어난 세포, R 포인트를 통과할 수 없다.'라는 비문을 써넣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