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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지 Jan 24. 2023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2

어린시절 추억, 토끼 사냥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눈이 내 무릎만큼 쌓였다. 아빠는 넉가래를 들고 눈을 치우고 계셨다. 아빠가 쓱 한번 지나간 자리에 딱 넉가래 넓이만큼 길이 났다. 엄마는 싸리나무 빗자루로 마당을 쓸고 계셨다. 나와 동생들도 적당한 싸리나무 빗자루를 들고 함께 눈을 쓸어냈다. 하얀 눈이 마당 가로 밀려나며 마당 둘레에는 눈 담이 소복이 쌓였다. 방학이라 다행이다. 


어느새 나와 동생들은 빗자루를 팽개치고 나는 세숫대야를, 동생들은 바가지를 들고 와 눈 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세숫대야에 눈을 가득 담고 꼭꼭 발로 밟아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세숫대야를 뒤집어 동그란 세숫대야 모양의 눈 벽돌을 만들었다. 눈이 보슬거려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 물을 가져야 눈에 조금 뿌렸다. 훨씬 모양이 단단하게 잘 만들어졌다. 동생들은 바가지에 눈을 담고 작은 동그라미 모양의 눈 벽돌을 만들었다. 하나씩 쌓아서 북극과 가까운데 산다는 에스키모가 만든 얼음집처럼 만들었다.


딱 두 명이 끼어서 들어갈 수 있는 집이 만들어졌다. 동생들과 나는 차례대로 얼음집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아늑했다. 세상이 사라지고 나 혼자만 여기에 있는 느낌이었다. 내가 왕이고 내 맘대로 모든 걸 할 수 있어서 세상 사람 모두가 내 말을 다 들을 것 같았다. 동생들과 싸울 일도 없고 고소한 새우깡도 나 혼자 모두 먹을 수 있고 달걀후라이도 맘껏 먹을 수 있다. 


잠깐, 눈이 많이 내렸으니 토끼 사냥을 가 볼까? 엊그제 엄마가 그러는데 이웃집 덕화 삼촌이 토끼 한 마리를 뒷산에서 잡아 왔다고 했다. 그리고 그 토끼로 토끼고기 만두를 만들어 맛있게 먹었다고 했다. 눈 오는 날엔 토끼가 먹을 게 없어서 깊은 산에서 가까운 산으로 내려온다고 한다. 나는 눈 집에서 나와 동생들에게 내 계획을 얘기했다. 동생들도 토끼 잡을 생각에 신났다. 우리 집 용감한 강아지 쭈리와 나와 같이 5학년인 준섭이와 함께 가면 거뜬히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만반의 사냥 준비를 마쳤다. 장갑과 목도리, 털부츠를 신고 손에는 막대기를 들고 토끼를 찾아 뒷산을 향했다. 쭈리는 우리 앞으로 성큼 뛰어나갔고 나와 준섭이, 동생들은 눈에 발이 푹푹 빠지며 앞으로 나아갔다. 온통 하얗게 덮여 길을 확인 할 수 없었지만 대충 평상시 가던 길을 짐작해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눈 위에 토끼 발자국이 찍히지 않았나 유심히 보며 지나갔다. 


사실 난 진짜 토끼 발자국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산속에서 산토끼를 마주친 적이 없었고 집토끼도 본 적이 없다. 다만 강아지 발자국보다 작을 거라 짐작했다. 가끔 토끼 발자국 같은 것이 보여 긴장하며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하얀 산속엔 우리와 눈을 무겁게 두른 소나무가 전부였다. 우지끈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나뭇가지가 부러져 떨어지기도 했다. 


“토끼가 보이면 무조건 내리막길로 몰아야 해.” 


토끼는 앞다리가 짧아서 내리막길로 몰면 잘 달리지 못해서 쉽게 잡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는 누가 토끼를 몰지 결정하고 쭈리가 어서 토끼를 발견하기를 기다렸다. 점점 손발이 시렸다. 덕화 삼촌이 토끼를 잡은 건 맞나 의심이 들었다. 한 마리도 안 보이는데 도대체 그 토끼들은 어디에 숨어있는 건지. 


슬슬 우리는 지쳐갔다. 쭈리도 가기 싫은지 가다가 멈춰 서버렸다. 그리고는 산 아래 집 쪽으로 앞서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도 오늘은 이쯤에서 철수하기로 했다. 하얀 토끼 한 마리를 잡아 토끼 만두를 해 먹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산에서 내려오는 우리 마음속에는 토끼 한 마리가 깡총 뛰어다니고 있었다. 오늘은 잡지 못했지만 언젠가 우리 손에 잡힐 토끼였다. 토끼는 그 겨울 우리의 꿈이었고 우리 세상에 가장 멋진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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