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날, 닭들에게 부치는 편지
에어콘 빵빵 나오는 실내에서 유리창 너머 하얀 열기로 가득한 여름을 바라보고 있어. 오늘은 말복이야. 두 해전 내게 복날은 무더운 여름을 건강하게 나기 위해 바삭하게 튀긴 치킨을 먹는 날이었어. 그런데 지금은 마음 아프고 피하고 싶은 날이 되었구나. 너희들에게 복날은 며칠 전부터 동료들과 함께 대량 학살을 당하는 끔찍한 날 이니까.
삐악삐악 알에서 나온 너희는 육계라는 이름으로 창문이 없는 어두침침한 계사에서 삶을 시작해. 그래도 이곳은 평사라고 불리는 땅을 밟고 설 수 있는 곳이야. 불빛이 환해서 많이 움직이면 살찌는 속도가 줄어서 24시간 촛불 밝기로 켜진 전등불이 그곳엔 걸려있어. 이곳은 어린 너희들에겐 꽤 추워서 옹기종기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느라 붙어있어. 흙과 곡식 껍질이 엉긴 상한 음식을 먹으며 매일 너희 중 많은 수가 병에 걸려 죽어. 다리를 절뚝이거나 기형으로 태어나 못난 병아리는 패데기쳐지거나 목을 비틀려져 냉동실에 들어가. 하얀 털이 올라올만큼 자라면 몸집이 작은 친구들은 살은 찌지 않고 사료만 축낸다고 냉동실에 들어가기도 하지. 어쩌다 사람들은 사료와 물 외에 다른 걸 주기도 해. 성장 촉진제나 각종 약품이 들어간 항생제를 먹여줘. 점점 너희들의 엉덩이가 두툼해지고 햐안 깃털이 올라오면 백신을 맞게 되는데 균을 이기지 못한 친구들도 냉동실에 들어가. 그렇게 자라서 한달이 되는 날, 무사히 몸무게 1,700그램쯤 되는 그 때, 너희는 생애 처음으로 계사 밖으로 나간단다. 그리고 너희는 감전되어 죽은 후 거꾸로 매달린 채 목이 잘리지.
시골에서 자라던 어린 시절 부모님은 닭 다섯 마리를 키웠어. 왕관처럼 솟은 닭 벼슬과 붉고 파란 기다란 깃털이 화려했던 수탉 한 마리와 암탉 네 마리였지. 수탉이 크게 한 바탕 아침을 알리면 마당 이곳저곳을 분주하게 다니며 옥수수를 주워 먹곤 했어. 가끔 우리 집 누렁이가 호시탐탐 닭들을 괴롭히기도 했지만 너희는 당당히 누렁이를 쪼았어. 어느날은 누렁이를 피해 지붕보다 훨씬 높은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닭들을 봤어. 분명 닭은 날지 못한다고 배웠는데 그건 영 틀린 얘기 같았어. 엄마는 암탉들이 낳은 달걀로 후라이를 해서 우리들 밥상에 올리셨고, 어쩌다가 특별한 날에는 그 중 한마리가 백숙으로 올라오기도 했어. 고백하건데 음식으로 변한 너희에게 아주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너무 맛있었다. 그래도 그당시 우리집 닭들은 당당히 한 식구로서 보살핌을 받았어. 몇년 동안 우리와 함께 살았고 그들이 갖고 있던 본능이 그때는 잘 지켜지고 있었으니까. 닭장에는 깨끗한 짚을 신경 써서 깔아 주었고. 밤에는 닭장 횟대에 앉아 별을 바라보기도 했지. 마당 주변을 어슬렁 거리며 벌레 사냥을 하고 날개를 푸드덕 거렸던 닭들. 그래. 그때 닭들은 닭답게 살았던거야.
너희의 원래 수명은 10년이라는데 지금은 고작 한 달을 살다 죽는구나. 많은 사람들이 너희들이 어떤 곳에서 살다 죽는지 몰라. 사람들은 닭을 요리 재료인 고기로써, 단백질 식품으로, 치맥의 낭만을 누리기 위한 맛있는 음식으로만 대해. 인간의 인식속에 있는 닭은 생명이 있는 존재라는게 숨겨져 있어. 자본은 불결하고 불편한 건 철저히 숨기기 때문이야. 그리고 우연히 너희가 사는 세상을 알게 되어도 사람들은 피하려고 해. 고기 이전의 너희들을 알게 되면 끔찍하거든. 인간은 철저히 너희들을 비인간 계급으로 나누고 당연히 우리에게 고기가 되어줘야 한다고 믿어. 2018년 기준 너희들은 전 세계에 660억마리, 전체 조류의 70퍼센트이자 80억 인류의 10배 가까운 수치가 사육되고 있어. 우리나라만 해도 한해에 너희들을 9억 3,600만 마리를 도축하고 있다고 해. 그런데 이 수치에도 너희들의 감정과 고통은 빠져있고 육식을 너무 많이 하고 있으니 줄여야겠다는 생각만 보인다.
인류세라는 말 들어봤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지질학적으로 신생대 제 4기 홀로세라고 해. 그런데 지난 70년 동안 수백만 년 동안 일어날 변화가 인간으로 인해 압축적으로 발생해서 인류세라고 부르기도 해. 아울러 지금 우리는 6번째 대멸종을 맞이하고 있는데 이미 15만에서 26만종의 생물이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고 해. 중요한 건 그 멸종 대상 중 하나가 호모 사피엔스라는 거지.
아주 먼 훗 날 인류가 사라진 지구에 외계인이 온다면 지구 도처에 깔려있는 닭뼈를 보고 '이곳은 닭이 지배하던 행성 이었구나!'라고 생각할 거래. 어쩌면 너희들 입장에서는 인간이 사라지는 그 미래가 희망이 찾아오는 날이겠구나.
난 지금 너희들을 먹지 않은 지 거의 2년이 되어가고 있어.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 너희들이 고기로 자라고 있다는 사실, 어떤 환경에서 우리가 달걀을 얻고 치킨을 얻는지 알게 된 후로는 먹을 수가 없었어. 지구라는 집에서 같은 식구로 살고 있는 우리가 너희들에게 너무 큰 폭력을 휘두르고 있어. 너희들의 짧은 생이 너무 애처롭고 비극적이라 맘이 아파. 그런데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육식을 하지 않는 것과 사람들에게 너희들이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알리는 것, 이 정도 밖에는 없다. 사람들이 측은지심을 가지고 너희가 닭답게 살다 갈 수 있는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길.
고기로 살다 죽게 해서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