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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영칼럼니스트 Nov 23. 2020

내가 꽂은 깃발은 무엇인가, 나의 업적 뒤돌아 보기

끓는 물 속에서 죽는지도 모르고 죽어가는 개구리가 되지 말자

<내가 지나온 길에 어떤 깃발이 나부끼고 있는가>   


“이제부터는 너의 깃발을 보여줘야 한다. 전임자들을 이어받아 무난히 일하는 것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만, 앞으로 가는 길은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 부서장으로서 네가 개척한 새로운 업적이 무엇인지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업적의 깃발이 없다면 다음 스텝을 기대하기 어렵다.” 


필자가 부서장으로 승진한 아끼는 후배에게 그 일의 선배로서 던졌던 권고였다. 그 후배의 다음 스텝은 임원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선임자들이 해온 업무를 유지하는데 머물지 말고, 좀 더 새로운 시각과 도전으로 자기만의 분명한 업적을 거둬야만 임원이 될 수 있을 거란 의미에서 당부한 얘기였다. 


실제 주변에 보면 일을 벌이기보다는 해오던 일을 무난하게 잘 유지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리스크를 안고 새로움에 도전하기보다는 현재 수준에서 잘 유지하는 것을 우선시한다. 그러나 그것은 행정이나 공공을 다루는 영역이라면 맞는 말인지 모르겠으나 고객이 있고 시장이 있으며 경쟁자가 있는 민간의 영역에선 그렇지 않다. 늘 새로움이 필요하고 개척과 도전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언젠가 위기가 찾아오거나 서서히 망해간다. 그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유통시장에서 선두 격인 A그룹은 최근 통합 온라인쇼핑몰을 오픈했는데 다른 데 비해 늦었다. 온라인 시장엔 이미 쿠팡과 이베이 등 온라인 전문회사들과 네이버와 같은 플랫폼 회사가 강력하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오프라인 강자인 A그룹이 온라인 사업에서 고전이 예상되는 이유다.


그런데 A그룹은 왜 이제야 통합된 온라인쇼핑몰을 오픈한 것일까. 추측건대 온라인이 대세로 전환되는 것을 보면서도 오프라인의 강점을 믿고 보수적인 관점에서 전략을 수립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시장을 중시하여 새로운 영역으로 변화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탓이다. 지금의 무난함이 미래의 무난함까지 담보하지 않는데 말이다.

 

그래서 있는 것을 더 잘 지키는 데에만 주력하는 사람과 조직에는 미래 희망이 되는 새로운 깃발이란 있을 수 없다. 새로운 깃발을 꽂는다는 것은 있는 밥통 잘 지켜 나온 성과가 아니라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혁신의 업적을 만들거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기업의 임원을 만날 때마다 필자가 하는 얘기가 있다. 


“당신이 임원으로서 회사에 꽂은 깃발을 얘기할 수 있느냐, 만약 없다면 회사가 무엇을 보고 당신을 다음 스텝으로 올리겠느냐, 어차피 임원들은 때가 되면 집에 가는데 그러느니 맡은 일에서 챌리지하여 혁신의 성과를 보여주어야 좋지 않겠는가. 누군가 하던 일을 무난하게 잘하는 것만으론 다음 스텝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것은 무난히 집에 가는 길이다.”


다소 과한 듯하여도 폐부를 찌르는 얘기다. 앞서 승진한 후배에게 필자가 권고한 내용과 같은 맥락이다. 일에서 자기 업적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이 회사라는 조직에서 갈 수 있는 길의 한계를 얘기한 것이다. 이는 직급이 높아질수록 더욱 그러하다. 만약 업적이 불분명한 사람을 자꾸 승진시키는 기업이 있다면 그건 망조의 길로 가는 과정이다. 그런 회사에는 미래를 내다보는 혁신의 자리는 없으며, 그러다 서서히 망해갈 뿐이다. 


이렇듯 직장에서 업적은 그 사람의 향후 진로에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렇다면 업적이란 무엇인가? 업적은 단순히 요약하자면 일에서 거둔 성과이다. 거기엔 유형의 것도 있고 리더십 같은 무형의 것도 존재한다. 그런데 그 업적은 직급에 따라 요구하는 바가 달라진다. 임원에게 요구하는 업적과 부장, 과장, 대리에게 기대하는 업적은 다를 수밖에 없다.    


직장에서 일하며 성장하는 단계를 4기로 나눠 보자. 신입사원으로 들어와 일을 익히며 배우는 1기에 해당하는 직원에게는 무엇보다도 배우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팀장이 부여한 일을 실수 없이 잘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때는 자기만의 성과를 내려고 조급해해선 안 된다. 기초를 튼튼히 하고 관계의 중요성을 배우며 내공을 쌓는 것이 좋다.


이 단계를 넘어 대리나 과장 직급의 2기가 되면 그간 배우고 익힌 일을 가지고 스스로 독자적으로 판단하며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된다.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되어 스스로 운영할 수 있다. 이때부터는 일 잘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확연히 구분되며 개인의 업적도 논할 수 있다.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며 나름 업무의 베테랑이 되어 간다.


조직의 ‘장’을 맡아 그 조직의 전체 성과를 책임지는 역할을 할 때가 3기에 해당한다. 리더십을 발휘하여 구성원들과 함께 조직의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시기이다. 따라서 자기만 잘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조직을, 구성원들을 잘 이끌어야 한다. 이때는 조직의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와 그 과정에서 보여준 리더십이 업적의 판단기준이 된다. 


직장에선 3기가 가장 중요하다. 조직의 장이 되어 보여주는 리더십이야말로 직장에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때부터는 리더십으로 거둔 성과, 즉 지휘자로서 나의 이름이 걸린 깃발이 중요하다. 리더이기에 새로운 고객을 개척하는 것도, 새로운 상품을 구상하는 것도, 새로운 전략을 구사하는 것도 가능하다. 도전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다.


선배 리더가 해온 대로 무난하게 일하는 사람과 그 이상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여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사람은 직장의 막바지가 다르다. 임원으로 가는 길목에서 내세울 만한 자기만의 깃발이 없다면 그 길은 험난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 시기는 직장에서 진퇴의 고비가 되기도 하는데 여기서 멈추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다음 단계가 임원이 된 이후부터다. 4기에 해당하는 이때는 더욱 업적이 중요해진다. 오랫동안 임원으로 재직하는 것도 또 고위 임원으로 승진하는 것도 더욱 분명한 업적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삼성그룹에서 임원의 출발은 상무이다. 상무에서 전무로 진급하는 데는 보통 6년이 필요하다. 상무 6년을 채우고 진급이 되지 않으면 퇴임하게 된다. 그런데 임원 3~4년 차에 재계약되지 않고 회사를 떠나는 사람도 꽤 있다는 사실이다. 대개 대기업의 경우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럴 때 임원의 진퇴를 가르는 기준은 업적이다. 회사의 성장이나 혁신에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기고 있느냐가 기준이 되는 것이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보수적인 임원들이 자기 영역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무난하게 일을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는 경우가 있다. 참으로 안타깝다. 이런 경우, 그러다가 어느 날 집에 가는 임원을 많이 봐온 터였기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혁신과 도전을 권고했었다. 이들은 이에 동의하면서도 선뜻 실행하지 못하다가 비운의 운명을 맞이하는 것이다. 


회사에서 고액을 연봉을 지급하는 임직원들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착각해선 안 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필요조건이 있고 충분조건이 있는데 필요조건만 가지고 앞을 향해 가긴 어렵다. 도전을 통해 거둔 업적이란 충분조건을 각자의 위치에서 갖춰야 한다. 


그러므로 창의적인, 혁신적인 그리고 도전적인 일을 하기 위해선 직장생활 최소 2기에 해당하는 대리나 과장 시절부터 이를 준비하고 익혀야 한다. 어느 날 부서장이나 임원이 되어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이 보수적인 움직임이 몸에 밴 사람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자기가 맡은 일을 하는 과정에서 다른 더 좋은 방법과 아이디어가 있는지 살펴봄에서 출발한다. 선임자가 했던 방식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반으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이 기업 경영의 중요한 축으로 등장한 오늘날이지 않은가. 


과거의 방식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새로운 시각으로 고객을 보고, 시장을 보고, 우리의 업무를 보자. 혁신해야 할 공간, 개척해야 할 새로운 영토가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그 새로움에 도전을 얹어야 한다. 개인도 회사도 성장은 굳건한 도전에서 시작된다.     


우리 주변엔 별다른 업적도 없는데도 승진도 잘하며 직장생활 무난하게 하는 듯 보이는 사람이 많다. 이를 우리는 운이나 인맥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운이나 인맥의 한계는 분명하다. 직장이란 곳은 만만한 곳이 아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당시 잘 나가던 섹터의 대기업에 입사한 K가 있었다. K는 신입사원부터 기량을 잘 발휘하여 제때제때 승진하였고 팀장을 맡아서 무리 없는 운영으로 임원의 반열까지 어렵지 않게 올라갔다. 문제는 임원부터였다. 늘 무난하게 일해왔던 K는 전무로 진급해야 하는데 크게 내세울 새로운 업적이 없었다. 


필자는 만날 때마다 ‘깃발론’을 얘기하며 새로운 영역에 도전을 촉구했다. 그러나 K는 리스크가 있는 도전보다 무난함을 택했다. 그는 사내에 구축된 인적 네트워크가 있었고 또 일에서 큰 과오가 없었기에 전무 진급을 자신했다. 그런데 K는 상무 6년 차, 전무로 진급하지 못했고, 그 이후 자회사로 전출되어 2년 후 퇴임하였다. 그때 나이가 50세 초반이었다. 임원으로 승진하여 8년이나 보냈기에 K의 직장생활을 성공이라 할만하지만, K를 잘 아는 필자에겐 아쉽기만 하다. 


한 번쯤 나의 업적을 뒤돌아보자. 내세울 게 무엇인가. 지나온 길에 나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는가. 지금, 그 깃발을 꽂고자 도전하고 있는가. 물이 끓어가는 줄도 모르고 냄비 속에서 헤엄치다 무난히 죽어가는 개구리가 되어서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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