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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영칼럼니스트 Feb 03. 2021

일과 삶의 균형, 워라밸로 가는 길

진정한 워라밸은 자기 일과 역할에 책임을 다할 때 더욱 빛난다.


직장인들은 야근이 없는 직장과 연봉이 높은 직장 중 어디에서 일하고 싶을까. 취업 포탈 인크루트가 2018년 직장인 1209명을 대상으로 ‘좋은 일터’의 조건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자유롭고 소통이 잘되는(32%), 워라밸(18%), 우수한 복지(13%) 순으로 높게 나타났고 연봉을 선택한 비율은 그보다 낮은 10%였다. 다니고 싶은 좋은 회사의 기준이 돈보다는 자유로움/소통/워라밸 등 기업문화적 가치에 있다는 의미이다. 


이 조사결과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바야흐로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의 시대에 살고 있다. 워라밸은 최근 들어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등 젊은 층을 중심으로 형성된 삶에서 행복을 추구하려는 흐름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며 대비하기보다는 현재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해외여행, 맛집 탐방 등을 중시하는 욜로나, 커피 한잔, 산책, 동네 맛집 즐기기 등 일상의 소소한 활동에서 행복의 가치를 찾는 소확행은 모두 개인의 행복한 삶을 중시하는 이 시대 대표적인 소비문화의 추세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워라밸은 지나친 일 중심에서 벗어나, 일과 삶의 균형을 통해 개인과 가정의 행복을 추구하려는 새로운 직장 문화로 떠올랐다. 매년 생활문화의 트렌드를 키워드로 발표하는 서울대 김난도 교수는 ‘트렌드 코리아 2018년’이란 책에서 워라밸을 새로운 트렌드로 예측한 바 있다. 특히나 밀레니얼 세대가 직장에 들어오기 시작한 몇 년 전부터 이러한 흐름은 더욱 커지고 있으며 이제는 전 세대를 관통하는 직장 문화의 주류가 되어가고 있다.


워라밸은 ‘공급자’의 위치에 있는 회사의 관점에서 봐도 조직관리에도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고 한다. 즉, 일에 매몰되지 않고 충분한 여유시간을 보장하는 것이 개인의 삶의 행복을 실현함과 동시에 직장에서 일의 효율성도 높인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의 워라밸 도입은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이러한 긍정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워라밸은 여가를 중시하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출발하였지만, 가정이 있는 세대들이 직장과 함께 가정도 중요하게 인식하면서 삶의 새로운 문화로 증폭되었다. 가정을 도외시한 직장의 행복이 있을 리 없고, 직장과 일의 가치를 외면하는 가정의 행복추구 또한 허망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일과 삶의 균형이 유지되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친다면 불만이 싹틀 수 있다. 그런 사례는 많다. 직장에서는 능력 있고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지만, 가정에서는 늘 불만의 대상이 되는 경우나, 반대로 가정에선 인정받아도 직장에서는 뒤 쳐지거나 왕따인 경우도 있다. 워라밸로 가는 길목에선 과거와 달리 어느 한쪽을 희생해선 진정 행복한 삶을 만들어가기 어렵다. 직장생활을 다룬 어느 블러그에 소개된 사례를 보자. 


‘회사의 주요 직책을 맡은 L팀장이 갑자기 사의를 표명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내용을 들어보니 야근과 주말 근무 등 쉴새 없이 계속되는 일로 어린 자녀들과 시간을 함께하지 못하는 등 가정에 소홀하면서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몇 년째 휴가도 제대로 못 갔던 L팀장은 가족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조만간 해외여행을 함께 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그때까지 해외여행을 가족과 한 번도 가지 못했던 터였다. 그런데 문제는 한 달 동안이나 여행을 가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한 달씩이나 휴가를 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는데 알고 보니 퇴사까지 고려한 생각이었다. 


팀장이라는 직무를 잘 수행하기 위한 책임감에 제대로 된 휴가와 휴식도 없이 오랜 기간에 걸쳐 일에 매진하며 달려온 L팀장은 사실 본인도 지쳐있었고 그러다 보니 다 내려놓고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한두 번 한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안타까운 일이었으나 이런 일로 일 잘하는 팀장이 회사를 떠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회사에서는 L팀장의 딱한 사정을 고려하여 한 달짜리 특별 휴가를 보냈다. 이 일로 다행히 회사에서는 휴가와 휴식에 대한 개념을 많이 바꾸었다. 특히 가족과 함께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는 직원들의 니즈가 얼마나 강렬한지를 알게 된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 야근이나 주말 근무가 많으면 직원들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도 불만이 생긴다. 직장의 중심축인 30대, 40대는 회사나 일 때문에 계획된 휴가에 지장이 있거나 가정과 자녀를 돌볼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가족에게 미안함은 물론 아쉬움과 불만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 놓이면 일의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최근에는 눈치 보며 휴가를 가는 회사는 거의 없다. 해외여행이나 충분한 휴식을 위해 10일 이상 긴 휴가도 인정해 주는 추세이다. 또한, 야근 없는 정시 퇴근으로 가능하면 직원들의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해 주려 한다. 남자 직원들의 출산휴가, 육아휴직도 처음엔 어색했고 지금도 불편하게 느끼는 경우가 있으나 이의 수용성은 차츰 나아지고 있다. 


그래서 대기업을 비롯한 많은 회사가 커지는 직원들의 워라밸 욕구에 맞춰 회사의 정책을 전환하고 있다. 정시 퇴근은 물론 휴가, 복지, 문화 프로그램과 함께 자유로운 출퇴근제도나 재택근무 등 직원들의 여유로운 삶을 지원하고 있다. 워라밸을 향한 기업의 주도적 변화는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문화적 흐름과 맞닿아 있고, 기업의 평판과 직결되어 있다. 불과 몇 년 전 중견기업 H사에 있었던 사례를 보면 그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출산휴가가 1일에서 3일로 확대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즈음, 첫 자녀 출산을 앞둔 남자 직원이 법적으로 가능한 3일의 출산휴가를 신청했다. 법적으로 보장이 된 휴가임에도 그동안 휴가에 인색했던 회사는 이에 부정적이었다. 남자 직원이 3일씩이나 출산휴가를 갈 필요가 있느냐, 예전처럼 하루면 충분하지 않으냐는 시각이었다. 한편에서는 일이 바쁘지 않으니 3일씩 휴가를 내는 것이라고 비아냥대듯 바라보기도 했다. 


이런 기류에서 이 직원은 결국 휴가를 정식으로 승인받지 못했는데 이 직원을 비롯한 비슷한 세대들은 이에 크게 실망했다. 순간적으로 화가 났던 그 직원은 이를 참지 못하고 사표를 내기에 이르렀다. 부서장과 면담 끝에 결국 사의를 철회하긴 했지만, 이 일은 회사에서 크게 이슈가 되었다. 사내 분위기는 엉망이 되었고 그렇지 않아도 휴가를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현실에 낙담하던 직원들은 회사에 대한 불만이 더욱 커졌다.’


이처럼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워라밸의 큰 흐름을 회사가 경시한다면 그 회사는 직원들로부터 원망을 사는 것을 넘어 외부에도 부정적인 낙인이 찍힐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기업 평가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야근이나 주말 근무를 얼마나 많이 하는지, 휴가에 인색한지, 기업의 문화는 어떤지, 상사들은 얼마나 꼰대인지 등 전 현직 직원들의 평가가 나와 있다. 아무래도 부정적인 평판이 많은 회사는 외부에선 좋은 인재들이 지원을 꺼리게 되고, 직원들에게는 자부심을 주기가 어렵다. 


많은 기업이 제도와 문화를 직원들의 욕구에 맞춰 유연하게 바꾸고 있는 것은 좋은 인재를 얻고 또 지키기 위한 목적이 크다. 직원들의 여가를 보장하고 최적의 상태에서 일할 수 있도록 근무환경이나 복지제도를 새롭게 개선하는 것은 업무 능률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로열티와 자부심을 겨냥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흐름에 워라밸이 중심에 있는 것이다. 용어는 다를지 몰라도 핵심은 직원들의 강력한 니즈, 즉 워라밸을 타겟으로 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회사의 제도나 관습 또는 문화 자체가 일 중심으로만 치우쳐 있었기에 워라밸은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대부분 기업이 워라밸 여건 마련을 위해 노력하고 있어서 워라밸로 가는 길은 많이 평탄해졌다. 누구나 워라밸을 누릴 수 있는 환경으로 차츰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직장인들은 워라밸을 어떻게 실천하는 것이 좋을까. 여가를 즐기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워라밸을 추구하되, 자신의 ‘업(業)’을 먼저 확고히 해야 한다. 직장에서 일과 위치가 단단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상태라면 워라밸은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직장은 적당히 편하게 있으면 되는 공간이 아니라 지나야 할 다음 스텝이 있고 올라가야 할 사다리가 있는 경쟁의 공간임을 잊어선 안 된다. 


법무법인, 회계법인, 컨설팅 회사 등 전문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근무 강도가 세기로 유명하다. 회사에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이란 전쟁터에서 지지 않고 승리하기 위해 스스로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일반 기업도 마찬가지로 전쟁하듯 일을 하는 곳이 있다. 경쟁이란 전투에서 이겨야 하고 그러려면 고객으로부터 선택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진정한 워라밸은 직장에서 자기 일과 역할에 책임을 다할 때 더욱 빛나는 것이다. 직장에서 인정받지 못한 상태에서 워라밸은 공허하다.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가 인정받고 또 스스로 만족할 수 있으며 자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일상으로 돌아와서 제대로 된 휴식과 쉼을 만끽할 수 있다. 


그렇다고 무엇을 희생하며 일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일에도 중요한 시기가 있듯 개인에도, 가정에도 중요한 시기가 있다. 그 중요한 시기들을 놓치면 안 된다. 또 일에 집중할 때가 있고 휴식을 취해야 할 때가 있다. 그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모두 스스로 판단하고 취해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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