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핀란드 좀 다녀오려고요."
갑작스레 긴 휴가를 내겠다고 선언하자, 많은 이들 내게 물었다. 벌써 거기에 네 번이나 다녀온 거 아니냐고. 대체 무슨 꿀단지를 숨겨놨길래 여름마다 핀란드로 향하느냐고 말이다. 이유는 하나였다. 그곳에 나의 소중한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보영이가 핀란드로 훌쩍 떠난 지 벌써 8년. 생전 팔자에도 없는 핀란드에 처음 방문하기로 마음먹었던 것도 바로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중학생 때부터 시작해 산전수전을 거쳐 마흔을 코앞에 둔 지금까지 20년 넘는 세월동안 서로를 지켜봐온 나의 소중한 친구. 낯선 곳에서 혼자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보영이를 응원하고 싶기도 했고, 동시에 대체 어떤 매력에 빠져 서른 줄에 그곳에서 뒤늦은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는지도 궁금했기에 그렇게 첫 핀란드 여행길에 올랐었다. 내 머릿속엔 고작 '휘바휘바'하고 춤추는 할아버지가 사는 곳 정도로만 남아 있던 핀란드. 장장 13시간의 비행 뒤에야 겨우 가닿을 수 있는 그곳이 내 마음속 제2의 고향이 될 줄은 그땐 꿈에도 몰랐다.
처음 만났던 핀란드는 낯설지만 정겨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편안했다. 조금만 걸으면 잔잔히도 끝없는 바다와 만날 수 있는 곳. 백 년도 넘은 건물들이 각자의 비밀과 사연을 품은 채, 야트막한 어깨를 서로 기대며 색색의 골목길들을 연출해 내는 곳.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로에게 적당한 거리를 둘 줄 아는 사람들이 주는 서늘한 편안함.
사회생활을 해내느라 억지 미소 가면을 쓴 채 살아가는 나에겐 슈퍼 I 공화국이라고 해도 손색없는 핀란드 사람들이 주는 그 '자유로움'이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내가 무슨 짓을 하든 진심으로 크게 신경쓰지 않겠다는 결연한 미소가 넘치는 이 곳 사람들이 주는 그 편안함이란. 시끌벅적하지도, 놀랄 만큼 높고 큰 건축물들이 즐비해 있지도 않지만, 그냥 이곳의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끝없이 자유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 핀란드. 그러니 이곳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래서일까. 삶이 못내 답답하고 일상 속 참견들이 피곤해질 때면 나는 종종 핀란드에서 보낸 시간들을 떠올렸다. 사진 속 밝게 미소짓고 있는 내 모습. 웃고 떠들고 춤을 추면서도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었던 순간들. 사우나를 하고 나와 맞았던 시원한 바깥바람의 나무냄새. 그리고 또 보고 싶은 사람들. 유독 삶이 뻑뻑하다 느낀 5월의 어느 날, 그래서 나는 핀란드로 향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7월 휴가 시즌을 맞아 보영이와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란 기대도 한몫했고.
아무튼 그리하여 어찌저찌 그렇게 4번째 핀란드 여행을 시작하게 됐다.
못먹어도 고 라는 말이 있듯이
나한테는 아무튼 휴가도 사람도 삶도, 핀란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